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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019년 3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패스트 팔로어’로는 안 된다 ‘퍼스트 무버 서울대’로 가겠다”

오세정 (물리71-75) 모교 총장 특별인터뷰


“‘패스트 팔로어’로는 안 된다 ‘퍼스트 무버 서울대’로 가겠다”

오세정 (물리71-75) 모교 총





서울대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한민국 최고 대학이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고 서울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안에서는 노사관계, 법인화 문제가 상존한다. 새 총장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세정 총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동안 서울대 총장 임기(4년)는 7월부터 시작돼 2학기부터 활동에 들어갔지만 총장 재선출 사태를 겪으며 수장에 오른 오세정 총장부터 자연스럽게 새 학기로 조정됐다. 입학식이 열린 3월 4일 오후 관악캠퍼스 본관 집무실에서 오 총장을 만났다. 소파를 들어내고 긴 타원형 탁자를 놓은 총장 집무실의 변화에서 소통의 의지가 읽혔다.



대담 : 이선민 (국사80-84) 본지 논설위원·조선일보 선임기자



국세 받아 지방세 내는 문제 시급히 해결
서울대가 거점국립대학 플랫폼 역할 해야
10개 연구 분야에서 세계 10위 달성 목표



-국회의원 임기 절반을 남겨두고 모교 총장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지원서를 낸 결정적인 계기는 2위 후보였던 이건우 교수님이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었다. 주변에서 권유하는 분도, 만류하는 분도 있었다. 국회의원으로서도 할 일이 많고, 총장 선출도 불확실해 고민이 컸다. 하지만 모교가 위기에 빠졌는데 안일함에 안주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취임사에서 개혁을 강조했다. 상투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모교의 지금 상황에서 울림이 컸다.
“취임사를 준비하면서 먼저 서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서울대의 위상이 떨어진 게 외부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밖에서 기대하는 만큼 역할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서울대 본연의 역할은 공공성이다. 인력양성, 산학협동, 연구 등을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나. 개혁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각론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학부모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입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서울대는 공정한 기회 제공과 다양한 인재 선발을 위해 학생부를 중시하는 수시 모집을 늘려 왔다. 수능 성적만 보면 자라면서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은 학생들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교수님들도 수능은 도식화된 시험이란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입시가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다며 수능을 통한 정시로 뽑자는 여론도 있다는 것을 안다. 국회의원 시절 교육부에 수능시험을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바꾸라고 요구했다. 지금처럼 오지선다형 문제, EBS 몇 퍼센트 반영은 큰 의미가 없다. 동시에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밖에서는 입시 문제에 관심이 높지만 서울대 입장에서는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 같다.
“서울대가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면서 교육에 소홀했던 면이 없지 않다. 교수 임무의 절반은 교육이다. 교수들이 학생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학생과 교수의 1대1 면담이 많아져야 하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신입생 세미나도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요즘 학생들은 고민이 있으면 선배나 동기를 찾는데, 교수도 찾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교수 평가에서 그런 부분을 강조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잡기 위해 교육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교육 문제는 총장의 4년 임기 안에 풀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6년 임기로 운영되는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서울대가 배출하고자 하는 인재상은 어떤 것이고, 그런 학생을 어떻게 선발해서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묻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연구자이고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해 연구 행정 경험도 갖췄다. 서울대의 연구 역량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연구논문의 양은 글로벌 톱 수준이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보다도 많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의미 있고 독창적인 연구는 부족하다. 아직까지 따라가는 입장이지 선도하는 위치에 이르지 못 했다. 동료 연구자들의 평가에서 딱 떠오르는 연구 업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10-10 프로젝트’란 공약을 냈다. 10개 분야에서 세계 10위 안에 들겠다는 목표다. 독창적 연구를 하는 학자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지원을 제공하고 성과를 기다리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서울대의 위상 회복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에 서울대 교수들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공공성에도 맞는다. 한국과 관련된 현상과 문제를 제대로 짚으면 세계적인 연구가 될 수 있다. 가령 한류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등은 세계적인 관심을 끌 것이고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주제다.”

-서울대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서는 봉사 또한 중요하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우리가 정말 잘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필요한 봉사는 거점 국립대학을 돕는 일이다. 서울대 혼자 잘 나갈 생각을 말고 지방의 국립대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대학이 인적·물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개발도상국들에 교육 시스템을 전수할 때 함께 하거나, 국제 봉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거점 국립대 학생을 참여시킬 수 있다. 거점 국립대가 몰락하면 그 지역이 망가진다.”

