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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2019년 5월] 문화 나의 취미

“내 구력이 60년이야, 아직 이팔청춘이지”

92세 테니스 실력자 안효영 동문
 
 
나의취미 “내 구력이 60년이야, 아직 이팔청춘이지”
 
92세 테니스 실력자 안효영 동문
 
 

 

 
“테니스 치기 좋은 날이야”. 4월 30일 청주 복대동 충북테니스장. 티 없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던 안효영(농경제48-52) 동문이 말했다. 인터뷰를 청했을 때 “지난주 대회가 우천 때문에 4월 29일로 미뤄졌고, 5월 1일엔 익산에서 전국대회가 있다”며 정해준 날이었다. 올해 92세인 안 동문은 이곳에서 매일 오전 두 시간씩 테니스를 친다. 구력이 자그마치 60여 년. 시니어 대회에서 종종 우승을 거머쥔 실력자다. 1928년생, 테니스로 ‘이팔청춘’을 즐긴다.
 
“진천농고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해 교장과 장학관을 지내고 충북교육위원회에서 부교육감 격인 학무국장도 했습니다. 청주농고 교장을 끝으로 1993년 정년퇴직한 후부터 이곳 청주이순테니스회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교사 시절 동호회 활동을 해보고 싶어 연식정구를 시작했다. 테니스와 달리 말랑말랑한 공을 썼다. 교장이 되어서도 방과후와 공휴일에 테니스를 쳤는데 어느날 한국 테니스의 대부로 불리는 민관식(농학40졸) 당시 문교부장관이 학교에 방문했다. “교장실에서 브리핑을 했는데 걸어놓은 라켓을 보더니 ‘아직도 연식을 하고 있나. 당장 하드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선각자셨죠. 관심이 생겨서 소프트 치는 정구장에서 하드를 시작했어요.”
 
테니스를 치면서 지역 교사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었다. 그가 종목을 불문하고 운동 동호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는 이유다. 은퇴 후에는 청주백년회와 청주이순테니스회를 만들고 직지배 동호인테니스대회도 열었다. 지금도 지역을 벗어나 1년에 20여 차례 전국대회에 출전한다. 추첨으로 2인 1조를 짜 복식 경기를 진행하는 시니어 대회는 친구 사귀기에도 좋다. “전국대회 처음 시작할 땐 서먹서먹해서 ‘대전 사람’, ‘서울 사람’ 하다가도 몇 번 만나면 친해져요. 동호인 집단이 생활에 필요한 이유죠.”
 
현재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 중 최고령자로 90세 이상 부문이 없어 85세부에 출전한다. 지난해에만 아천배슈퍼시니어테니스대회, 코리아오픈 시니어 전국테니스대회, 전북이순테니스협회장배 등 세 곳에서 우승했다. 3위 내 입상도 자주 해서 현재 이순테니스협회 85세 부문 랭킹 3위다.
 
“승부욕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대회에 갈 때마다 소풍 가자는 생각으로 즐기러 갑니다. 우리 젊었을 때는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들만 테니스나 탁구 치고 했는데 요즘엔 생활체육이 많이 보급됐지요. 동호회에 나오면 친구를 만나서 서로 얘기하고 웃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체력도 기를 수 있어요. 60세 이상이면 역시 자신한테 맞는 취미가 건강의 한 요소예요.”
 
대화하는 동안 그의 나이를 완전히 잊었다. 목청을 돋우거나 반복해서 말하지도 않았고 질문과 대답은 매끄러웠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코트에 나오신다. 컨디션에 기복이 없으시다”는 이경종 전 청주이순테니스회장의 말. 안 동문은 건강 유지를 위해 규칙적인 생활을 강조했다.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는 꼭 잠자리에 듭니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10분간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면 몸이 훈훈해져요. 몸이 불편한 아내를 대신해 식사를 준비하고 오전 10시까지 코트에 나옵니다.”
 
슬하 2남 2녀 중 막내아들이 의사여서 꼬박꼬박 정밀검사를 받는다. 건강을 자만하진 않지만 결과지를 받으면 운동한 보람을 느낀다. 테니스를 치지 않으면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가볍게 드라이브도 한다. “면허증 갱신하러 가면 깜짝 놀라더라”고 했다. 워낙 조심스럽게 운전해 16년 된 차의 주행거리가 6만km다.
 
정정한 모습에 자연스레 ‘100세가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욕심이 없다. 바람이 있다면 잠잘 때 슬며시 죽으면 제일 행복하지, 다른 게 있나”란 그의 대답. “그래도 테니스는 오래오래 치고 싶으시죠” 하자 “당연하다. 아이들에게도 나 테니스 하다가 쓰러져서 죽어도 절대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며 웃었다.
 
함께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운전을 도맡는 이경종 전 회장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이 회장한테 맘 놓으라고 얘기했어요. 아버지가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차를 빌려 타는 거니까 만일 내가 다치더라도 절대 책망하지 말라고 애들에게 얘길 해뒀죠.” 초대 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안 동문은 지금도 청주이순테니스회가 쓰는 공을 마련한다.
 
연습 시간이 되자 지긋한 나이의 회원들이 하나둘씩 코트로 모여들었다. 안 동문은 대회에서 우승한 라켓을 들고 코트 구석구석을 누볐다. 스윙은 경쾌했고, 연속으로 공을 주고받는 랠리도 거뜬히 끌고 갔다. 한 게임을 끝낸 후 돌아가는 기자를 배웅하며 그가 당부했다. “하여튼 즐겁게 살아야 돼요. 스트레스는 가급적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기분 나쁜 소리 들어도 화내지 말고.” 인터뷰 내내 보여준 맑은 웃음이 안 동문의 마지막 건강 비결이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