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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나의 취미 생활: “따뜻한 소리 진공관앰프, 직접 만들면 더 감동”

오디오 마니아 김재영 혜정치과의원 원장
나의 취미 생활

“따뜻한 소리 진공관앰프, 직접 만들면 더 감동”
오디오 마니아 김재영(치의학71-77) 혜정치과의원 원장


오디오 마니아 김재영 동문은 병원에도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놨다. 직접 만든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턴테이블과 CD플레이어 등을 뒀다.



‘한 개에 백만원이나 하는 전축 바늘이 있다니, 어떤 미친 사람이 그런 것을 살까.’

오디오 마니아가 되기 전까지 내가 했던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몇 십년 된 고물 진공관 앰프를 수백만원씩 주고 사게 될 줄은…. 급기야는 직접 진공관 앰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으니, 아마추어 오디오 마니아로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오디오에 입문한 것은 1980년 관악구에 치과를 개원하면서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을 좋아했다. 클래식 기타를 치고 밴드 활동도 했다. 병원에 카세트덱을 놓아두고, 집에는 좀더 고급 오디오 시스템을 갖췄다. 소스 기기인 턴테이블과 그곳에서 나오는 음악 신호를 증폭시켜 스피커로 보내주는 리시버(앰프), 스피커 등을 장만하는 데 들인 돈이 당시 돈으로 100여 만원. 그때 쓰던 ‘보스 301’ 스피커는 제법 좋은 소리를 들려줬지만 더 좋은 스피커가 욕심이 났다. 그런데 막상 스피커를 바꾸자 앰프가 모자라게 느껴졌고, 앰프를 바꾸니 스피커가 모자라게 느껴졌다. 마치 술꾼이 안주가 남아 술을 더 시키고 술이 남아 안주를 또 시키면서 만취하듯 그렇게 오디오의 세계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오디오에 관한 일이라면 힘이 솟았다. 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방문짝만 한 ‘타노이’ 스피커와 무거운 진공관 앰프를 들어 옮기곤 했다. 수십 개의 앰프와 스피커가 나만의 청음실을 거쳐갔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새롭게 오디오를 설치하면 각자 기준으로 삼는 음악을 틀고 음질과 밸런스 등을 평가한다. 저음을 듣고 싶으면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 도입부의 ‘퉁 퉁’하는 킥드럼 소리를 듣고, 여성 목소리 특유의 울림을 들으려면 캐롤 키드의 ‘When I dream’이 제격이다. 특히 나의 ‘비몽사몽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앰프와 스피커가 많았는데, 아침에 잠이 깨서 비몽사몽간에 음악을 들었을 때 편안해서 계속 잠이 오면 합격, 귀에 거슬려서 잠을 잘 수 없으면 ‘나쁜 오디오’라는 꽤 독단적인 평가 방법이었다.


오디오 마니아의 욕망은 한마디로 ‘현장 그대로의 소리를 듣고 싶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좋은 소리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고 ‘내가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도 든다. 진공관 앰프 자작에 도전하게 된 계기다.

진공관 앰프는 ‘따뜻한 소리’가 난다고들 한다. 배음이 풍성하게 들리고 잔향이 잘 살아나 오래 들어도 귀가 편하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오디오 앰프에 들어가는 증폭용 소자도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 IC회로로 꾸준히 발달했지만 마니아들의 예민한 귀를 만족시키기엔 오히려 부족했다. 마니아들이 1950~60년대 빈티지 진공관 앰프를 다시 찾기 시작한 이유다.

회로도와 부품만 있으면 진공관 앰프를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디오 동호회에서 부품과 회로도를 구하고, 치과의사의 손재주를 십분 활용해 며칠에 걸쳐 납땜질을 하면서 앰프를 만들곤 했다. 아마추어의 자작 앰프가 기성 제품만큼 좋을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점차 내가 만든 앰프에서 좋은 소리가 나면 그만한 희열이 없다. 나의 첫 자작 앰프도 소리는 그럭저럭이었지만 이후에 만든 앰프는 특별히 공을 들였다. 음향에 조예가 깊은 모교 공대 교수님께 선을 보이고 여러 번 음질을 조정했더니 드디어 흡족한 소리가 났다.

독일제 스피커를 조합해서 10년간 들었던 그 앰프는 재작년부터 후배의 소유다. 오디오를 추천해 달라기에 아무리 돌아봐도 값만 비싸고 음질은 옛날만 못해서, “그러지 말고 이거 가져가라”며 내가 쓰던 오디오 시스템을 통째로 넘겨줬다. 나 또한 오디오에 입문할 때 치과의 선배가 가지고 있던 명기 ‘마란츠 7’을 물려받았으니, 선후배 간 오디오 사랑이 대물림된 셈이다.

예전같은 정열이야 덜하지만 요즘도 아침에는 진공관 라디오를 켜서 FM방송을 듣는다. 때론 휴대폰에 와이파이 스피커를 연결해 들으면서 빈티지와 최첨단을 오가는 오디오 생활을 하고 있다. 개원의 38년차, 별 재주 없는 내가 치과의사가 돼 이렇듯 오디오 외에도 바둑과 당구, 기타, 35년간 친 골프 등 여러 좋아하는 취미를 즐길 수 있었던 데 감사한 마음이다.

박수진 기자


*지난 12월 28일 김재영 동문과 인터뷰한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