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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2018년 2월] 뉴스 기획

호주에선 여름에 떡국 먹고, 일본에선 일일이 연하장 쓰고

해외 동문들의 설맞이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동문들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지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해외에 살고 있는 동문들은 어떻게 설날을 보낼까. 일본, 태국,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에서부터 지구 반대편 미국, 적도 건너편 호주까지 각국에 거주하고 있는 6명의 동문들로부터 현지에서 맞는 새해 풍경에 대해 들었다.    정리=나경태 기자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원주민인 버따위 족의 전통인형 ‘온델온델’


“전통 인형 온델온델 탈 쓰고 잡귀 몰아내요”

정무웅 (상학60-64) 인니동창회 고문  코린도 장학재단 이사장


인도네시아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토대로 하는 약 300여 종족으로 이뤄진 다종족 국가입니다. 따라서 나라 전체를 관통하는 새해 풍습이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렵죠. 열대 기후에 속해 있다 보니 매일 그날이 그날 같아서 계절의 변화는 물론 해가 바뀌는 것을 실감하기도 쉽지 않아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 중엔 제 나이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죠.
다만 저를 비롯해 많은 한국 교민들이 살고 있는 자카르타에는 새해가 되면 이곳 원주민인 버따위 족의 전통인형이 자주 눈에 띕니다. ‘온델온델’이라고 불리는 이 인형은 대나무를 엮어 틀을 만든 후 사람의 탈을 씌우고 옷을 입혀 완성되는데 높이가 약 2.5미터, 지름이 약 8미터에 달합니다. 대개 남녀 한 쌍을 만들어 우리나라의 북청사자놀음처럼 사람이 뒤집어쓰고 공연을 펼치기도 해요. 조상의 은덕으로 잡귀를 몰아내려는 이곳 원주민만의 새해맞이 전통행사입니다.
저는 1971년 3월 당시 몸담고 있는 회사의 주재원으로 이곳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왔습니다. 벌써 47년의 세월이 흐른 터라 부모님께 세배 올리던 것 외엔 한국에서 맞은 설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네요.
인도네시아는 설날은 물론 새해에 대한 인식도 뚜렷하지 않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은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떡국을 먹고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리지요. 자카르타 한국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700여 명의 학생들은 한국의 교과과정에 따라 교육을 받기 때문에 우리 문화와 전통을 그대로 배우고 있죠. 후진국 이미지가 없진 않지만 국제적 사회경험을 할 수 있으니 더 많은 후배들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해줬으면 해요.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뉴 이어스 이브 볼 드롭’행사 전경


새해 맞는 순간 타임스퀘어에 울려 퍼지는 “뉴욕~ 뉴욕~”

윤상래(수의학62-66 ) 미주동창회장, 트윈시티 동물병원장


낮과 밤이 한국과 정반대인 미국은 새해맞이 행사도 음력이 아닌 양력을 기준으로 개최합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뉴 이어스 이브 볼 드롭(New Year’s Eve Ball drop)’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죠. 1월 1일 0시에 맞춰 고층빌딩 시계탑 위에 설치된 타임 볼이 낙하하면 1톤 무게의 색종이가 광장에 뿌려지면서 사방으로 불꽃이 뻗어나갑니다. 볼이 있던 자리엔 새해의 연도를 표시한 숫자가 반짝이고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 ‘뉴욕 뉴욕’이 흘러나오면서 행사는 끝납니다. 이때 타임스퀘어 광장에 모인 군중들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연인들이 새해 첫 키스를 해요. 뉴 이어스 이브 볼 드롭엔 해마다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대낮부터 시작됩니다.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해 뉴욕 경찰들의 경계도 삼엄하고요.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동안엔 당해 인기절정의 가수들이 공연을 펼쳐 군중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올해엔 한국에서도 유명한 머라이어 캐리와 닐 다이아몬드가 출연했어요.
안타까운 것은 당일 하루만 쉰다는 점입니다. 상점이나 음식점은 1월 1일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 대부분이고요. 시끌벅적한 바깥 풍경과 달리 저희 가족은 집안에서 차분하게 새해를 맞았습니다. 샴페인을 마시고 다과를 나누면서 새해 할 일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몇 해 전부턴 미국 내 한인 사회 곳곳에서 설날을 가르치고 있어요. 자라나는 이민 2세들에게 떡국을 먹이고 세배하는 법을 가르치죠. 김동희(간호66졸) 동문이 남편과 함께 수년째 세배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이민 2세들에 대한 교육 필요성에 공감하여 올해는 보스턴 총영사관의 후원으로 한국무용단의 대규모 공연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용섭 동문에게 송별 선물로 전한 그림


