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호 2020년 5월] 문화 나의 취미
“덜어낼수록 깊어지는 전통춤, 함께 추니 더 좋지요”한국무용 즐기는 박승준·이숙경 동문 부부
한국무용 즐기는 박승준·이숙경 동문 부부
“덜어낼수록 깊어지는 전통춤, 함께 추니 더 좋지요”
한국무용 즐기는 박승준(국어교육63-67)·이숙경(국어교육69-73) 동문 부부
사진=김도형 작가 촬영, 박승준 이숙경 동문 제공
발랄한 새내기 여학생은 말수 적은 그 남자가 좋았다. 여섯 학번 선배인 그는 재학시절 연극을 했고, 졸업 후에도 후배들의 작품을 연출하러 가끔 모교에 들렀다. 어른스러운 모습에 반해 시작된 마음앓이. 당시 서클 내에선 여학생들의 고교 졸업 반지를 잠시 갖는 게 유행이었다. 그녀의 반지는 당연히 그에게 있었다. 휴교령이 내려 서클실 문을 닫아야 했던 어느 날, 다신 못 볼 것 같던 그가 손을 내밀었다. “반지 돌려줄게. 저녁 한 번 사라.”
50년 넘게 해로한 박승준(국어교육63-67)·이숙경(국어교육69-73) 동문 부부는 이렇게 연인이 됐다. 캠퍼스 커플로 만나 교육자 부부로 일평생을 살았는데 취미까지 꼭 맞는다. 뒤늦게 한국 전통무용을 시작해 방방곡곡을 함께 누비며 춤을 춘다. 본회 홈커밍데이에서 초청 공연도 했다. “춤이 우리를 단단히 묶어주는 귀한 사슬”이라는 두 동문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춤에서는 25년 이력의 이숙경 동문이 박승준 동문보다 선배다. 40대 후반에 크게 앓고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떠올린 것이 춤이었다. “어려서 무용연구소를 다녔어요. 최승희의 춤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마냥 좋았죠. 얼마나 열심히 췄는지 어린애가 코피까지 흘리니 집에서 무용소에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채 영글지도 못하고 꺾인 춤에 대한 그리움이 훗날 저를 춤판으로 이끌었던 것 같아요.”
고교 문학 교사였던 이 동문은 퇴근 후 국립국악원 문화학교에 나가 전통무용을 배웠다. 밤늦게 오가는 아내가 걱정돼 늘 박 동문이 데리러 오곤 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박 동문은 “정년 후엔 머리보다 몸을 많이 쓰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하던 참이었고, 아내를 기다리며 오가는 춤꾼들과 어깨 너머로 본 전통춤이 눈에 익을 때쯤 춤길에 합류했다. 두 사람은 각각 국악원에서 다양한 전통춤을 익히고 명무 문하에도 들어가 살풀이춤과 한량무, 양반춤 등을 사사했다.
“각 유파별로 그 춤의 ‘입춤’이 있어서 그 춤에 맞는 몸 쓰는 방법과 적절한 춤사위를 익히게 돼요. 그 다음엔 갖가지 춤의 유형 중 원하는 걸 선택해 이미 익힌 춤의 기본을 연마하면서 춤을 즐기게 됩니다. 이 과정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깨달아 가는 기쁨도 커요.”
기량이 오르자 부부는 춤 봉사와 공연을 다니며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명동 ‘설파다방’과 ‘동서화랑’을 다니던 연애 시절 못지않게 전국 곳곳에서 추억을 쌓았다. 인사동 거리 공연, 아시안게임 축하무대를 비롯해 창극 공연으로 지방을 돌며 남사당패의 기분을 느껴보고, 일본 큐슈와 태국 방콕에서 문화교류 무대에 서기도 했다.
