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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2020년 10월] 문화 나의 취미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 사진이 치료제”

사진작가 임창준 (치의학74-80) 이엔이치과 원장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 사진이 치료제”

사진작가 임창준 (치의학74-80) 이엔이치과 원장


사진=임창준 동문 제공 


어떤 취미는 삶과 정반대다. 온종일 고개를 숙이고 컴컴한 사람의 입속을 보는 게 업인 사람이 있다. 치의학이라는 형이하학적 영역을 공부하고, 연구한다. 그런데 카메라 렌즈만 통하면 그의 시야는 넓어진다. 하늘 높이 움트는 새순으로 눈길이 뻗고, 종교 성지의 숭고함과 신앙까지 담아낸다.

형이하학에서 형이상학으로, ‘감성에서 영성으로’. ‘사진을 통해 나 자신을 치유했다’는 임창준(치의학74-80) 이엔이치과 원장의 사진 연대기다. 그는 프랑스 ‘까루셀 드 르브르 아트페어’, ‘4인의 감각전’ 등 10여 차례의 단체전과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 치대 개학 100주년을 기념한 재능기부 전시회도 개최했다. 지난해 묵상사진집 ‘라 베르나’를 냈고 포토저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8월 31일 서초동 임 동문의 병원을 찾았다. 갤러리처럼 자신의 사진작품을 걸어놓은 길다란 복도 끝에서 그는 한창 임플란트 수술 중이었다. 빠듯한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진 이야기를 들었다.

“본과 3학년 때 치대 사진동아리 ‘포토미아’에서 시작했습니다. 사진반 반장이던 동기에게 많이 배웠어요. 형편이 어려워 사진 찍을 생각도 못 했는데 좋은 카메라를 쓰지 않아도 된다더군요. ‘똑딱이(거리계 연동식) 카메라’로 입문했어요.”

많은 청년이 그렇듯 그도 생업을 갖고 부모가 되면서 취미와 멀어졌다. “사진을 오래 찍는 편이에요. 나들이 가서 찍고 있는데 아이들이 ‘아빠 뭐해, 빨리 와!’ 해서 보니 가족과 같이 가서 나 혼자만 있더군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사진을 접었죠.”

이후 찍은 사진이라곤 수술 전후를 기록한 임상 사진뿐. 자녀를 다 키운 후에야 카메라를 쥘 수 있었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달라진 사진 트렌드를 좇으려 중앙대 사진 아카데미부터 등록했다. 한정식(국어교육55-59) 중앙대 사진학과 명예교수의 특강도 그곳에서 들었다. “조작으로만 치부했던 연출 사진이 순수 사진 못지않게 중요해졌고, ‘개념 사진’이 대세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총 3년 과정에 학기마다 절반씩 우수수 이탈했지만 다시 쥔 카메라가 너무도 소중해 끝까지 버텼다. ‘여유로운 직종의 취미 생활’로 치부받거나 ‘치과 사진만 찍으라’는 평에 이를 악물고 출사를 다니고, 갤러리를 찾아 안목을 키웠다.
미를 추구하는 사진 작업은 뜻밖의 ‘셀프 치유’ 효과가 있었다. 환자를 보며 받았던 스트레스와 압박감, 우울감, 외로움이 일거에 날아간 것이다. “이상하게 새만 보면 담고 싶었어요. 치과의사의 직업병인 디스크 탓에 15도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어 언감생심이었죠. ‘몸 펴기 운동’을 하면서 회복했고, 어느새 고개를 완전히 젖힐 수 있게 되더니 나무 꼭대기의 꽃과 새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렌즈를 들여다볼수록 피사체에서 실물 너머의 의미들이 보였다. 무성한 잎이 아닌 새싹에서, 만개한 꽃보다 터지기 직전의 꽃송이에서 더 풍부한 생명력을 읽었다. ‘생과 사’로 제목을 붙인 사진이 있다. 마른 감꼭지가 매달린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찍은 작품이다.



Eye of God, 66×100cm, Pigment Print, 2017


“사진이란 게 이상해요. 찍고 나면 그다음엔 없어요. 창덕궁에서 그 가지를 보고 여러 장을 찍은 다음 해 새싹이 조금 더 통통할 때 찍으려고 다시 갔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 관리인에게 물었더니 가지치기를 했대요. 운명처럼 느껴졌어요.”
잊지 못할 순간이 또 있다. 비가 개고 구름에 가렸던 태양이 나타난 어느 날이었다. 반짝하는 곳을 좇아 보니 바위에 고인 물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웅크린 태아의 형상. 흡사 천지창조를 보는 듯한 경이로움이었다. 신들린 듯 셔터를 누르고 ‘신의 눈(Eye of God·위 사진)’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최근 그는 ‘영원과 불멸’ 같은 개념을 표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1991년 단국대 교수 시절 입교한 가톨릭 신앙의 영향이 크다. “기도하는 사람의 영혼을 찍을 수 없나 싶었어요. 신부님께 부탁해 장노출로 성당 미사를 찍어보기도 했는데 어렵더군요.” 자신의 세례명 ‘프란치스코’와 같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예수의 다섯 상처)’을 받은 이탈리아 라 베르나 성지로 향했다. ‘아름다운 사물들 안에서 아름다움 자체를 보았다’는 프란치스코 전기의 한 구절처럼 물상 속에 스민 영성을 담아와 사진집을 냈다.


임 동문이 낸 묵상사진집 '라 베르나'(프란치스코 출판사)


2007년부터 영등포 요셉의원을 찾아 노숙자와 외국인 노동자 등을 무료 진료하는 임 동문은 진료가 일찍 끝나면 카메라를 들고 한강으로 향한다. 멀리 출사를 나갈 때 젊었을 적 사진을 말린 아내가 ‘혼자 못 보내겠다’며 운전대를 잡기도 한다. ‘인생 사진’이 나왔냐는 말에 힘차게 고개를 저으며 “이제 진짜 시작”이라고 답했다.

“치대 100주년 기념전을 준비하면서 작품을 정리하다 보니 과거의 나로부터 미래의 나를 향한 길이 보이더군요. 아버지, 어머니부터 대학교수 재직과 개원 시절, 신부님의 가르침까지… 일종의 심리 치료였죠. 지금까지 인물을 잘 찍지 않았지만 이젠 사람의 삶에 대한 사진도 찍어보고 싶어요. 내가 그랬듯이 상처 입은 사람들이 사진으로 스트레스 덜 받고 즐거운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사진 치유를 펼치고 싶습니다.”

임 동문은 모교 치대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은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다. 원광대 교수, 단국대 교수, 모교 치대 외래교수, 마이애미 의과대학 구강외과 임상연구교수 등을 거쳐 양악수술과 임플란트를 전문으로 하는 서초이엔이치과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구강안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 회장, 대한심미치과학회 회장, 아태조직은행협회 회장, 한국조직은행연합회 이사장, 과학기술처국제원자력기구 방사선 멸균사업 한국 책임자, 한국인체조직기중원 이사 등을 역임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