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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호 2019년 3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하노이 정상회담과 변화하는 미국의 대북정책

윤영관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칼럼
명사칼럼

하노이 정상회담과 변화하는 미국의 대북정책

윤영관
외교71-75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아쉽게도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났다. 북한이 영변 핵프로그램을 해체하고 이에 대해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개설, 부분적인 제재 해제(미국이 어렵다면 남북경협에 대한 예외 인정) 정도로만 합의가 이루어졌더라도, 그것은 긴 비핵화 과정의 의미 있는 출발점을 기록했을 것이다. 

그러나 양측의 기대가 서로 어긋났다.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에서 “영변 지구의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에 대한 영구적 폐기를 미국 전문가 입회하에 진행”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북은 이에 대한 대가로 2016년 이후 채택된 5개의 대북제재 중 “민수, 인민 경제에 지장을 주는 항목”(광물, 농수산물, 섬유제품 수출, 해외노동자파견, 북한과의 합작사업 및 신규투자 금지) 해제를 요구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북의 요구를 북한경제에 타격을 주는 대부분의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하고 거부했다. 이 요구에 응하면 영변 이외 지역의 모든 핵 프로그램 제거에 필요한 미국의 압박 수단이 사라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은 영변 이외의 특정 핵시설 해체를 추가로 요구했고, 아예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대북제재해제와 맞교환하는 통큰 거래도 제안했으나, 북측이 거부했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있다. 부정적 측면은 미국과 북한 모두 톱-다운(top-down) 방식에 너무 의존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에 자랑하던 자신의 협상술을 과신한 듯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골치 아픈 미국 실무협상팀들을 우회해서 직접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하면 자신의 복안대로 나갈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본격적 실무협상은 정상회담 직전 2월에 두 번 열렸을 뿐이다.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 때는 1년 4개월, 2005년 9·19 6자합의 때는 2년이라는 실무협상 기간을 거쳤던 것을 고려할 때, 하노이 정상회담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두 번 만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이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크게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왜 긍정적인가? 북핵 문제가 1990년대 초 불거진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은 범법국가(rogue state)인 북한을 우월한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압박하고 고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했는데도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길로 나서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필사적으로 핵 개발에 매달렸고 그 결과 지금은 실질적인 핵보유국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힘으로 압박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문제가 바로 국제정치에서 ‘인식(perception)’의 문제다. 즉 이쪽 관점만 생각하지 말고 저쪽이 이쪽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잘 알아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미국의 의도를 어떻게 인식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키면서, 아무리 “우리는 당신네들을 공격할 적대적 의도가 없다, 핵만 포기하면 된다”고 외쳐봐야, 북은 그것을 믿지 못하고 방어적이 돼서 더욱 핵개발에 매달렸던 것이다. 결국 북한은 압박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포용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했고 이것으로 기존 대북정책을 보완했어야만 했다.

사실 그러한 접근을 처음 시도했던 사람이 클린턴 대통령이었다. 그는 2000년 적극적으로 북한을 포용했고, 그 결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방북, 조명록 차수의 방미가 이루어졌다. 더 나아가 2000년 10월 조명록의 방미시 양측은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아주 좋지 않았다. 대선이 임박했기에 결정적인 북미관계 개선을 밀고 나가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들어선 후 미국은 북미간 적대관계 중단 합의를 일방적으로 폐기처분했고 부시행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트럼프 대통령이 클린턴 이후 최초로 대북 정치적 포용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한 정치적 결단이 2017년의 위기국면을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한 큰 그림에서 보았을 때,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의 만남 그 자체가 중대한 의미가 있다.

또한 북은 최초로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공식을 받아들였고, 미국도 스티브 비건 협상대표가 1월 31일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말했듯 동시병행적(simultaneously in parallel) 접근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양측이 협상타결의 기본공식(formula)에 합의를 한 것으로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다만 구체적인 디테일(detail)에 가서 얼마만큼의 제재 해제를 얼마만큼의 비핵화 진전과 바꿔야 될 것이냐의 문제에서 서로 틀어진 것이었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더이상 실무팀을 건너뛰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담판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부분적 비핵화를 주고 전면적 제재 해제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식하에 좀더 현실적인 새로운 협상 포지션을 설정하고 최소한 5~6개월의 충분한 실무협상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도 과거와 같이 북한의 선(先) 행동을 압박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동시적 병행적 접근법에 입각해서 대북 실무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미 관계의 질적인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취해나갈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북한경제개발을 위한 북미양자협의체 신설, 인도주의적 지원 강화, 북한 스포츠팀이나 예술 공연팀의 초대 등도 그러한 조치들의 일환이 될 것이다. 

그러한 방향으로 양측의 입장이 정리되어 충분한 실무협상 기간을 갖고 준비를 한다면 금년 하반기쯤에는 성과 있는 3차 북미정상회담을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