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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9호 2018년 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나의 취미 생활: “늙음이 끝이 아니라 꿈이 없으면 끝”

주말 농원 가꾸는 91세 박상설 동문

나의 취미 생활

“늙음이 끝이 아니라 꿈이 없으면 끝”

주말 농원 가꾸는 91세 박상설(기계49졸) 동문





매서운 바람 뚫고 눈 숲에 나뒹굴며 사는 91세의 노인. 홍천 오대산 북쪽 산기슭에 초라한 농막을 갖고 있는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번잡한 도시를 훌쩍 떠나 그 피난처에 종적을 감추곤 한다. 푹푹 빠지는 눈밭에 서서 소담스레 내려앉은 장원한 눈꽃을 바라본다. 일상의 진부한 것들을 저 해맑은 눈 세상에 헝클어 놓고 마지막 여생의 시간이 저와 같기를 바란다.

문패도 없는 농막에 불을 켠 지 50년이 넘었다. 내가 산의 품에 안겨 살게 된 동기는 젊은 날에 밥벌이의 지겨움을 못 견디어 그 피난처로 산행에 나를 혹사하며 깨우쳤다. 인생의 좌절, 번민, 허무 따위를 걷어치우고 순간을 살아내고 마치 자연처럼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생지옥에서 도망치는 아지트가 생긴 셈이다.

주말 농사일을 처음부터 짜임새 있게 계획한 것은 아니다. 하다 보니 화가는 아틀리에를 갖고 있고, 연기자나 음악가는 공연장이 있어야 하고, 부유한 사람은 별장을 갖고 있듯이 가난하더라도 분수에 넘치는 문명은 멀리하고, 자연의 은밀한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오막살이 농사꾼을 그리워했던 연유에서다. 그래서 작고 소박한 것이 마음의 풍요를 갖게 하는 원천이란 믿음으로 그 유명한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헤밍웨이가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 마이애미의 스퀘어 휴양별장 등 세계의 부호와 귀족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부럽게 여기지 않는 이유이다.

초라하지만 남의 손이나 생각이 아닌 내 온몸으로 손수 흙으로 이루어 만든 나만의 아나키 농막소국에서 상업문화를 조롱하고, 인습에 매여 사는 소인배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멀리하고, 자유인이자 자연인으로 녹색평화를 삶의 제일 높은 가치이자 신조로 삼는 터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늙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이 없을 때 끝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는 곳이 주말 농사일이며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산에 오르며 레포츠와 레저를 즐긴다.

겨울에 눈 구경을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드는 관광지와는 달리 이곳은 태고로부터 인적이라고는 볼 수 없는 족제비, 토끼, 수달피, 산돼지만의 고향일 뿐이다. 이곳을 걷는 동안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시원을 걷는 기념비적인 큰 놀라움과 앞으로 몇 날이나 이 짓으로 기쁨을 사랴? 그와의 편차를 뒤섞어 바라보니 난감하지만 길을 잃지 안고 산에 기대어 살 수 박에 없다는 것을 훤히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혹한 속 눈 더미에 쌓인 버드나무 가지에서 콩알만 솜털 버들강아지가 솟아올라와 오들오들 떨고 있다. ‘아, 봄이로구나!’ 이 깊은 산속은 이 세상이 아닌 듯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생명의 신비에 놀라웠다. 겨울과 봄이 서로 저항하며 겨울과 봄이 날을 세워 치열하게 다툰다. 봄의 고향은 버들강아지이고 눈은 겨울을 먹고 산다. 그 출생의 근원에서 서로 더불어 수줍어하는 자연의 첨예한 접점을 찾아 유람하는 이 노병은 얼마나 행복한가!

샘골 오지에 들면 마음이 가벼워지며, 알 수 없는 더 먼 곳을 향한 충동으로 산하에 나를 포개어 나마저 자연이 된다. 나 스스로의 생각이 깊어지며 도시와 농촌의 냄새가 바뀌고 존재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내가 갈 길은 오직 철학과 사유가 살아 활동하는 시원의 오지이다.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바꾸어준 주말 농원! 그 힘은 무엇인가?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한평생을 통해 묵묵히 나무를 20만 그루를 심어오며 영혼을 정화시키는 데 눈뜨게 한 묵상이다. 높이 오르고자 한다면 먼저 밑으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진정 강하고 쓰러지지 않는 것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 들이다. 뿌리만 굳건하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뿌리가 없는 것은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 신세가 된다. 열심히 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올바른 방법으로 열심히 하느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