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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호 2021년 2월] 문화 나의 취미

학부 때 음대 과목 올A+…전공 경제학보다 높았어요

작곡하는 경영학자 김효근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


학부 때 음대 과목 올A+…전공 경제학보다 높았어요

작곡하는 경영학자 김효근
(경제79-83)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



김효근 동문은 ‘내 영혼 바람 되어’ 등 친숙한 가곡을 다수 작곡했다.



우리에게도 국민 가곡이 있었다. 1970년대는 ‘그리운 금강산’, ‘비목’. 1989년엔 가곡 ‘향수’가 반 년 만에 음반 70만장을 팔았다. 대학생도 가곡을 즐겼다. 1981년 첫 대학가곡제가 열렸다. 쟁쟁한 음악 전공자를 제치고 대상을 차지한 이는 한 경제학도. 곡명 ‘눈’, 작사·작곡가는 당시 모교 3학년 김효근(경제79-83)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이었다.

관악산 기슭의 눈에 영감을 받아서 만든 이 곡으로 화려하게 가곡계에 데뷔하더니, 별안간 경영학 공부에 집중하겠다며 사라졌다. 그리고 가곡이 ‘잊혀진 노래’가 됐을 때 다시 돌아왔다. 2010년부터 가곡 앨범만 내리 6장을 낸 그는 이제 작곡하는 경영학자다.

1월 25일 찾은 이화여대 경영대 학장실은 책상에서 의자를 180도 돌리면 건반을 마주할 수 있는 구조였다. 경영학 석사학위 취득 후 미국 유학 중에 샀던 피아노다. 다시 찾은 음악과 예술에 평생 쌓은 경영학 지식과 마인드를 ‘올인’하는 김 동문과 얘기를 나눴다.

“청소년 시절 음악과 사랑에 빠져 ‘감상 황홀기’를 보냈죠. ‘모방기’엔 독학으로 피아노와 기타를 배워 그 곡들을 재현했고요. 작곡과를 가고 싶었는데,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경제학과에 진학해 ‘반 음대생’으로 살았다. 경제학 수업은 ‘A0’ 학점을 받아도 음대 과목은 ‘올 A+’. 수학과 논리에 강해 음대서 ‘대위법, 화성법 오빠’로 통했다. 대학가곡제 대상을 탄 후 방송도 나가고 팬레터도 제법 받았지만 학자의 길을 택했다. 피츠버그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1992년 이화여대에 부임한 후에도 혹시나 마음을 빼앗길까 작곡을 멀리했다.

다시 악상을 펼친 것은 부모님을 여읜 후 쓸쓸한 마음에서다. 돌아온 가곡계는 예전의 작법을 고수하며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해결책을 내놔야 직성이 풀리는 경영학자라서 ‘마켓 센싱(시장 조사)’부터 했죠. 제가 찾은 답은 대중가요처럼 쉽고, 클래식처럼 아름다운 ‘아트팝’이었어요.”

2010년 발매한 첫 앨범 타이틀곡 ‘내 영혼 바람 되어’는 아트팝의 공식을 철저하게 따른 곡. 부모님의 1주기에 영시 ‘천 개의 바람(A Thousand Winds)’에 멜로디를 붙여 만든 곡으로 대히트를 쳤다. “클래식FM에 판을 처음 건 날, 담당 피디가 ‘청취자 게시판이 튀었다’고 하더군요. ‘이 가곡 제목이 뭐냐’면서요. 재빠르게 곡을 부르고 싶다고 연락해온 성악가도 있고요.” 몇 년 후 세월호 추모행사와 한국전쟁 국군 전사자 유해 봉환식에서 불렸다. '내 영혼 바람 되어' 공연 영상 중 가장 조회수가 많은 영상은 유튜브에서 각 70만, 600만 뷰를 기록했다. 새로운 국민 위로곡의 탄생이다.

청년 시절 지금의 아내에게 프러포즈하기 위해 만든 가곡 ‘첫사랑’, ‘사랑의 꿈’도 사랑받고 있다. 길병민 동문 등 '팬텀싱어' 출신 성악가들도 즐겨 부른다. 

