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호 2022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전 세계 블록화되는 경향 심화…원칙 있는 대북 정책 펴나갈 것
권영세 통일부 장관 조찬포럼
조찬포럼
권영세(법학77-81) 통일부 장관
권영세(법학77-81) 통일부 장관
전 세계 블록화되는 경향 심화…원칙 있는 대북 정책 펴나갈 것
북한 핵 남한 겨냥 우려 커져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추구
“대북 정책은 이념의 영향이 굉장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정권이 교체되면 급반전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북 정책은 ‘이어달리기’가 돼야지, 전 정부 것이라고 모두 무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새 정부의 정책 기조가 ‘애니띵 벗(anything but) 문재인’ 즉 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뒤집는 식으로만 가면 우리가 북한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권영세(법학77-81) 통일부 장관이 6월 9일 본회 조찬포럼 연단에 섰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권영세 동문은 당초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었으나, 강연 수락 후 며칠 새 통일부 장관에 선임되면서 ‘새 정부의 통일 정책’으로 주제를 바꿨다. 대북 정책은 안보 정책과 긴밀히 연관돼 있기 마련. 대외 비공개를 수차례 당부했다.
“경제학과 과학철학에서 전제되는 법칙으로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라틴어 문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의 뜻을 담고 있죠. 다른 조건은 다 동일하게 유지하고 특정 부분만 다르게 함으로써 변인과 결과 간에 공식을 도출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는 다른 모든 상황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똑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1910년대에 발생했을 때와 2010년대에 발생했을 때, 똑같은 결과로 귀결될 거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죠. 이는 곧 우리가 정책을 세울 때, 나아가 한 사회가 다른 사회에 대응하는 정책을 세우거나 정책 효과를 확인할 때, 외부의 상황이나 조건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권 동문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해 설명했다. 노골적인 대북 억제 정책을 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진영 연대를 강화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 질서 재편 추진을 견제하고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세계 여러 나라는 블록화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으며, 이는 군사력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안보 위협 외 식량·경제·에너지로 대변되는 비전통적 안보 위협 또한 커졌다고.
갈등과 분열의 골이 깊어진 국제 정세 속에서 북한의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권 동문의 진단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2012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섰을 때 국내에선 젊고 새로운 지도자에게 거는 기대가 컸습니다. 스위스에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며 소년기를 보냈으니 북한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죠.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헛된 기대였다는 게 판명이 나고 있습니다. 2013년 6월 제가 중국 대사로 부임하고 얼마 안 됐을 때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됐어요. 중국 현지서도 충격이 컸죠. 지금도 가끔 신문 방송을 볼 때면, 고위급 인사를 수시로 승진, 좌천시키는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장악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용인술 면에선 탁월한 것 같아요.”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 정치를 폈던 것에 비해 김정은 위원장은 취임 초기 ‘핵·경제 병진 노선’을 택했다. 그러다 남북한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던 2017년,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원유 수입량과 석탄 수출량을 제한하는 등 국제 사회의 대북 경제 압박이 더욱 강경해졌다. 2015년 162달러에서 2018년 175달러까지 작게나마 꾸준히 상승하던 1인당 GDP가 2019년 163달러, 2020년 158달러로 주저앉았다. 성장 반전을 위한 노력이 없진 않았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김여정 북한 국무위원이 남한을 방문하는 등 급격한 대화 국면이 전개됐습니다. 국제 사회의 제재로 인한 난관을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 노선’으로 극복하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했죠.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만, 2019년 하노이 회담은 소위 ‘노딜’로 파국을 맞았습니다. 북한은 다시 강경 노선으로 돌아섰고요. 전 정부는 한미동맹이 굉장히 튼튼하다고 주장해왔지만, 하노이 노딜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했습니다. 딜이 될 줄 알고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해 1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오게 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도 얼어붙어 버렸죠.”
좀처럼 대화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정권 교체기에 이르자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등 북한의 군사 도발이 재개됐다. 민항기도 거의 없는 북한 현실에서 핵 공격이 가능하려면 핵 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하는 것뿐. 권 동문은 북한이 최근 핵의 소형화, 전술핵 개발 의지를 밝힌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지난 4월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 방지뿐 아니라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도에도 선제적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짚으며, 북한의 핵이 남한을 겨냥할 우려가 더 커졌다고 말했다.
“진보 정부는 협력을 중심으로, 보수 정부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전쟁 억제를 좀 더 강조하는 차이는 있지만, 어디에 중점을 두든 남북관계의 진전은 불가역적이지 않고 항상 도돌이표가 찍히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런 반성 속에서 윤석열 정부는 과거 정부가 잘한 것은 이어받고, 잘못한 것은 원인을 분석해 보완하려고 합니다. 식량 지원, 코로나19 방역협력 등 인도적 지원은 군사적 위협과 별개로, 심지어 북한이 핵 실험을 하더라도 지원한다는 것이 원칙적인 입장이에요. 여기에 군사적 긴장 완화와 경제 제재 해제 및 지원이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게 해 비핵화를 유도합니다. 이 과정에선 국민적 공감과 참여가 필요하죠. ‘중지(衆智)를 모아 진화하는 대북 정책’을 모토로 탄탄하고 묵직하게, 되돌릴 수 없는 걸음걸음으로 나아가겠습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