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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017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법 몰라 고통 받는 사람들 돕겠습니다”

마지막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이승우 인터뷰
마지막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이승우 

“법 몰라 고통 받는 사람들 돕겠습니다”


올해를 끝으로 폐지되는 사법시험에서 2차 합격 발표 당시 만 20세, 우병우(사법84-88)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나란히 역대 최연소 합격의 영광을 거머쥔 모교 재학생이 있다. 국사학과 12학번 이승우 학생이 그 주인공. 1996년 11월 19일생인 이 군은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열여섯 살 때 모교에 입학, 입학과 동시에 시험 준비에 돌입해 오늘의 성과를 일궜다. 합격 후에도 전공 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를 11월 23일 관정도서관 휴게실에서 만났다.

“법을 몰라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폭행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상황인데도 당장 경찰서부터 가자는 윽박에 겁을 먹고 합의금을 물어주기도 하고, 빌린 돈을 갚으려 해도 상환을 거부당해 이자를 뜯기기도 해요. 이러한 예는 부동산 쪽에 더 흔해서 집이나 상가주인의 횡포에 부랴부랴 새 집이나 새 상가를 구하느라 손해를 감수할 때가 많습니다. 법을 알면 겪지 않을 불합리함 때문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이제 막 만 21세가 된, 공부 이외에 다른 일을 해본 적은 아직 없는 청년이 내밀한 사회 부조리를 줄줄 나열했다.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사연들이다. 어려서부터 이 군은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했다. 수험기간엔 평소만큼은 못했지만 보통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씩 묻고 듣고 답했다. 주제는 이 군이 성장하면서 그의 진로나 장래희망뿐 아니라 삶과 사회로까지 확장됐다. 아무리 수재라도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어려보일 수 있는데, 이 군의 부모님은 일찍부터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정규 교육과정에 따를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의지도 희망도 확고했거든요. 6년의 시간을 들여 굳이 학교에 다닐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정했고 홈스쿨링을 시작했죠. 부모님께서도 제 의견을 존중해주시고 지지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죠.” 

만20세 합격…16세에 모교 입학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존경

이 군의 부모님은 도봉구 쌍문동에서 13년째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아들이 역대 최연소로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공부방 홍보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이 군은 빙긋이 웃으며 “그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시와는 성격이 달라 홍보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스럽지만, 2012년 자신이 불과 열여섯 살 때 서울대학교에 합격했을 때에도 플래카드는커녕 전단지에 광고 한 줄 적지 않았다고. “풍족하진 않지만 부모님께선 현재 생활에 만족하시는 것 같다”고 답했다.

젊다 못해 아직 어린 나이고 그런 만큼 다른 가능성도 무궁무진하지만, 올해 사법시험에 대한 이 군의 절박함은 여느 응시생 못지않았다. 로스쿨에 진학할 만큼 집안 사정이 넉넉지는 않아 어쩌면 법조인의 꿈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2차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행정고시를 보기도 했다. 애초 모교 법대에 진학하려 했지만 로스쿨이 생기면서 법대가 사라졌다. 사법시험 응시 기회도 더 적었다. 단지 그가 후대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짊어져야 했던 숙명이다.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한 것처럼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거나 아쉬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불합격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휘둘리기보단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다독이며 순간순간에 집중했어요. 가끔은 무한도전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생각을 비우기도 했죠. 2차 합격을 확인하고 미친 듯 소리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4년여에 걸친 수험생활의 고통은 사라지고 해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죠.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처럼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진학도 공부도 사법시험을 중심으로 결정해온 탓에 대학에 들어와서도 등록한 학기보다 휴학한 학기가 더 많다는 이승우 군. 내년 초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데 학칙상 휴학연한이 이미 초과됐다고 하면서도 시종 여유로웠다. 법 또한 역사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사회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진 학문이라며 그 성격이 서로 밀접하다는 나름의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모교 입학 첫해 안동으로 떠났던 답사를 학창시절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꼽았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