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1호 2018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펄 벅과 한국, 서울대인

최종고 모교 법대 명예교수, 대학원동창회장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이라면 ‘대지(The Good Earth)’로 노벨상을 받은 미국 여성소설가로, 좀더 나아가 한국을 무대로 한 소설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를 썼다는 사실 정도로 알 것이다. 반세기를 지나는 동안 한국인은 너무 건망증을 과시했고, 서울대인도 예외가 아니다.


펄은 선교사의 딸로 중국에서 40년간 살다 모택동과 공산주의를 비판하면서 1934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중국방문에 동행하려다 중국의 비자거부로 비통 속에서 이듬해 서거했다. 한편 1960년 이래 여덟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특히 미군과 한국 여성 사이의 혼혈아들을 위한 ‘희망원’을 세우는 등 깊은 애정을 기울였다. 여사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동서화해를 위해 소수자의 인권을 줄기차게 주장한 행동가였다. 백악관 만찬에서 케네디 대통령의 잘못된 한국관을 즉석에서 시정해주는 용기도 보였다.


첫 방한은 4·19혁명이 난 1960년 11월 1일이었는데, 윤보선 대통령을 예방하고 서울, 대구, 경주, 부산을 일주하면서 혁명 후 지식인이 제 몫을 하지 않으면 중국처럼 공산주의가 득세한다고 역설했다. 8일에는 서울대 음대 강당에서 환영음악회를 가졌고, 국립국악원도 방문하였다. 서울시와 부산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하면서 한국명을 최진주(崔珍珠)라 했고, 1972년에는 국회에서 이해랑 문공위원장 명의로 노벨 평화상의 후보로 추천했다.


제2의 ‘대지’로 쓴 ‘살아있는 갈대’는 한 마디로 소설로 본 한국 근현대사 내지 독립운동사이다. 장왕록(1924-1994) 모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에 의해 처음에는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라 번역된 이 대하소설은 첫 마디가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Korea is a gem of the country inhabited by a noble people)”. 여사는 중국에서 여운형, 미국에서 유일한, 강용흘, 그리고 한국의 모윤숙, 김말봉, 박화성, 한무숙, 문명자, 최진영 등 여성 문인들을 통하여 한국의 사정을 공부했다. 리처드 킴(김은국)도 신뢰하는 한국인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2006년에 부천에 펄벅기념관이 섰고, 작년에는 부천이 동아시아 유일의 유네스코 국제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됐다. 앞으로 원대한 계획들이 전개될 전망이다.


 필자는 작년에 중국 젠장(鎭江)에서 열린 국제펄벅심포지엄에 참석하고 여러 대학에 펄벅연구소(賽珍珠硏究所)가 설립되어 대대적인 연구를 하면서 ‘동서양의 가교’로 활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작년 10월 한국펄벅연구회를 창립하였고, 오는 9월에는 미국에서의 펄벅심포지엄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여사가 그렇게 애정을 기울인, ‘고상한 민족의 보석 같은 나라’인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모습은 오늘날 어떻게 되어있는가? 그 고상한 국격(國格)과 인격(人格)을 어디서 찾아볼 수 있는가? 이런 근원적인 논의를 귀찮다고 외면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은 아닌가? 누구보다 서울대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가 펄 벅 연구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우선 중앙도서관에는 펄 벅의 저작과 연구서가 제대로 구비되어야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지나간 최근의 역사를 복원해 보다 의미있는 현재와 미래의 활력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최종고(법학66-70) 모교 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