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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2021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인생 황금기는 60~75세입니다” 102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강연

본회 조찬포럼


“인생 황금기는 60~75세입니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조찬 강연 





독서 생활화하고 취미 갖길
이기주의자는 제대로 일 못해



7월 8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본회 조찬포럼이 열렸다. 이날 102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산다는 것의 의미’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시대의 석학이자 상수(上壽)를 넘은 원로의 현장 강연으로 동문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김 교수는 국내 1세대 철학자이자 저명한 수필가다. 1920년 평안남도 대동 출생으로 젊은 시절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들었고,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30여 년간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 철학계의 기초를 다졌다.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과 한국전쟁, 오늘날 코로나 팬데믹까지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초연함보다 뜨거운 열정이 더 돋보였다. 지팡이를 짚지 않고 걸어나와 연단에 앉은 그는 손목시계를 모아 쥐고 또렷한 말씨로 1시간 30분 남짓의 강연을 꽉 채웠다. 청중 가운데는 초로의 백발 동문도, 새까만 머리의 젊은 동문도 있었다. 미답(未踏)의 백세시대에 힌트를 얻으려는 듯 초롱초롱한 눈빛이었다.

김 교수는 “내가 처음 철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가 아니었나”라며 운을 뗐다. “지금도 남은 시간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한다. 그 생각이 끝나면 아마도 우리 인생이 끝나지 않을까”라며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에서 75세까지이고,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는 취지로 인생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나눠줬다.

“작년에 만 100세가 되니까 청와대에서 지팡이를 하나 보내주데요(웃음). 설명서를 보니 조선시대엔 80세 넘은 사람에게 왕실에서 지팡이를 보내줬다고 해요. 전 누굴 만나든지 90 전엔 늙지 마라, 늙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30, 60, 90세까지 세 단계를 살게 됐으니까요.”

김 교수의 강연에는 ‘살아보니’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나는 이렇더라. 여러분은 어떠한가’. 자신이 지나온 100년의 삶에 비추어 선택권을 주는 특유의 강연 스타일이다.

그는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에서 75세까지이며,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했다. 60쯤 되니 조금 철이 드는 것 같았고, 75세쯤까지는 성장을 하는 것 같았다. 65세에 정년한 후엔 더 열심히 일했고, 76세 즈음에 제일 좋은 책들이 나왔다. 99세에 일간지 두 곳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이 얘기를 하면서 “인생에서 열매를 맺은 기간은 60대였던 것 같다. 그래서 60대엔 제2의 출발을 해야 한다. 독서로 대변되는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놀지 말고 일하라. 과거에 못 했던 취미 활동도 시작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일의 가치와 사회적 의미를 너무 생각하지 않고 산 것 같다”며 “일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했다. 자신도 여섯 아이와 북에서 데려온 동생까지 건사하느라 애쓴 시기가 있었지만, “돈이 아닌 일을 사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을 해도 피곤하지 않고, 일이 또 다른 일을 불러와 수입도 늘었다”고 말했다.

나이 80에 얻은 일에 대한 깨달음 하나를 더 보탰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엔 백 사람이 백 가지 일을 하면 백 가지 목적이 있을 것 같았지만 사실 목적은 하나예요. 정치가는 국민의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위해 정치를 합니다. 기업도 가난한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고 경제적 혜택을 받아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 하는 거죠. 교육도 마찬가집니다.

이기주의자는 사회생활에서 일다운 일을 할 길이 없습니다. 내 소유를 위해서 사니까요. 이 생각을 하고 경제관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엔 돈 벌기 위해 일했는데, 이젠 내 돈을 쓰더라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게 됐어요.”

함께 행복해지는 것은 곧 공동체 의식이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중학생이 됐을 때 아버지가 이런 얘길 하셨어요. ‘너는 이제부터 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나만의 가정만 걱정하고 살면 가정만큼밖에 크지 못한다. 친구들과 더불어 좋은 직장을 만들고,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봉사하면 그 직장의 주인이 되고 그 사회만큼 커진다.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서 살면 너도 모르게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하게 되는 게 인생이란다’라고요. 학교 교육을 전혀 못 받으신 분이었지만 어떤 목사님이나 신부님보다 우리 아버님이 해주신 그 말씀이 진리였습니다. 그게 공동체 의식입니다.”

주변에 100세 넘도록 장수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욕심이 없고, 남을 욕하지 않으며, 그 가운데서도 존경 받는 이는 좀 더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 반려자와 어머니, 막역한 지기들까지 앞세워 보낸 후 찾아온 고독 앞에서 그는 ‘모든 사람을 힘껏 사랑해 보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인생을 오래 살아보니 사랑이 있는 고생이 행복이었어요. 생각해 보니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분들 위해서 기도하고 일하고, 피곤하지만 강연도 다니니까 더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위해서 내가 고생하고자 합니다.”

김 교수는 지금도 연간 100회가 넘는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바쁜 일상을 보낸다. 지난해엔 신간 ‘백세일기’를 냈다. 90세를 넘기면서 신체와 정신 건강의 균형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그는 “정신력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95세쯤 되니 내 정신력이 신체를 끌고 가더라”며 “50대쯤 되면 기억력이 떨어지지만 창조하는 능력인 사고력은 그때부터 올라간다. 노력하는 사람은 신체가 끝날 때까지 사고력이 계속된다”고 했다.

강연 후 참석 동문들은 동창회에서 제공한 김형석 교수의 책 ‘백년을 살아보니’에 저자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김 교수는 한 명 한 명 정성껏 사인과 기념 촬영에 응했다.



강연 후 김형석 교수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동문들 모습.


이날 강연은 유튜브로도 생중계돼 200여 명이 시청했다. 유튜브 서울대총동창회 채널에서 해당 강연을 볼 수 있다.

총동창회는 매월 두 번째 목요일과 매월 네 번째 수요일 아침에 서울 시청 앞 더플라자호텔과 공덕역 장학빌딩에서 정기적으로 조찬포럼 및 수요특강을 열고 있다. 그동안 신영균 영화배우,신각수 전 주일대사, 김난도 모교 교수 등이 강연자로 초빙됐다.

혹서기를 피해 수요특강은 8월 말부터, 조찬포럼은 9월 초부터 강연을 재개한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