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6호 2022년 11월] 뉴스 본회소식

“북한 주민·관료 지배하는 것은 잘 살고 싶다는 욕망”

김병연 모교 경제학부 교수
수요특강



“북한 주민·관료 지배하는 것은 잘 살고 싶다는 욕망”
 
김병연(경제81-85)
모교 경제학부 교수
 
북 시장경제 전환 도우며
관광자원 공동 개발 제안


“북한의 공격 카드는 핵의 고도화와 무력도발입니다. 이를 통해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고 있어요. 수비 카드는 경제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카드는 정반대입니다. 공격 카드는 경제 압박, 수비 카드는 확장 억제죠. 한반도의 북핵 문제는 두 진영의 공격과 수비가 서로 맞붙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병연 모교 경제학부 교수가 10월 26일 서울 마포구 SNU 장학빌딩에서 열린 본회 수요특강 연단에 섰다.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통일평화연구원장과 국가미래전략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병연 동문은 경제학자이면서 북한 전문가가 된 계기를 대학 재학시절에서 찾았다. 1980년대 초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선 ‘자본주의는 빨리 망할 테니 그 후엔 사회주의 하자’는 주장이 팽배할 만큼 급진적이었던 것. 당최 사회주의가 뭐길래, 어떤 경제체제길래 이렇게 생각하나 하는 의구심에서 연구가 시작됐고, 북한을 공부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지금의 북한 경제를 집으로 가정하면 이 집의 문패는 사회주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본주의에서 빌려온 두 기둥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시장, 다른 하나는 무역입니다. 사회주의 경제를 수십 년 공부했지만, 북한처럼 시장이 커진 사회주의 경제는 전무후무합니다. 탈북민들 말에 따르면 북한엔 두 개의 당이 있다고 해요. 노동당과 ‘장마당’. 즉 시장이 그만큼 깊숙이 뿌리내렸다는 뜻이죠.” 

과거엔 당에서 식량을 배급해줬지만, 현재 북한 주민은 식량의 70% 이상을 시장에서 구입한다. 경제활동의 상당 부분도 국가에서 정한 기업이나 기관보다 공식적·비공식적 시장에서 이뤄진다. 공동체·지도자에 충성하고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는 ‘주체사상형 인간’에서 개인이나 가족의 물질적 후생을 추구하고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제적 인간’으로 변하게 된 것. 주민들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도 직간접적으로 시장 활동에 관여한다. 김 동문은 외국에 출장 온 북한 관료가 출장 내내 자국으로 돌아가 개인사업을 하고 싶은데 좋은 비즈니스 아이템을 찾아달라고 외국 공무원을 조른 일화를 소개했다.

“잘살고 싶다는 욕망이 주민과 관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 측면에선 남쪽으로 반쯤 기우는 모양새죠. 소련이 왜 망했느냐에 대해 많은 해석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국민이 사회주의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레닌은 볼셰비키 혁명 4년 만에 경제 노선을 급전환했고, 마오쩌둥이 추진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정치와 이념을 극단적으로 중시한 나머지 크게 실패했습니다. 경제를 이긴 독재자는 없습니다. 북한경제의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장기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캄캄한 동굴 속에서 핵만 움켜쥔 형국이라고 할까요. 김 위원장 스스로 21세기의 시각에서 북한을 돌아봐야 합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북한이 이미 이겼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으니 한반도 비핵화는 실패했고 게임 끝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동문은 “보이는 북한만 보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보이지 않는 북한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6~2017년 제재 이전에 북한은 한국처럼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았다고. 김 동문은 2014년 전 세계 무역의존도가 평균 60%였을 때 북한이 52%였고, 중국과의 밀무역 규모까지 감안하면 한국처럼 80%에 육박했을 것이라고 짚으면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무역 규모가 90% 준다면 그 충격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2014년 대비 작년 북한의 무역 규모가 그만큼 격감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 마음이 다급합니다. 비핵화 협상에 나온 것도, 하노이 회담에서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도 제재의 효과를 방증하는 것입니다. 제재가 작동하는 한 김 위원장은 새장 속의 새입니다. 마음껏 노래 부를 순 있어도 마음껏 날 순 없는 새처럼, 말은 험하게 할 수 있겠지만 행동에는 제약이 많습니다. 북한 주민의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려운데 핵실험으로 살림이 더욱 궁핍해지면 경제적 인간이 된 주민들의 불만이 팽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건 제재가 비핵화를 어느 정도까지 추동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가 될 거고요.”

경제는 북한을 옥죄는 압박 카드인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를 유도하는 ‘당근’이다.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푸는 열쇠 또한 경제 협력이다. 통일과 같은 장기적 과제를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단 양자 모두에게 거부감이 적고 실리를 꾀할 수 있는 경제 협력부터 차근차근 추진하자는 게 김 동문의 의견. 경제 규모로는 광주광역시의 절반 정도인 북한과의 경제 협력이 한국 경제에 드라마틱한 성장을 가져오진 못하지만, 경제 협력을 고리로 경제 통합 단계로 나아가면 북한 덕분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0.7%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매년 4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젊은 층 사이에선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 저변엔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자리하고 있죠. 경제 협력에서부터 시작하면 이런 부담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젊은 층이 기성세대가 된 이후에도 통일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다만 경제 통합은 양자가 동일한 체제 하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을 시장 경제체제로 끌어당겨야 하죠. 쉽진 않겠지만, 북한이 조금씩 변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북한의 청정 환경을 관광상품화 하는 ‘신금수강산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북한엔 백두산, 금강산, 개마고원, 비무장지대 등 전 세계를 매료시킬 관광 자원이 풍부합니다. ‘마음을 열면 핵 없이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래야 한민족에 미래가 있다’ 이 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간절히 전하고 싶습니다.”

본회는 이날 특강에 참석한 동문 모두에게 김병연 교수의 책 ‘북한경제에서의 시장과 정부’를 증정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