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0호 2022년 5월] 문화 나의 취미

“70년 된 도서관 뒷길 벚나무, 벤치로 만든 게 접니다”

가구 만드는 이광근 컴퓨터공학부 교수

“70년 된 도서관 뒷길 벚나무, 벤치로 만든 게 접니다”


가구 만드는 이광근
(계산통계83-87) 컴퓨터공학부 교수





좋은 나무가 주는 손맛에 빠져

탁자·책꽂이 등 직접 제작

모교 관정도서관 7층 로비에는 그루터기 모양의 벤치가 있다. 사실 건물보다 더 오래된 이 가구는 한때 중앙도서관 뒷길에서 분분한 낙화를 뿌리던 벚나무였다. 2015년 관정도서관이 들어설 때, 가구 만들기 좋아하는 이광근(계산통계83-87)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제작했다.

가구가 되려고 자란 나무는 없겠지만, 어떤 나무는 가구가 되어 새 삶을 살아간다. 앞마당의 오동나무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딸의 장롱이 되듯이. 좋은 나무를 만지며 곁에 둘 가구 만드는 재미에 오래도록 빠져있다는 이 동문을 4월 21일 만났다.

“저 나무가 벚나무 벤치 만들고 남은 것들이에요.” 이 동문이 연구실 한쪽 벽에 기대놓은 원목 판을 가리켰다. 길쭉하게 나무를 켜고 다듬지 않은 통원목 그대로였다. “옛 도서관 뒷길에 벚나무 여섯 그루가 아주 크게 자랐습니다. 흐드러진 꽃길을 정말 좋아했죠. 도서관을 짓는다더니, 어느 날 그 나무가 잘려서 버려진 거예요. 너무 놀라고 슬퍼 도서관장님께 메일까지 보냈어요. 그러다 평소 나무로 가구도 만들고 하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잘린 벚나무로 벤치를 만들어 새 도서관에 넣자’는 그의 제안을 학교도 반겼고, 섭섭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는지 학내 여러 사람이 합심했다. 잘린 나무를 가져다 목재소에서 1년 남짓 정성껏 말리고, 갈라진 틈을 메우고 보강했다. 건축과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벤치를 얹을 콘크리트 다리까지 제작했다. 70년간 서울대에 축복같은 꽃비를 내리던 나무는 그렇게 학생들의 쉴 자리가 됐다. 이 동문은 “가끔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교수님이 만드신 의자를 봤다’고 메일을 보내온다.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기쁘다”고 했다.

처음 목공의 즐거움을 깨달은 건 약 30년 전이다. “미국 유학 시절, 돈은 없고 가구는 있어야 하겠어 조금씩 만들었죠.”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다. DIY의 천국답게 목공 재료나 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책을 사 보면서 목공을 독학했다.

“원래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마룻바닥에 앉아 아들 줄 장난감부터 뚝딱뚝딱 만들었죠. 귀국해서도 꾸준하게 목공을 할 수 있는 공방을 찾았어요. 자유롭게 도구를 쓸 수 있고,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곳이 저에게 잘 맞더군요.”

휴대폰 갤러리를 연 그가 손수 만든 가구 사진을 보여줬다. 어머니와 아내에게 선물한 화장대 의자, 작은 콘솔, 딸아이 방에 둔 책꽂이, 옷장 손잡이까지. 단아한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미감이 예사롭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면 주변에서 ‘와’ 하고, 고등학교 미술선생님은 ‘너 같은 애가 미대를 가야 한다’ 치켜세워 주셨다”고 한다. 척추뼈처럼 길다란 세로 기둥과 가로 판 몇 개로 이뤄진 벽선반은 단순해도 꽤 기술이 필요해 보였다. “심플한 디자인이라 두께와 사이즈로만 승부를 봐야 해서 어려운데, 다행히 잘 됐다”며 그가 웃음지었다. “제일 어려운 건 의자예요. 기껏 만드는 게 화장대 의자 정도인데 초창기에 만든 건 좀 불안정하죠. 필요한 가구가 있는데 세상에서 만든 건 너무 비싸거나 마음에 안 들고, 내 나름대로 디자인해서 갖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만드는 겁니다.”

사실 우아한 취미라기에 목공은 궂은 면이 많다. 시끄럽고, 위험하고, 온몸에 톱밥을 뒤집어쓰기 일쑤다. 재단은 까다롭고 마감엔 인내가 필요하다. 목재나 장비 욕심을 내면서부턴 지출도 막대하니 취미 목공인들은 ‘돈 있으면 골프 치는 게 낫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 동문은 실용적으로 즐겨서 오래 해올 수 있었다. “입문자는 공방에 가서 배우면서 시작하면 돈도 그렇게 들지 않고,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숟가락이나 도마 정도는 일일 클래스에서도 만들 수 있다. “조급한 마음은 버리는 게 좋아요. 괜히 빨리 만들겠다고, 나뭇결을 거슬러 자르면 사고가 나기 쉽거든요. 자기 실력이나 스타일에 맞는 공방을 찾기까지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을 거예요. 공방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사용비만 내고 자유롭게 도구를 사용하거나, 공방 주인이 만들고 싶은 걸 확인하고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준비해 주는 곳도 있고요. 서울대에도 목공예 동호회가 생겨서 같이 만들면 좋을 텐데요.”

나무만 다루는 게 아니라 돌도 다룬다. 전각이 또다른 취미다. 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가동하기 전에 분석해서 미리 오류를 찾아내는 ‘정적 분석’의 권위자다. 굵직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연구생들과 프로젝트명을 정하고, 그 이름을 돌도장에 새겨 계약서에 찍는다. 무형의 디지털 분야를 연구하는데, 취미에선 원시적이다 싶을 정도로 아날로그한 물성을 즐긴다.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직업과 취미가 보완이 되는 삶인 것 같네요. 낚시하는 분들이 손맛 얘기할 때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나무를 만지면서 알게 됐죠. 끌 끝에서 전해오는 느낌이 나무마다 달라요. 체리나무는 햇빛을 받으면 불그스레하게 색이 올라오고, 참나무는 얇게 떠도 철같이 튼튼해요. 단풍나무는 딱 부러지는 느낌이 있죠.”

목공은 어쩌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됨됨이를 또 한 번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무 만지는 이들은 나무를 사랑할 수밖에 없나 보다. “저희 집 아파트가 재개발을 앞뒀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느티나무가 있어요. 출근할 때마다 너 이제 죽겠구나, 쓰다듬어 주고 오죠. 새 건물을 지을 때 나무를 살려서 건축하는 게 최선이고, 정 자르게 된다면 그 나무를 사랑한 사람들에게 알려서 인사할 시간은 줘야 한다고 봐요. 그 나무에 추억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무참하게 잘라버리나요. 우리 세대에선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