-새로 조성하는 시흥캠퍼스에 대해 지역주민은 물론 모교 구성원들도 관심이 높다. 그동안 난항을 거듭해 왔는데 현재 진행 상황이 궁금하다.
“임기 중 중요한 현안의 하나다. 그래서 지금까지 태스크포스 형태로 진행해 오던 것을 이번에 추진본부장을 두고 새롭게 추진할 시스템을 갖췄다. 시흥캠퍼스는 기본적으로 4차 산업을 인큐베이팅하는 산학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스탠퍼드대나 칭화대를 보면 주위에 산학협력 클러스터가 조성돼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정부도 혁신성장을 끌고 가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 우리에게 있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고. 주민들이 바라는 병원도 환자 진료 외에 바이오메디컬 벤처와 연계되는 방향으로 지어질 것이다. 어려운 질병을 치료하고 연구하면서 사업에도 기여하는 형태를 바라고 있다.”

-서울대가 법인으로 전환한 지 9년째를 맞았는데도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법인화법 개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법인화를 통해 기대했던 이점은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부작용만 부각되다 보니 일부에서는 법인화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까지 나오는 것 같다. 법인화가 되면서 예산과 인사 등에서 자율성을 갖는 데 큰 의의를 뒀다. 이런 부분에서 소득이 있었지만 거기에 걸맞게 조직체계를 바꾸지 못했다. 또 법인화 과정에서 연습림 등 국유재산이나 세금 문제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지금 당장 세금 문제가 시급하다. 1년에 100억원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국세를 지원받아 지방세로 내는 웃지 못 할 상황이다. 사실 법인화할 때 너무 서두르다 보니 구성원들의 법인화에 대한 제대로 된 합의가 없었다. 그래서 법인화재정립위원회를 만들어 법인화에 대한 서울대 구성원들의 생각들을 한데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들을 풀어나갈 계획이다.”

-위원회들을 설립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총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리더십을 갖고 분명하게 방향을 잡는 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런 조직들이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구성원들과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견 수렴 없이 집행부가 뭔가를 하겠다고 하면 반발이 크다. 사실 서울대는 종합대학이냐 연합대학이냐는 물음이 제기될 정도로 단과대학들의 힘이 세다. 일방적으로 끌고 가기엔 무리가 있다. 과거보다 여건이 나아진 것은 많은 교수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위기감이 없으면 좀체 바뀌지 않는다. 이제 서울대가 가장 우수한 학생을 뽑는다고 장담도 못한다. 서울대가 변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수의 교수들이 동의하고 있어서 교육위원회, 법인화재정립위원회 등이 제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모교의 역대 어느 총장보다도 다양한 외부 활동 경험을 갖고 있다. 그 경험이 모교 운영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
“연구기관장과 국회의원 경험이 모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기관장은 노사문제 등을 다뤄야 하고 정부나 국회도 상대해야 하며 마지막에 책임을 지는 자리라서 학교 보직이나 외부기관의 자문위원장을 맡을 때와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국회의원으로서 배운 점은 국민의 입장에서 서울대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니 ‘이래서 서울대가 욕을 먹는구나, 이런 면이 취약하구나’ 느끼게 됐다. 또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아니까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때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대 역사에서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당장은 현안이 너무 많아서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유례 없는 총장 공백이 반년 정도 있었고 노사관계도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연구부정, 미투사건 등도 벌어졌다. 지금은 우선 학교를 정상적인 궤도로 올려놔야 할 시기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은 서울대의 체질을 바꾸는 데 힘을 기울이겠다. 한국의 많은 조직이 ‘패스트 팔로어’로서는 굉장히 잘 하는데 ‘퍼스트 무버’가 될 준비가 안 돼 있다. 연구·교육 모두 선진국을 잘 쫓아왔지만 이제는 그 모델로는 성공할 수 없다. 서울대가 먼저 ‘퍼스트 무버’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서울대는 거대한 항공모함 같아서 방향을 틀기가 매우 힘들다. 그런데 한 번 방향을 틀면 흔들리지 않고 그쪽으로 간다. 서울대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틀어놓은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정리=김남주 기자


경기고 수석졸업 서울대 수석입학


오세정 총장은 1971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예비고사 수석을 차지하고, 모교에 수석 입학했다. 경기고등학교도 수석 졸업했다.

모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모교 물리학과 교수, 자연과학대학 학장을 지냈다. 기초과학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이끌었고,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기초과학연구원 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아 과학기술 연구 정책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2014년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해 정책평가에서 1위로 이사회에 추천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6년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직하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2번)로 출마해 당선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이며 1998년 제6회 한국과학상을 받았고, 2003년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주요 연구 업적 및 저서로 국내외 총 181편의 학술논문과 ‘스무 살에 선택하는 학문의 길-물리학 : 자연과학의 근본’(공저, 아카넷), ‘과학이 나를 부른다-과학교육 어떻게 해야 하나’(공저, 사이언스북스), ‘어린이 대학: 어린이가 묻고 석학이 답하다’ (공저, 창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