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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018년 4월] 기고 에세이

동숭로에서: 학림다방과 마리오네트 그리고 백자항아리

이경희 (약학56졸) 수필가






이경희(약학56졸) 수필가



종로5가에서 미싱자수학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춤 평론가인 조동화 선생이 찾아와서 “이경희 씨, 학림다방을 사세요.” 설명도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조동화 선생은 나의 대학 선배로 늘 나에게 좋은 말을 전해주곤 하는 분이었다.


선배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2층에 있는 ‘학림다방’ 보다는 1층에 더 관심이 갔다. 1층에 인형극장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마리오네트(인형극)공연을 보았을 때 어찌나 그 공연이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지 우리나라 어린이도 이런 공연을 보며 정서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문화의 거리, 학림다방 건물 1층에 어린이들을 위한 마리오네트극장이 생기면 적격일 것 같았다. 마침내 나는 선배의 권유에 따라 학림다방의 주인이 되었고, 1층은 ‘마리오네트’(줄 인형극)라는 이름의 식당으로 세를 주었다. 그리고 2층 학림다방을 ‘커피숍’이라고 하겠다는 것을 ‘학림다방’이라고 그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세를 주지 않겠다고 하는 나의 말뜻을 알아듣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동숭동의 ‘학림다방’이 그렇게 되어 오늘날까지 명소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나는 내심 흐뭇해하고 있다. 그 때 심심치 않게 실렸던 학림다방에 대한 신문기사 중의 하나를 여기에 적어본다.


‘동숭동의 사랑방, 학림다실 문 닫아… 동숭동 캠퍼스시절에 대학촌의 사랑방노릇을 했던 학림다실이 26일 저녁 문이 안으로 굳게 잠겼다. 허름한 2층 건물인 학림다실이 새 주인을 맞아 2층은 카페와 전시실로 바뀌고 1층은 인형극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제 옛 대학촌의 마지막 유물격인 학림다실마저 문을 닫게 되니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1982.5.31. 대학신문)


학림다방과 관련해서 한 가지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건축가인 고 김수근 씨가 죽음을 앞둔 병실에서 문병을 간 나에게, 학림다방 입구에 네모 조형물을 세워 그곳에 백자항아리를 넣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하라고 스케치 한 장을 그려주었다. 내가 스케치를 보고, 백자항아리를 사람들이 가져가면 어떻게 하라고 그런 것을 길가에다 만들어 놓게 하느냐고 하니까, “왜 도독 맞을 생각부터 해요? 거리를 아름답게 하면 사람들 마음도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가져가면 또 새로 갖다 넣으면 되지 않아요? 내 집 앞을 위해 그 정도는 투자해야지요.” 나는 김수근 씨가 그려준 스케치대로 농녹색(濃綠色) 아크릴 조형물 위에 유리 장을 만들어 백자항아리를 사다 넣었다. 과연 지나가는 사람들은 조형물 앞에 서서 둥근 백자항아리를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지나가곤 하였다. 그 일은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한 5개월 가까이 되었을까,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백자항아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네모 유리장 안의 백자항아리가 사라졌는데도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다. 얼마 동안이라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기 때문이다. 발길을 멈추고, 학림다방 앞에서 미소를 짓고 간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놓지 않았던 것이 아쉽다. 그때, CCTV가 없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