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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22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한국판 이중결정을 생각할 때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 칼럼
동문칼럼
 
한국판 이중결정을 생각할 때다 



신각수
법학73-77
전 외교부 차관

북한이 좌우해온 한반도 핵문제
협상진척 없으면 전술핵 갖춰야
 
 
북한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래 교섭 재개를 거부한 채 핵·미사일 능력을 집중적으로 늘려왔다. 올해는 연 기준 역대 최대를 넘어선 다양한 미사일 실험으로 고도화·다양화를 꾀하여 미사일 방위를 어렵게 하고 있다. 또한 60여 개의 핵탄두와 함께 매년 핵탄두 6~10개 분량의 핵물질을 생산하는 가운데 7차 핵실험준비를 마치고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북핵 시계바늘은 빠른 속도로 ‘사실상 핵무장국가’의 완성을 알리는 자정을 향해 내닫고 있다. 수년 내에 미국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고 100여 개를 넘는 핵탄두를 보유함으로써 2차 타격능력을 갖추게 되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인도태평양과 지구촌 전체의 안보를 뒤흔들 큰 전환점(game changer)이 될 것이다. 

북핵문제는 지난 30여 년간 크게 세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1993년 1차 위기는 북미 협상 결과 제네바 합의로 봉합하였으나,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발각으로 파탄되었다. 2차 위기는 2005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채택으로 진전이 있었으나, 북한의 검증 거부와 1차 핵실험으로 2008년 파탄이 났다. 2017년 화성 15호 미사일실험과 6차 핵실험으로 고조된 3차 위기도 세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함으로써 비핵화는 짙은 안개 속에 갈 길을 잃었다. 결국 미국·중국·일본·러시아 4개 강대국과 명목 GDP기준 북한보다 58배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북한에 속아서 같은 말을 세 번이나 산 셈이다.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합의-이득-위반-재도발 패턴을 깨지 못 한 채, 북한에 생존을 위해 핵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강제하지 못 함으로써 북핵 폐기에 실패하였다. 

북핵 대응전략은 비핵화(Denuclearization), 억지(Deterrence), 방어(Defense)의 3D를 축으로 한다. 비핵화는 새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였지만, 북한이 핵을 국체라 하면서 핵무력 완성을 김정은체제 10년의 큰 성과로 본다는 점에서, 교섭 재개가 불확실하고 재개되어도 실질적 진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실패로 끝난 하노이 회담에서 제시했던 것 이상으로 북한이 양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북한은 미중 갈등을 활용하여 중국을 뒷배로 생존의 안전판을 확보하고 있다. 바이든정부는 북핵 교섭의 조건 없는 재개를 제안하고 있지만, 북핵문제는 미국 외교정책에서 우크라이나전쟁, 대만문제, 이란핵합의 재개 등에 밀려 동력을 잃어 오바마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즌2와 비슷한 양상이 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가 제재 결의는 물론 의장성명 채택조차 실패한 사실은 국제사회의 단합된 대응이 요원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비핵화 교섭의 문은 열어두어야겠지만, 비핵화를 위한 기회의 창은 거의 닫혀가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 판단 위에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억지와 방어를 강화하면서 비핵화를 위한 여건을 조성할 시점이다. 이를 위한 우리 국방력 강화와 한미 연합억지력 제고에는 상당한 선행시간(lead time)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구체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새 정부는 3축(K) 체계인 킬체인(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대량보복전략(KMPR)의 조기 추진과 한미 확장억지전략협의회(EDSCG)의 재가동을 중심으로 대처하려 한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능력의 획기적 향상과 전술핵 개발에 비추어 대북 억지가 충분할지 의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1979년 NATO가 소련의 SS-20 중거리미사일 위협에 대항하여 취했던 ‘이중결정(double-track decision)’과 유사한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 NATO는 4년 교섭시한 내에 진척이 없으면 미국 퍼싱II 미사일과 BGM-109G 순항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한다는 이중결정을 하였다. 협상에 진척이 없자 1983년 약속했던 미사일을 배치하였고, 1987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 체결로 양측 모두 철수하게 되었다. 

당시 여당과 국민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중결정을 관철했던 헬무트 슈미트 총리는 그 후과로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사민당 출신임에도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이 유럽과 미국을 분리하여 유럽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소신에서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하였다. 당시 유럽 상황과 현재 한반도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핵위협의 중대성·긴급성 면에서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리도 북핵 대응전략으로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협상의 시한을 3년 정도로 설정하고 기한 내에 실질적 진전이 없을 경우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도록 결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방어 면에서도 SM-3 Block IB(IIA)를 포함한 실효적 미사일방어망 구축을 서두르고, 중국 압박수단으로 미사일방어 참여를 포함한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의 핵사용 위협이 NATO의 지원·개입을 제약한 것처럼, 북한 핵무력의 완성은 한미연합방위체제의 작동을 제약하는 동시에 북한의 선제핵사용 방침과 불완전한 핵통제로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험을 크게 높였다. 지난 30여 년간 북핵 게임은 결과적으로 북한이 좌우하였다. 이제는 북핵 게임을 주도하기 위한 반전 카드를 찾아야 하며 그런 맥락에서 한국판 이중결정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