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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호 2023년 7월] 문화 나의 취미

“들어가야 보여요, 완전히 색다른 수중세계의 아름다움”



“들어가야 보여요, 완전히 색다른 수중세계의 아름다움”

홍지욱 (법학80-84)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다이브 마스터 자격 갖추고
수중사고 상담·소송 적극 지원


수심 20m 짙푸른 물속에서 고래상어를 마주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워 다이버들에겐 행운의 상징이다. 유순하다지만 바다에서 제일 덩치 큰 녀석이다. 몸을 틀며 휙 날아드는 꼬리지느러미에 ‘맞으면 위험하겠다’ 싶은 순간, 코앞까지 온 고래상어가 슬쩍 꼬리지느러미를 드는 것이었다. ‘나를 피해줬구나, 아껴주는구나’. 뭉클한 교감의 순간을 홍지욱 동문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홍 동문은 모교 재학 중 사시(25회)에 합격하고 수원지법·서울민사지법·제주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를 거쳐 1998년부터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스펙’ 하나가 더 있다. 다이빙강사전문협회(PADI)의 ‘다이브 마스터’ 등급 자격증 소유자다. 강사 자격증 전 단계로 준 프로 수준이다. 30년째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그를 6월 29일 대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스쿠버다이빙은 공기통과 숨대롱 등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하는 다이빙 방식이다. “3년 6개월간 제주지법에 있을 때 다이빙을 시작했습니다. 원래 골프를 했는데 잘 못 치기도 하고, 당시 공직사회에서 접대 골프가 문제되기에 아예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승마도 하고 다이빙도 하게 된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닷가에 가면 다이빙 선생님이 장비를 펼쳐놓고 있어요. 수영복만 입고 가서, 장비 착용하고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얼마나 편해요. 1년에 230일 물에 들어간 적도 있죠.”

제주도를 떠나고도 동해·서해·남해는 물론 동남아·미국·유럽 바다에서 다이빙을 계속했다. ‘물이 부족하니 물 많은 곳에서 살라’던 사주풀이 덕이었을까. 그보다 너무 깊고 넓은 다이빙의 매력 탓이었다. 다이버들의 말론, ‘하늘 아래 똑같은 바다 없다’. “한국 바다는 사계절이 장점이에요. 가을 되면 어느날 아침 갑자기 하얀 가래떡 같은 게 바다 전체에 쫙 깔려요. 오징어들이 알을 낳은 거죠. 보름에서 한 달 있으면 그 오징어가 다 부화해요. 어느 날은 자리돔이 싹 들어오죠. 바깥은 어둑어둑한데 바닷속만 밝은 경우도 있어요. 빛은 한 번 들어가면 물에서 못 나가거든요.”

배를 타고 숙식하며 다이빙하는 ‘리브어보드’ 얘기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국의 바닷속을 탐험한 추억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 몬테레이 반도 앞바다에 카누를 타고 다이빙을 나갔어요. 배는 어떻게 하나 했더니 미역이 나무보다 무성한 곳이라 미역으로 묶어 두더군요(웃음). 미역 숲을 헤치면서 장난기 많은 물개와 함께 놀던 기억이 특별해요.”

다이빙을 하면 필연적으로 해양 생물에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진귀한 바다 지형과 생물을 담는 수중 사진 촬영이 또다른 취미다. “수중 생물을 보면 정말 우주적인 피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종 다양성이 높은 바다를 좋아해요. 피그미 해마처럼 아주 작은 종, 만타가오리나 상어, 고래처럼 큰 종이 있는데 일본인은 조그만 생물을, 한국인은 큰 생물을 선호하죠. 잭피쉬나 바라쿠다같은 물고기 떼가 하늘 쪽을 가득 메우고 회오리치듯 서클링(circling)하면 그런 장관이 없어요. 만질 순 없어도 같이 헤엄치면 교감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홍 동문이 스쿠버다이빙 중 대왕조개와 찍은 사진.


비용이나 안전에 대한 두려움에 스쿠버다이빙 입문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그는 “배운 대로만 하면 절대 사고는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항상 2인 이상 버디나 팀을 이뤄 물에 들어가고, 체내 질소를 배출하는 휴식 시간도 잘 지켜야 한다. “다이버들 매뉴얼이 사실 우주인이 배우는 매뉴얼과 같습니다. 상황마다 7단계씩 안전장치가 있어서 사고 나기 쉽지 않죠. 전 편안한 다이빙을 추구해요. 모르는 바다는 현지 가이드 없이 안 들어가고, 20m 들어가기 벅찬 날엔 10m만, 50분이 힘들면 30분만 있다 나옵니다. 30년 동안 한 번도 비상탈출 해본 적 없어요.” 처음엔 저렴하고 관리가 잘 된 업체 장비를 빌려 써도 무방하고, 개인 장비를 살 경우 다이빙 전에 꼭 점검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1년에 몇 차례씩 스쿠버다이빙 사고가 발생한다. 홍 동문은 수중사고에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다이버들의 상담과 소송을 적극 도맡고, 다이빙 관련 불합리한 정책이 생길 때도 다이버들의 편에서 힘을 실어줬다. 더 나아가 수중사고조사원(UAI) 설립까지 준비하고 있다. 다이빙, 수중 의학, 수중 물리학, 수중 포렌식 등의 지식을 갖춘 전문 인력들이 교통사고 연구소처럼 수중사고만 전문적으로 조사하는 기관이다. “수중 세계에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힘들었어요. 물속에선 10m만 내려가도 빨간색이 없어집니다. 피가 나도 초록색으로 보이죠.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몰라 초동 수사나 증거 확보가 부실해지고 사건이 왜곡되는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고 건수가 많든 적든 누가 잘못했고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제대로 밝혀야 다음 사고를 예방할 수 있잖아요. 엉뚱한 사람이 책임 지는 일도 막고요. 우선 매뉴얼을 만들어 보려고 해외 서적부터 번역 중이에요. 많은 변호사 분들이 합류 의사를 밝히셨고, 의사 분들도 참여시키려 해요.”

리조트 등이 운영하는 체험 스쿠버다이빙 프로그램은 강사의 지도 하에 안전하게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면 수심 18m까지 들어갈 수 있다. 다이빙은 조류가 없거나 약한 곳에서 하기 때문에 수영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된다. 홍 동문은 10년간 철인 3종 선수로 활동하다 어깨를 다쳐 수영을 금하라는 처방을 받은 적 있다. 다이빙 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단, ‘해외에서 관광하며 3일 만에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홍보엔 현혹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따면 장롱 면허가 돼요. 한국에 들어오면 같이 가자는 사람도 없고, 어디 가서 다이빙해야 할지도 모르거든요. 다이빙은 그룹이 중요합니다. 좋은 선생님 밑에서 같이 배우고, 상급 다이버들의 돌봄을 계속 받아야 해요. 제대로 배워야 사고도 안 납니다.”

요즘도 홍 동문은 1년에 두세 차례 해외에서 다이빙을 즐긴다. 걸음마 뗄 무렵부터 바다에 데리고 다닌 덕에 자녀들도 물과 친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 필리핀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반나절은 다이빙을, 반나절은 영어를 배우는 일종의 ‘다이빙 여름학교’를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다이빙 전문 변호사’ 후배를 키우는 데도 열심이다.

“나이 들어 다이빙을 시작해도 전혀 문제 없어요. 에프엠(FM)만 잘 지키면 됩니다. 수중세계의 색다른 매력을 많이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