경기여고 총동창회 축하공연에서 함께 춤추는 박승준, 이숙경 동문 부부
재미삼아 나간 대회에선 덜컥 상을 받았다. 듀엣으로 나간 첫 무대에서 우수상을 받고 2010년 대한민국 전통예술경연대회에선 ‘한량무’를 추어 대상을 거머쥐었다. 가까운 춤꾼들끼리 ‘바치울 무용단’을 만들어 전국 춤판을 신명나게 휩쓸었다. 독무로 받은 것을 합해 대상 9번, 최우수상 2번, 금상 6번 등 부부가 받은 상이 30개가 넘는다.
그렇게 춤을 추어도 이 동문은 ‘갈 길이 멀다’고 한다. 그래서 그에게 춤은 “삶 그 자체”다. 추고 또 춰도 아쉬운 것이 아무리 살아도 서툴고 답을 찾기 힘든 인생과 같다는 것. “춤은 자신에 대한 가장 진솔한 표현이에요. 무대에 설 땐 누군가가 나도 모르는 나를 알게 될까 두려울 때도 있죠. 춤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이 늘었어요.” 박 동문은 “전통무용은 현대에 살면서 사대부 양반과 평민, 광대 등 선인의 삶에서 우러나온 희로내락을 내 몸짓으로 체험하고 표현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취미생활을 함께 하며 부부는 서로 보완해주며 산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춤꾼의 생활을 서로 이해해 주기에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산다.
“아내를 처음 봤을 때 서클 회원들이 식사하면 식탁을 돌며 모두에게 물을 따라주곤 했어요. 특이하구나 했는데 50년간 그런 품성에 변함이 없었지요. 지금도 모든 공연 준비물을 아내가 준비해요. 춤에선 대선배인 아내가 춤에 대한 감수성이 탁월해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박승준 동문)
“춤 공부할 때만큼은 내가 더 어른이 된 것 같아 좋아요. 남편이 눈 명무(춤을 감상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가 돼 내 춤을 정확히 지적해주니 고마워요.”(이숙경 동문)
나이 들어 아픈 곳이 많아지면서 춤을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좌절감이 찾아들지만, 오래도록 사랑해온 춤이 몸에 깃들고 농익어 “어느 순간 진짜 춤다운 춤사위가 나올 것 같다”는 기대가 다시 이들을 일으킨다. 무릎이 아프고, 병치레를 해도 털고 일어나 다시 춤선을 가다듬는 이유다. 지금도 두 동문은 주 3일 이상 국악관에서 춤 공부를 하고, 꾸준한 운동을 병행하며 체력을 단련한다. 며칠만 연습을 걸러도 춤태가 달라지니 게을러질 틈이 없다. “전신운동인 춤을 추면서 근력은 물론 유연성과 지구력도 훨씬 좋아졌어요. 한국무용의 깊은 호흡은 몸의 기를 순환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봉사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여전히 교육에 뜻이 깊은 두 동문은 청소년에게 전통무용을 가르친다는 목표도 세웠다. 사학연금공단의 재능기부 프로그램을 이용해볼 참이다. 이 동문은 일찌감치 대학원에서 한국무용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고 국악교육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축하 공연도 하지만 병원이나 종교 시설에 가서 위로 공연을 많이 합니다. 이 나이에 재능 기부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지만, 그분들의 삶에 비추어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위로받고 오는 때가 더 많죠. 공연을 마치고 귀갓길에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더 겸손하게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요.”(박승준 동문)
두 동문은 유유자적한 삶의 여유를 느끼며 ‘몸으로 살기’를 실천할 수 있는 취미로 전통춤을 강력 추천했다.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을 비롯해 지자체 강좌, 민간 강습소 등에서 배울 수 있다.
“쉬워 보이지만 마음 같지 않고, 고비를 넘기면 흥취와 즐거움에 빠지게 될 우리춤입니다. 나이 들면 무대에 서기 어려운 서양 무용과 달리 전통춤은 40이 넘어야 맛을 내기 시작해요. 어쩌면 맛을 담기보다 덜어낼수록 깊어지는 듯한 전통춤을 배우면서 삶의 역설적인 맛을 찾아보길 권합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