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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2020년 6월] 기고 에세이

나를 비우는 고랭지 캠핑 훈련

박상설 캠프나비 호스트,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기고
동문기고

나를 비우는 고랭지 캠핑 훈련
 



박상설
기계공학49졸
캠프나비 호스트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큰 산은 골짜기를 안으로 숨기고 하늘과 맞닿은 숲 능선으로 당당하다. 샘골에 들면 생의 잠언(箴言)들이 계곡, 숲, 안개, 바람을 스치며 스민다. 여름을 보내는 행복잠언시집을 꼭 품고 있다. 그렇다. 되새기고 싶은 시 한 구절 때문에 우리는 살아가는 거다. 

산천이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산골에 가도 펜션, 카페, 술집이 즐비해 옛 정취는 보기 어렵다. TV, 신문도 없는 적막한 오지가 그립다. 캠프나비(Camp nabe) 주말 레저 농원은 샘골에 있다. 홍천에서 양양으로 이은 56번 국도를 따라 오대산 북쪽에 이르면 북한강의 넓이가 불과 20~30m의 폭으로 좁아진다. 이쯤에서 다리를 건너 샛길로 한 구비 돌아들면 거짓말 같은 원시의 골짝이 숨어있다.

이곳은 험준한 백두대간과 해발 1,500m의 오대산의 수많은 골짜기에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북한강의 발원지 중 한 곳으로 해발 600m의 청정고랭지 샘골이다. 인근에는 숱한 비경을 거느린 숨어있는 계곡과 숲이 즐비하다.

샘골에는 나의 비닐하우스 농막 캠프 외에는 집 한 채 없는 겹겹이 산으로 감춰진 골짜기다. 나는 늘 하던 버릇대로 5,000분의 1 정밀지도를 펴들고 숨어있는 골짜기를 찾아 떠돈다. 숲, 계곡마다 하나하나 다 들여다보며 부산을 떤다. 산속은 어딜 가도 새롭고 바라는 목적지는 없다. 해맑은 냇물소리 돌아서지 못하게 나를 잡는다.

삶은 숲에 순응하는 싸움인가? 숲, 계곡은 홀로 제 스스로 있다. 그들은 끝끝내 침묵의 무서움이 가득하고 찾아든 나에게 느슨한 헐거움으로 모른 체 한다. 숲은 세상의 의미를 낚아 올리는 소리로 수근거린다.

인간들의 돈벌이 성공학이 씁쓸하다. 만드는 문화 아닌 기르는 문화… 숲이 키우는 문화.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그 문화는 어디에 사는가? 이날 이때껏 살아오면서 나와의 불화접점에서 싸움은 치열했다. 삶은 죽음의 덧없음을 잊기 위한 싸움인가?

숲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운다. 모든 인간들은 뼛가루로 산에 당도해 삶을 죽음과 바꾼다. 삶과 죽음은 해 뜨는 것과 날이 저무는 것과도 같다. 인간들은 덧없는 것들의 영원함에 끝끝내 속고 사는 멍청이인가? 죽음을 예비하고 떠나는 이유를 묻지 말자. 숲은 그대로이지만 나는 숲에 신경 쓴다. 숲은 눈을 다른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고 잔잔한 생각들을 바람에 포개며 나마저 숲이 되게 한다. 날이면 날마다 속수무책으로 바삐 돌아가는 인간들… 뜻 모르고 헤매는 역사의 도구에 불과한 인간상….

사람의 몸은 이미 사위어 가는 풍화에 있다. 모든 인간은 그러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소망은 몸의 건강이 최우선이고 다음이 마음의 편안일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간의 삶이다. 육체와 정신의 문제뿐 아니라 생계와 인간 욕구들이 총체적으로 서로 엉켜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력(功力)을 다 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 이것은 지식이나 이지적으로 또는 가족구성원을 이해 시켜 달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원초적 고뇌가 삶의 밑바닥까지 헤집고 왔는데도 우리의 의식은 아직 그것을 헤쳐 나갈 마땅한 처방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집구석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좋음’과 ‘행복’은 집안에 살지 않는다.

그 갈등의 해결책으로 인습과 타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편한 삶과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는 샘골과 같은 산간벽지를 자주 찾아 나를 고생시키고 나를 비우는 고랭지 캠핑훈련을 우둔한 소처럼 한발 한발 온몸으로 강도 높게 밀고 나가는 실천만이 해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