“저는 클래식 따로, 대중음악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좋은 음악과 공감되는 음악만 있을 뿐이죠. 제 곡의 모든 멜로디는 ‘캐칭’(catching 귀를 잡아끄는)해야 해요. 연주자에겐 성악의 ‘벨칸토’ 창법과 좀 다르게 부르길 요청하죠. 단어 초성의 자음 음가를 ‘씹어주듯’ 불러 달라고요. 가사를 정확히 전달해야 가슴에 감동을 전할 수 있거든요.”

연애편지와 일기처럼 쉽게 읽히는 가사들 대부분을 그가 직접 썼다. 시심의 원천이 어딜까. “한국에 와서 10년 정도 경영학을 하고 한계를 느꼈어요. ‘이게 다는 아닐 텐데, 다른 곳에선 어떻게 얘기할까’ 간절히 궁금해져서 사회학, 심리학, 철학, 역사까지 독서와 토론을 거듭하며 폭을 넓혔죠. 종교학까지 가보고 ‘다 같은 이야기를 자기 관점에서 하고 있구나’ 싶더군요. 마음이 편해졌죠. 그 후에 쓰는 가사엔 인간을 여기까지 끌고 온 가장 힘세고 보편적인 것들이 남은 것 같아요. ‘생명’, ‘사랑’ 같은 것들.” 재작년 발표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그렇게 썼다. ‘내일이여 그대는 듣게 되리니 / 세상이여 영원히 기억하리라 / 아름다운 가장 아름다운 나의 노래여’.

이제 그가 골몰하는 것은 합(合)이다. 미학경영을 주창하며 “경영활동도 ‘미학적 감동’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으로 먹고살기 바빠 예술을 즐길 기회가 없던 우리 사회에 미학적 감수성을 확산시킬 방법을 궁리하다 예술에 ‘시장’을 끌어들였다. 국내 최초 예술 종합 플랫폼 ‘아트링커’다.

“한약재를 사고 팔려면 동대문 경동시장에 가죠? 어떤 분야가 활발하려면 시장에서 교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한국 예술계엔 공급자인 아티스트가 자기를 쉽게 알리고, 수요자와 연결될 수 있는 일종의 시장이 없어요. 지난 40년간 한국의 문화예술이 시장 형성보다 정부 지원과 통제 중심이었던 탓이 크죠.”

아트링커에선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프로필을 공개하고 강의와 전시, 공연, 연습공간 등을 판매한다. 예술을 사고파는 온라인 시장인 셈. 악기를 배우고 싶어도 알음알음 강사를 구하고, 가격도 비공개여서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팔듯이 레슨비도 시원하게 밝혀 놨다.  

졸업반 시절, 음악만 쫓아 꿈속에 살다 현실에 맞닥뜨린 그를 도운 건 친구들이었다. ‘효근이 걱정된다’며 대책회의를 열고, 대학원 기출문제도 구해다 줬다. 얼떨결에 걸은 공부길인데 결국 사랑하는 가곡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다. 대학가곡제에서 노래를 불러준 조미경(성악81-83 서울예술종합학교 학장) 동문과는 지금도 절친. 가곡만 자주 불리는 게 아니라, 예술이 우리 삶에 넓고 깊게 뿌리내리길 바란다.

“‘경영대 교수가 작곡하고 연주한다’면 우리는 ‘딴짓하는구나’ 하는데, 유럽에선 대통령이 색소폰을 불고, 화가도, 작가도 되죠. 평생 사람들이 사랑하는 곡 10곡만 지을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그 꿈은 이룬 것 같아요. 예술을 이해하는 경영학자로서, 죽기 전에 좋은 예술 시장을 만드는 것이 제 남은 꿈입니다.”


▷예술 종합 플랫폼 아트링커 : www.artslinker.com




▽유튜브 '김효근 ARTPOP'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user/ARTPOP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