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7호 2017년 12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사랑이 다문화자녀 사회인재로 키우죠”

이희용 다애다문화학교 교장 인터뷰
이희용 다애다문화학교 교장

“사랑이 다문화자녀 사회인재로 키우죠”


최근 국내 교복 브랜드 광고모델로 다문화가정 출신 남녀 고교생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다문화가정 자녀 20만명 시대, 이보다 앞서 다문화 자녀들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교육 일선에 나선 동문이 있다. 이희용(지리교육81-86) 다애다문화학교 교장이다. 

고교 교사였던 이 동문은 지난 2011년 중학생 다문화자녀를 위한 다애다문화학교(이하 다애학교)를 세웠다. 국내 최초로 시교육청 인가를 받은 다문화 대안학교다. 일반학교 적응이 힘든 다문화 학생을 위탁받아 국영수 등 기본 과목과 한국어, 한국 문화와 진로체험 등의 대안 교과를 가르친다. 다문화 자녀라고 하면 결혼이주여성이 국내에서 낳은 아이를 흔히 떠올리지만 현재 다애학교 전교생 42명 중 75%는 ‘중도입국 자녀’.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의 재혼과 취업 등으로 한국에 입국한 아이들이다. 나머지는 국내 출생한 국제결혼 자녀나 외국인 근로자 자녀들이고 탈북민 자녀도 매해 꾸준히 입학한다. 지난 11월 28일 논현동 다애학교에서 이 동문을 만났다. 교실 몇 개의 아담한 공간에 중국, 베트남, 몽골 등 학생들의 출신국 국기가 장식돼 있었다.   

“중도입국 자녀들이 겪는 어려움은 복합적이에요. 주로 사춘기때 한국에 오는데 한국어는 전혀 못 하는 데다 민감한 나이에 부모의 재혼으로 인한 충격과 문화적인 정체성 혼란도 크죠. 일반 학교에서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 고통과 슬픔에 공감해주는 게 우선이에요.”

다애학교 교육의 주안점은 두 가지다. 한국어를 가르쳐 말 못하는 괴로움을 없애 주고, 아이들이 진로를 찾아서 한국사회에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 이곳에서 ‘기역, 니은’부터 차근차근 배워 1년 반 정도면 일반 학교로 돌아갈 만큼 자신감이 붙는다고 했다. 다애학교 학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학적을 둔 중학교에서 졸업장을 받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1년에 스무번 정도 직업 체험을 했더니 아이들 꿈이 확실히 다양해졌어요. 은행, 방송국 등 여러 기관에서 도와 주시는데 한 아이는 은행으로 체험 갔다가 은행원이 되겠다며 서울여상에 진학했죠. 신문기자,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고요. 2개국어가 능통하니 무역업과 호텔리어도 아이들 능력을 발휘하기 좋죠.”  

고교교사에서 다문화자녀 교육자로 
중도입국자녀 한국어·진로탐색 도와   

다애학교는 그의 교육 인생에서도 새로운 시도였다. 26년간 경기고와 서초고 등에서 지리 과목을 가르쳤다. 수능 출제에도 참여했고 EBS 강사로도 유명했다. 어느날 학교에서 청소 도구를 나르다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2년간 재활에 전념하며 든 생각은 소외된 학생들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자는 결심. 사표를 낸 그는 학교를 세우고 구로와 대림 일대에 직접 홍보 전단지를 돌렸다. 피시방과 중국인 교회를 찾아다니며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학교가 생겼다. 주변에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보내달라”고 외쳤다. 지금같은 행정지원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던 때다. 

“대학에서 다양한 교육철학을 배우면서 교사가 되면 어떤 철학을 택할까 생각했어요. 여러가지 시도해봤더니 저는 자유 방임에 가까운 낭만주의 교육이 잘 맞더군요. 다애학교의 교육철학은 ‘사랑’인데 자유 방임과는 조금 달라요. 정의하자면 ‘인내하고, 오래 참는 것’이죠.”   

상처가 많은 다문화 자녀들은 종종 마음의 문과 말문을 굳게 닫는다. 답답하다고 채근하는 반응에 더욱 힘들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기다려줄 수밖에 없다. 기다리면 아이들 스스로 마음을 잡고 꿈을 찾아가더라는 설명이다.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에겐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한 이 동문이 직접 ‘교장 멘토링’을 한다. 따뜻한 추억이 있는 이곳이 모교나 다름없는지 아이들은 졸업 후에도 놀러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간다고. 

다애학교는 교육청 지원금과 기관·개인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학교가 입주한 강남YMCA건물이 매각돼 내년엔 학교를 이전해야 한다. 동문들이 도울 수 있는 일을 묻자 그는 시중에 나온 다문화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져와 펼쳐보였다. “다문화사회로 가는 데는 교육이 중요한데, 모교의 우수한 인재들이 다문화 교육과정 연구나 교재 개발 같은 분야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지는 조심스러운 부탁.    

“1%도 아니고 단 0.1% 정도만, 동문님들 계신 곳에서 다문화 자녀들에게 자리를 할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다문화 자녀를 채용하는 기업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섬기는 마음으로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잘 가르치겠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