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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2018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핵(核) 파는 처녀

송호근 모교 사회학과 교수

핵(核) 파는 처녀


송호근
사회75-79
모교 사회학과 교수


‘저 하늘에도 슬픔이’ 전쟁고아 이윤복의 일기에 남녘 동포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던 1960년대, 북녘 동포들은 아동극 ‘꽃파는 처녀’로 혁명의지를 다졌다. 정비석의 ‘자유부인’에 심기일전한 한량 남녀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며 스텝을 사뿐히 밟을 때, 북한 주민들은 ‘천리마운동’에 등골이 휘었다. 새벽별 보며 집을 나서는 북녘 동포들의 허기를 혁명가곡이 채웠다. 전사의 등을 떠미는 힘은 음악과 미술에서 나온다는 게 사회주의 예술론이다. 동북항일연군과 조선의용군은 가두연극과 집단가창으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중국 인민들도 조선의용군의 가두극과 앙가(秧歌)를 무척 좋아해 따라 부를 정도였다. 중국촌민들과 의용군이 함께 어울려 춤을 췄다. 행군하다 쉬는 곳은 즉석 무대다. 그 전통이 김일성부자와 손자대로 이어져 소위 ‘음악정치’의 전술적 의미가 완성됐다.

선군정치의 백코러스인 음악정치 유전자를 건드린 것은 김정일의 처남 장성택이다. 자유분방한 기질의 장성택은 음악소양을 갖춘 김일성대학 청년들을 조직해 ‘택성악단’을 창단했다. 장성택의 비호 하에 40여 명이 모여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를 했다. 이 발랄하고 당돌한 음악밴드는 대중에 모습을 나타내 환영을 받았는데 급기야 정치범 수용소를 위문공연하자 김정일의 분노가 폭발했다. 보위부가 택성악단 청년들을 순식간에 체포했다. 장성택만 빼고 모조리 처형됐다.

두뇌회전이 빠르고 전술에 능한 김정일이 묘안을 냈다. 악단을 거꾸로 활용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재능과 끼를 갖춘 젊은 미인들을 전국에서 선발해 예술단을 만들고 북한 체제를 미화 선전하는 것. 왕재산경음악단, 보천보전자악단이 그렇게 창단됐다. 이들은 우선 당정 고위간부 연회 때 기쁨조로 활약하다가 나이가 차면 음악정치라는 명분하에 국가행사로 내몰렸다. 인민대중들에게 선물로 내 준 것이다. 2009년에는 이설주, 현송월이 속한 은하수관현악단이 창단됐다.

혁명가극 ‘꽃 파는 처녀’를 영화로 만들 때 김정일이 주제가를 작곡한다고 나섰다. 금성악단 소속 화영초대소 성악배우가 김정일이 만든 주제가 ‘꽃 사시오’를 정말 눈물지게 불렀다. 연주회장은 감동의 물결로 덮였다. 북한의 내로라하는 작곡가들이 황금예술의 극치라고 김정일을 치켜세웠다. 한층 고무된 김정일은 북한 음악계의 거장이자 ‘당의 참된 딸’을 작곡한 이찬서에게 평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찬서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한심하네요. 이 노래는 미국동요 ‘클레멘타인’의 명백한 표절입니다.” 그러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클레멘타인을 연주했다. 연주회장은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며칠 뒤, 이찬서와 가족은 평양에서 사라졌다 (김평강, ‘풍계리’).

아버지의 유전자가 작동했는지 김정은도 모란봉악단(2012년), 청봉악단(2015년)을 연달아 창단했다. ‘음악정치는 수만 톤의 쌀, 수천 대의 탱크보다 더 위력적’이라는 아버지의 유훈을 떠올린 김정은이 세계의 겨울잔치인 평창올림픽을 그냥 스칠 리 없다. 아이스하키팀을 포함 대표선수는 고작 40여 명에 불과한데, 삼지연관현악단 140명, 응원단 230명, 태권도시범단 34명 해서 400여 명의 종합예술단을 선심 쓰듯 내려 보내기로 했다. 근사한 말과 함께. “민족의 위상과 기상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올림픽이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란다.” 오매불망 대화 창구를 고대하던 청와대가 자다가 벌떡 일어날 경사였다. 통일부를 필두로 ‘평양손님 모시기’가 극진하게 펼쳐졌다.

평양손님들이 단체로 왔다. 모두 인민공화국 배지를 훈장처럼 달았는데 마식령스키장에 합동훈련 갔던 우리 선수들은 정작 태극기를 못 달았다. 선수들 유니폼으론 국적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인다면 인내할 가치가 있는 불공정 처사였다. 평창올림픽에 참가한 500여 명에 달하는 선수단, 응원단, 관현악단, 그리고 관련인사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손님이니까 의당 그래야 했다. ‘초청’인지 ‘참가’인지가 헷갈렸다. 체류비와 교통비를 모두 남한 당국이 댔다면 초청이다. 그런데 선심 쓰듯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는 북한 당국은 ‘참가’ 모드였다. 돈 대고 극진히 대접하는데 참가라니? 초청이라면 호스트의 예법에 따라야 한다. 참가라면 보편적 범례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남한 당국은 초청형식의 태도를 취했다. 눈발이 날릴 때 국정원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청와대는 혹여 평양당국이 삐칠까 노심초사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

고인이 된 가수 백설희가 불렀던 ‘봄날은 간다’의 그 여인처럼 말이다.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서 ‘알뜰한 그 맹세’를 의심치 않는 여인. 알긴 알 것이다. 평양당국이 글로벌 쇼무대에 젊은 예인(藝人)들의 끼를 한껏 살려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겠다는 속셈을. ‘꽃 파는 처녀’로 감정선을 자극해 핵놀이 기억을 지우겠다는 그 음악정치의 속 깊은 뜻을 말이다.

김정일 작사 작곡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 무대 장면은 이렇다.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앓는 엄마 약 구하러 정성 담아 가꾼 꽃/ 꽃 사시오 꽃 사시오 이 꽃 저 꽃 빨간 꽃.’ 주연배우의 구성진 곡조가 심금을 울릴 때 배경화면에는 천리마운동과 미사일발사 장면이 혁명의지를 고조시킨다. 이게 음악정치의 실체다.

평양은 한국민요와 세계명곡을 연주한다고 남한당국을 미리 안심시켰다. 알뜰한 맹세대로, 아리랑을 부르고 베토벤의 교향악을 연주한다. 현송월이 남녘 남자들의 심금을 울리고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다. 남북대화 창구가 열린다. 민족의 위상과 기상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진정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잊지 말 게 있다. 음악정치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현송월의 앞모습은 ‘꽃 파는 처녀’이고, 뒷손엔 핵무기가 들려 있음을. 말하자면, ‘핵(核) 파는 처녀’다. ‘핵 사시오 핵 사시오 인민의 피로 빚은 어여쁜 핵’. 알긴 알 것인데, ‘오늘도 언 가슴 두드리며 실없는 그 기약’에 또 마음을 실어보는 남녘 정권에 님은 올까, 아니면 쌍코피 터질까. 봄날은 벌써 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