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도 텐트 쳐놓고 독서 중이시겠지요? 최근 무슨 책을 읽으셨는지요? 선배님이 그곳으로 가신 지 50일이 다 되어 갑니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12월 23일 선배님 별세 소식이 전해질 때 저는 동해안에서 밤파도를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아마도 꼭 두달 전 선배님이 아들 내외와 다녀가신 바로 그 항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배님을 처음 뵌 게 2012년 스승의 날이었죠. 

아시아기자협회와 아시아엔에서 매년 ‘내마음의 스승’을 모시는 조촐한 저녁자리에 김남주 당시 아시아엔 기자 소개로 오시게 됐었죠. 

이후 한달 채 안된 어느 주말 선배님의 홍천 오대산 600고지 캠프나비를 찾았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여기 군수나 국회의원 하는 높은 분들 제법 오셨는데, 잠깐 앉았다 사진찍고 가기 바쁜데 이 회장이 밤 늦게까지 있다 가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말씀이 족쇄 혹은 인연이 돼서였을까요, 매년 1~2차례 잠도 자고, 선생님께 배운 지혜가 얼마나 많고 깊은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선배님은 자연의 삶 그 자체셨지요. 오래 전 읽은 ‘아름다운 삶 그리고 마무리’를 쓴 스코트 니어링과 어찌 그리 같으신지요? 

선배님의 책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고 난 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에머슨의 ‘성공하는 삶’으로 바뀐 거 모르셨을 겁니다. 선배님께서 평생 그토록 염원하시던 러시아 다차와 같은 주말농장은 이제 우리 사회에도 씨가 뿌려져 싹이 틀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선배님을 앗아간 코로나 덕분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비향락 위주의 여가문화가 바뀌어가는 조짐이 보이고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선배님이 그곳으로 가실 것을 미리 예견이나 하신 것처럼 평생을 목청껏 외치신 ‘행동하는인문학모임’(행인모)이 이르면 상반기에 움을 틔울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사랑하는 따님과 자부도 유지를 받들 각오가 대단하더군요. 

존경하는 선배님. 제게 많이 서운하셨지요? 바쁘단 핑계로 선배님의 부름에 늘 게을러 왔으니까요. 저도 아쉬운 게 있습니다. 선배님 호주머니에 늘 지니고 다시던 유언장, 곧 시신 기증의 마지막 봉사를 못하고 가신 점이지요. 

선배님은 끝까지 제게 한 수 또 가르치고 떠나셨습니다. 뭘까요? 선배님이 일산 동국대병원에 입원해 계시단 소식을 듣고 저는 그토록 아시아엔을 아끼시던 분, 아시아엔에 당신 기사 한 줄 나오면 며칠씩 신나 하시던 분, 그분이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게 칼럼 준비하고 있었지요. 작년 성탄절 아침 ‘구순 박상설 아시아엔 전문기자 코로나 이겨내다’란 제목의 글을 떡하니 보도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차일피일 미루다 선배님 별세 소식이 제 글보다 먼저 문자로 박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선배님께선 돌아가시기까지 저를 일깨우고 계셨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 붙들고 있소. 정리되는 순간 바로 행동으로 옮기시오. 내 마지막 당부요” 하고 말입니다.

존경하는 선배님이 일러주신 게 또 하나 있습니다. “화합하고 용서하세요.” 선배님이 작년 10월 하순 노태우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아시아엔에 쓰신 글이유고가 되었습니다. 

아흔넷 성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신 깐돌이 박 선배님, 돈도 권세도 명예도 초개처럼 여기며 오직 자연주의 삶에 가치를 두고 가신 선배님 그곳 캠프나비에서도 독서와 묵상에 진력하시리라 믿습니다.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22년 2월 7일 이상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