한글학교 중심으로 세배하고 윷놀이도 즐기고

양돈호(경영82-89 ) 미얀마동창회장, 코리아비전 대표

 


미얀마의 설은 양력 4월 17일입니다. 이웃나라인 태국이 4월 중순을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잡은 것과 흡사하죠. 풍습도 비슷해서 태국의 ‘송끄란’ 축제처럼 미얀마에도 ‘띤잔’이라고 불리는 물 축제가 열립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전 나흘간 즉 4월 13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지는데 축제기간마저 서로 겹쳐서 이 기간엔 국경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양국의 거리 풍경이 닮았습니다.
새해맞이 전통축제뿐 아니라 기업들의 회계연도 또한 4월 1일을 기준으로 잡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년 전 시작된 미얀마 정부의 개혁 정책에 따라 서구를 비롯한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지만 변함없이 미얀마 고유문화가 현재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죠.
미얀마는 음력설을 쇠지 않고 기후도 열대성인 탓에 한국에서의 설날 기분은 느끼기 힘듭니다. 그래도 한국 교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엔 자그마한 한글학교가 있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세배를 하기도 하고 윷놀이·제기차기 등 전통놀이도 즐기곤 해요.
종교가 있는 교민은 교회나 성당의 설날 행사에 참석하고, 종교가 없는 교민은 개별적으로 설을 보냅니다. 음력설을 또 쉬면 일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탓에 현지 교민들은 미얀마의 연휴 동안 고국을 방문합니다. 미얀마 경제가 아직까진 많이 뒤처져 있어서 그런지 한국의 연말연시처럼 시끌벅적하진 않습니다.
미얀마동창회는 지난해 12월 말 삔우린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박종헌(원예72-76) 동문 댁에서 송년모임을 열었습니다. 올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조용섭(외교87-91) 동문에게 송별선물로 그림을 전하기도 했죠. 지난 1월 9일엔 신년회를 개최해 현지 동문들끼리 친목을 다졌습니다.



박태정 일본동창회장이 방문한 ‘니시노미야 에비스 신사’ 전경


일본 풍습 익숙해져 하츠모우데 행렬 동참

박태정(치의학62-68) 일본동창회장,  미츠이교정치과의원 원장



일본은 1868년경 이뤄진 메이지유신 때부터 완전양력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이 음력 1월 1일을 양력 1월 1일보다 더 큰 명절로 지내는 것과 대조적이죠. 일본에선 12월의 마지막 사흘과 연초 사흘까지 총 6일 동안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까지 긴 연휴를 보냅니다.
직장이나 자택 주위를 대청소하고, 신세진 분들이나 지인들에게 적게는 수십장 많게는 수백장의 연하엽서를 띄우죠. 새해 첫날 배달된, 수북이 쌓인 연하장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디자인도 각양각색이어서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쏠쏠합니다. 연하장을 보내온 사람이 누군지 추측하거나 그분들과 함께 보낸 추억을 떠올리면서 설레기도 하죠.
직계가족이나 일가친척 가운데 돌아가신 분이 생겼을 땐 11월경에 미리 엽서를 보냅니다. 자기 주위에 불행이 생겼으니 연하 인사를 삼가겠다고요. 가까운 사람의 불행을 함께 나누려는 이런 마음가짐은 배울만한 점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에서 살게 된 지 46년이 된 저는 일본의 문화와 풍습이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가끔 한국에 가면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기까지 하죠. 얼마 전 새해를 맞아 저도 일본인들처럼 가까운 신사에 들러 하츠모우데(初詣)를 하고 왔습니다. 하츠모우데는 첫 참배란 뜻으로 새해를 맞아 부처와 신에게 소원을 비는 풍습입니다. 제가 찾은 신사는 니시노미야 에비스(西宮戎) 신사로 해마다 수십만명의 참배객들이 방문하며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많은 부좃돈을 떨어뜨리고 가는 아주 유복한 신사입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순번을 기다렸다가 가족들의 편안과 우리 노부부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지난해 설날 한 자리에 모인 노정언 호주동창회장 가족들


