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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호 2018년 7월] 문화 나의 취미

나의 취미생활: 50대 중반에 ‘춤바람’…“춤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추는 것”

댄스스포츠 마니아 백순지 백순지치과의원 원장



50대 중반에 ‘춤바람’…“춤은 머리 아닌 가슴으로 추는 것”


댄스스포츠 마니아
백순지 백순지치과의원 원장


 소무회 연습날인 지난 6월 26일 백순지 동문이 춤 추는 포즈를 취했다.   



‘한번도 춤추지 않은 날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날이 될 것이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그는 삶을 긍정하는 춤의 가치를 강조했다. 20년 넘게 취미로 댄스스포츠를 춰온 백순지(치의학63-69·HPM 4기) 동문은 이렇게 말한다. “일생 동안 가장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라는데, 춤에는 그 어려운 여행을 쉽게 만드는 마법의 힘이 있다”고.

백 동문은 40여 년간 을지로에서 치과를 운영해온 베테랑 치과의사다. 동시에 춤 마니아다. 1998년 HPM과정을 다닐 때 댄스스포츠 동호회 ‘소무회(笑舞會)’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치대동창회장과 HPM동창회장을 겸임하던 10여 년 전 본지와 인터뷰에서도 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6월 21일 명동의 백순지치과의원에서 그를 만나 춤 얘기를 청했다.

“몸치인 내가 춤을 추리라곤 상상도 못 했죠.” 중고등학교 땐 유도, 대학 땐 조정, 터프한 운동만 즐겨 했다. 예과 시절 큰 맘 먹고 ‘춤 좀 춰볼까’ 싶어 친구들과 서울역 앞 캬바레 ‘불야성’에 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대학생이 범접 못할 분위기였어요. 춤 추면 안 되겠다 싶었죠. 대학 시절 유행하던 트위스트도 한 번 못 춰봤어요.”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일 ‘춤바람’은 뒤늦게 불어왔다. 그의 나이 50대였다. 1996년 서울시치과의사회장을 지낼 때 세계치과의사연맹 총회 참석차 미국에 갔다. 마이애미 해변가의 작은 상설 무대. 50대에서 70대 남녀가 밴드 음악에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하나같이 허리가 곧고, 몸짓은 경쾌했다. “그동안 봐왔던 연세 드신 분들의 모습과 너무 달랐어요. 춤을 추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 싶었죠.” 돌아오자마자 춤 배울 곳부터 찾았다.

당시만 해도 댄스스포츠 학원이 드물었는데 마침 시교육위원회가 홍대 근처에 직장반 강좌를 열었다. 저녁에 병원 셔터를 내린 후 지하철을 타고 춤을 배우러 다녔다. HPM과정 송년 행사에서 배운 춤을 살짝 선보였더니 반응이 좋았다. ‘나도 춰보고 싶다’는 동기들과 만든 것이 소무회. 아내에게도 춤을 권유해 함께 추기 시작했다.

“부부 동반으로 열 쌍이 모여서 시작한 모임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요. 댄스스포츠는 남녀가 같이 추기 때문에 예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남성은 춤을 리드하는 대신 여성을 배려해야 해요. 부부가 함께 추면 금슬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소무회는 매주 화요일 두 시간씩 모여 춤을 배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소무회를 가르쳐온 강사는 그동안 댄스스포츠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총 10종목의 댄스스포츠 중 백 동문은 모던 댄스에 속하는 왈츠와 탱고, 라틴 댄스에 속하는 룸바, 자이브, 차차차를 즐겨 춘다.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를 좋아해서 따로 학원을 찾아 배우기도 했다. 자신처럼 50대 중반에 댄스스포츠를 시작해도 문제 없지만 “더 나이가 있다면 지르박, 블루스 같은 ‘소셜 댄스’를 권한다”고 했다.

“요즘은 국가에서도 노년층에게 춤을 장려해요. 댄스스포츠 강습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있고 움직임이 크지 않은 ‘리듬짝’을 가르쳐주는 곳도 있죠. 부부가 같이 추면 좋지만 혼자인 분들께는 더욱 춤이 필요해요. 은퇴 후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춤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백 동문은 청년 때부터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대학 시절 조정팀 주장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야학 운영과 향토개척단 활동도 열심이었다. 여행을 좋아해 한국여행인클럽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제 그 열정은 춤으로 이어지고 있다. 춤을 추면서 생긴 특별한 추억 하나.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선상에서 각 나라 대항 댄스대회가 열렸어요. 일행 중엔 유일하게 춤을 배웠기에 아내와 한국 대표로 출전했죠. 지정 네 종목을 춰야 하는데 배운 적 없는 ‘파소도블레’가 나오더군요.” 기권을 택한 그에게 갑자기 이탈리아에서 온 노부부가 바통 터치를 하더니 백 동문 부부 대신 멋있게 파소도블레를 추더란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미소짓게 돼요. 언어를 초월해서 교감할 수 있는 춤의 힘을 느꼈죠.”

인터뷰 며칠 후 소무회 연습실에서 춤추는 백 동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권유를 받고 얼떨결에 함께 춤을 배우기도 했다.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 계속해서 바뀌는 파트너에 정신은 없었지만 직접 춤을 춰보니 백 동문이 강조한 ‘춤의 마법같은 힘’이 어느새 와닿았다.

“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추는 거라 생각해요. 음악을 들으면서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파트너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은 냉철한 이성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는 바람직한 인생의 자세와 닮았죠. 몸치라고 걱정 말고 어떤 춤이든 춰 보세요. 춤을 접한 그때부터 인생이 달라질 거라 확신합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