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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6호 2018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미스터 션샤인’과 경계인

전경하 독어교육87-91 서울신문 경제부장 본지 논설위원

‘미스터 션샤인’과 경계인




전경하

독어교육87-91 

서울신문 경제부장 본지 논설위원


“난 익숙해서. 조선에서도 미국에서도 늘 당신들은 날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하니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노비 출신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필자가 이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경계인으로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살기 위해 조선을 떠난 노비의 자식이 미군이 돼서 조선에 돌아와 경험하는 사건들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경계인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보여줬다. 19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에서 나온 경계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100년을 지난 지금도 그 세월만큼 진보하지 않았다. 아직도 낯설어한다.


경계인. ‘주변인과 같은 뜻. 소속 집단을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습관·가치를 버리지도 못하고 또한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금성출판사의 국어사전은 적고 있다. 이 용어는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전 뮌스터대 교수가 자신을 지칭하면서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송 교수는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존재’라고도 규정했다.


경계인 자체는 선택이 아닌 운명으로 주어진 것이다. 경계인이 된 이후의 삶을 상생의 길로 택하면 참으로 삶이 고단하다. 송 교수의 삶이 증명하듯이. 송 교수의 두 아들은 독일 사회에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문화가정의 초중고생이 12만명이다. 전체 학생수 630만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


하지만 전체 학생수는 지난해보다 2.5% 줄었지만 다문화 학생수는 11.7% 늘었다. 전체 학생 100명 중에 2명은 국제결혼한 부모 아래서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입국한 경우에 해당한다. 때론 한국에 사는 외국인 부모와 같이 살거나.


앞으로 이 비중은 더 늘어날 거다. ‘기러기 아빠’로 대변되는 유학을 간 자녀들은 이제 성인이 돼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 배우자는 한국인일 가능성이 낮다. 자라고 배운 환경이 한국과 다르니 한국인과의 결혼을 강제할 수도 없다. 이들과 그 자녀들이 한국에 와서 정착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이들을 내치지 않을 준비가 돼 있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외국에서 태어난 디자이너들이 보다 독창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본인이 활동하는 나라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의 경험이 디자인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낯설음과 익숙함을 섞어낼 수 있는 장점. 긴 글을 쓰고는 그 내용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사람한테 글을 보여주고는 오탈자나 잘못된 문장을 바로잡게 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쓴 사람의 눈에는 익숙한 글자가 문법 등에 어긋나면 그들의 눈에는 보인다. 때로는 전체적으로 어색한 지향성도 보일 수 있다. 정부는 저출산이라며 출산을 장려하고 있다. 그나마 요즘은 정책의 초점이 출산뿐만 아니라 양육으로도 옮겨가고 있어서 반갑다.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다.


적은 숫자, 하지만 가능성이 큰 아이들에게도 노력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나서 우리의 손길이 닿으면 우리 식구가 될 그런 아이들 말이다.


다양성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에서는 소수를 위한 정책에서 겹치는 것이 다수를 위한 정책이다. 다문화 포용성은 특정 문화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개별 소수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를 위한 정책을 펴다보면 많은 소수가 전체에 해당하는 답을 내놓는다. 미국의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 의미하듯이 말이다.


시간 낭비라 생각하지 말고 적은 소수에 집중해보자. 그 적은 소수는 네트워크상, 사회 구조상 많은 다수와 연결돼 있다. 그 안에서 답을 찾으면 그것이 다수, 때로는 다수에 속하면서도 개념상 딱히 특정지어지지 못하는 목소리 낮은 소수를 위한 정책일 수 있다. 집토끼를 위한 정책은 때론 산토끼를 위한 정책에서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