20여 명 대가족 함께 모이는 날…점심엔 바비큐·냉면

노정언(지리65-69 )호주동창회장, 대한 문화교실 회장



호주에서 설날은 특별한 명절이 아닙니다. 대신 모든 국가기관과 사회단체들이 매년 연말부터 새해 1월 중순까지 한 달 가까운 휴가를 보내죠. 호주에 사는 우리 교민들 또한 이 기간을 이용해 가족단위로 국내 혹은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등 신년휴가를 즐깁니다. 휴가기간 중 신정이 끼어 있어 저희 가족은 구정을 따로 지내지 않고 신정 때 세배도 하고 떡국도 먹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윷놀이도 함께 즐기죠. 음력에서 양력으로 날짜만 옮겼을 뿐 국내에서 보내는 설 명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호주에 이민 온 지 30년쯤 됐고 그동안 현지에서 딸 셋을 시집보냈습니다. 평소엔 아내와 둘이 지내는 집에 딸과 사위들, 손주·손녀들이 모두 모이면 20여 명의 대가족이 돼요. 오붓하게 살던 집에 온 가족이 모여 북적이면서 조금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손주들이 서로 어울려 놀며 터뜨리는 웃음소리에 저도 덩달아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사돈들도 시드니에 살고 있고 시댁에도 인사를 드려야 돼서 세 딸과 사위들은 바쁜 1월 1일을 보냅니다. 아침 일찍 시댁에 가서 세배 드리고 아침으로 떡국을 먹은 다음 오전 11시쯤 하나둘 친정으로 모였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시댁으로 가서 아침에 못 만났던 시누이와 올케 식구들을 만나고 본집으로 돌아가죠.
호주는 남반구에 있어서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예요. 이민 오고 몇 해 동안은 여름에 맞는 새해가 무척 낯설었죠. 한복을 곱게 차려 입는 것은 여름에도 겨울 못지않게 수고가 드는 일이라 가족들은 한복을 싸들고 와서 집에 도착하면 갈아입습니다. 점심 땐 주로 바비큐와 냉면을 먹고 아이들은 수영을 즐기고 어른들은 서로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요.



방콕의 유명 쇼핑몰 앞에 설치된 물 축제 행사장 전경


태국의 새해 첫날은 4월…송끄란 축제 ‘즐거운 물난리’

성낙제(경제86-93 ) 태국동창회 회원, CJ오쇼핑 태국JV법인장


태국에서 음력설은 중국설날(Chinese new year)이라고 불립니다. 구정은 휴일이 아닌 평일이고 대신 신정을 지내죠. 다만 화교나 중국계 조상을 둔 태국인들이 전체 국민의 10~15%를 차지하는데 이들은 음력설도 쇱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앙빠오’라고 불리는 세뱃돈을 주기도 해요. 태국에도 세뱃돈 문화가 있다는 게 인상적이죠.
더욱 인상적인 건 태국의 설날은 양력 4월 중순이라는 점입니다. 음력을 기반으로 한 탓에 날짜가 유동적이었으나 근래 들어 양력 4월 13일부터 15일로 고정시키고 이 사흘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했죠. 이 기간 동안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송끄란 축제’가 열립니다. 새해를 맞아 축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서로에게 물을 뿌리는데요. 이러한 풍습은 불교의 나라 태국답게 불상을 청소하는 행위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축제기간 중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을 뿌려대기 때문에 이 시기에 태국에 온다면 그곳이 어디든 흠뻑 물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 해요. 국내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대단해서 송끄란 축제는 ‘물 축제’로도 불립니다. 특히 유명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 주변엔 대형 물 분사기를 설치해놓고 손님을 끌죠. 송끄란은 단순히 즐기는 축제만은 아닙니다. 계절로 보면 4월 중순은 태국에서 가장 무더운 여름이어서 밤낮 없이 곳곳에 물을 뿌리는 행위는 사람과 대지를 적시고 무더위를 식히는 실용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저는 6년째 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말연시가 떠들썩한 데 비해 이곳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새해를 맞이해요. 매년 이 즈음엔 살을 파고드는 한국의 청아하고 쌀쌀한 추위가 오히려 그리워집니다.


*사진설명 방콕의 유명 쇼핑몰 앞에 설치된 물 축제 행사장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