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호 2017년 12월] 뉴스 기획
2017년 빛낸 서울대 연구: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여는 이들
혈액검사로 치매진단, 흥부전 최고본 고증, 자율주행차 기술, 바늘없는 주사 등
2017년 빛낸 서울대 연구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여는 이들
지난 한 해도 쉼없이 연구실의 불을 밝힌 모교 연구자들. 인류의 미제와 난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삶에 기여하는 연구 결실들이 언론 등을 통해 우리에게도 반가운 소식으로 전해지곤 했다. 모교 연구실에서 탄생해 우리에게 신선한 시각을 제공해준 몇 가지 연구 성과를 소개한다.
묵인희·이동영 교수, 혈액 한 방울로 치매진단 기술
알츠하이머 연구의 권위자로 불리는 묵인희(왼쪽) 교수와 이동영 교수
치매 치료의 골든타임이 강조되고 있다. 검진을 통해 조기에 치매를 발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자는 뜻이다. 이 가운데 지난 10월 모교 의대 교수 연구진이 혈액검사만으로 대표적 치매 질환인 ‘알츠하이머’ 발병 가능성을 증상이 없는 정상 단계에서부터 예측할 수 있는 진단 기술을 개발했다.
알츠하이머가 발병하기 전부터 뇌에는 독성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가 쌓인다. 뇌뿐만 아니라 혈액에도 포함되지만 혈액 속 다양한 분해효소로 인해 정확한 측정이 쉽지 않았다. 치매예측기술국책연구단 소속 묵인희(동물82-86·왼쪽 사진) 의대 생화학교실 교수와 이동영(의학86-90·사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개발한 진단 기술은 소량의 혈액만으로도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뇌영상 검사를 수행해 얻는 결과의 약 90% 수준을 예측한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새로운 혈액 전처리 기술을 개발하고 혈중 내 베타아밀로이드 농도를 안정화시키는 시스템을 확립했다.
뇌영상촬영 진단에 약 150만원이 필요하지만 새 기술은 10% 수준. 고령화 사회를 맞아 더욱 반가운 연구 성과다. 현재 기술 이전을 마치고 임상 적용을 준비 중이다.
장병탁 교수 연구팀 ‘소셜 홈로봇’ 등 AI 연구성과 두각
장병탁 교수 연구팀과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 '오페어'
칵테일 파티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로봇을 부른다. 다가가서 음료를 주문받은 로봇은 바에 가서 주문한 음료를 받아 손님에게 배달한다. 집안일 심부름, 투어 가이드까지 척척 해낸다. 장병탁(전자계산기공학82-86) 컴퓨터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 ‘오페어’가 수행한 일이다. 오페어는 지난 7월 2017 국제로보컵 대회에서 가정집 등 일상 환경에서 서비스 임무를 수행하는 ‘소셜 홈로봇’ 부문에 출전해 우승했다. 일상 환경에서 음식 주문과 심부름, 사람 찾기, 투어 가이드 등 서비스 임무를 다루는 전 과제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그밖에도 이경무(제어계측공학80-84)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세계 최대 컴퓨터 비전 학회인 CVPR 주최로 열린 ‘초고해상도 영상복원 챌린지’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모교 공대 연구진들은 올해 로봇 딥러닝 등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겨루는 국제대회에서 수차례 우승 소식을 전해왔다.
김진수 교수,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 정확성 입증
‘유전자 가위’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 김진수(화학83-87·사진) 화학부 교수가 올해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유전자 가위 처리 전과 후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활용해 최신 ‘크리스퍼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의 정확성을 입증해낸 것. 유전자 가위는 유전체에서 원하는 부위의 DNA를 정교하게 잘라내는 기술이다. 유전자 가위를 활용하면 에이즈나 혈우병 등 유전자 질환에서 병을 일으키는 해당 유전자를 잘라내는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식물에 적용하면 유전자를 맞춤 교정해서 원하는 특질을 가진 품종으로 개량할 수 있는 기술이다.
염기교정 유전자 가위는 지난해 학계에 보고된 최신 유전자 교정기법이다. 이번 연구로 오작동 확률이 적고 정교한 유전자 가위임이 입증됐다. DNA 두 가닥 모두를 자르는 기존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다르게 단일 염기를 교체할 수 있어 선천적 유전질환의 발병기전을 밝히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여재익 교수, 세계 최초 ‘바늘 없는 주사’ 개발
‘바늘 없는 주사’. 얼핏 상상이 되지 않는 이 주사는 여재익(사진)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주사 장치에서 분사되는 약물이 피부에 직접 주입되는 원리로 머리카락 한 가닥 두께 정도의 미세한 구멍을 통해 약물이 초당 150m의 빠르고 일정한 속도로 반복 분사된다. 연구진은 당뇨에 걸린 쥐에게 이 방법으로 인슐린을 주사함으로써 일반 주사기를 쓸 때와 동일한 효능을 확인했다.
바늘 없는 주사는 바늘식 주사기로 다룰 수 없었던 의료 문제의 해결을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통증과 불편함이 없고 감염도 방지할 수 있다. 특히 바늘공포가 있거나 감염을 우려하는 환자, 하루 1회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소아 및 성인 당뇨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정병설 교수·김동욱 박사 ‘흥부전 최고본’ 고증
지난 6월 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 ‘흥부전’의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이 발견됐다. 한문학 전공인 송준호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를 한글 고전소설 전공인 정병설(국문84-88) 국어국문학과 교수에게 문의해 정 교수와 김동욱(국문98-04) 국어국문학과 소속 박사가 함께 연구하고 고증했다.
1833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이 흥부전 최고본(最古本)은 ‘흥보만보록’이란 제목이 붙어 있다. 기존에 알려진 흥부전 이본 40여 종과는 배경과 내용이 상당히 달라 주목을 받았다. 배경은 평양 지역이며,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무과에 급제한 흥부가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지금까지 흥부전은 모두 경상·전라·충청 지방 등이 배경이어서 ‘흥부전’의 발상지를 전라도 남원 인근으로 추정해왔고 흥부와 놀부는 연씨나 박씨라고 표기돼 있었다. 판소리가 호남 지방에서 기원한다는 통념에 반론을 제기하는 자료로도 해석된다.
연구진은 “판소리계 소설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모습을 담은 이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서승우·이경수 교수, 자율주행차 도심·고속도로 달렸다
모교의 자율주행차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지난 6월 모교 지능형자동차IT연구센터(센터장 서승우)가 개발한 자율주행자동차 ‘스누버(SNUver)3’가 국내 첫 도심 시험 주행에 성공했다. 스누버는 운전자 조작 없이 12분 동안 여의도 도심 4km를 안전하게 주행했다. 신호대기 중인 차가 나타나자 속도를 조절해 1m 간격을 유지하고, 다른 차가 끼어들자 급정거하기도 했다.
스누버는 미국자동차기술학회가 분류한 자율주행단계 기준에서 4단계에 해당한다. 일정하게 정해진 조건에서 운전자의 조작이나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며 달릴 수 있는 단계다. 딥 러닝 기능을 갖춰 달릴수록 운전 실력이 좋아진다. 서승우(전기공학83-87·왼쪽 사진)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의 목표는 5단계 완전자율주행을 이룩하는 것. 완전한 무인(無人)자동차다.
이경수(기계공학81-85·사진) 기계항공공학부 교수팀이 SK텔레콤과 함께 만든 자율주행차도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고속도로 시험 주행에 성공했다. 마침 모교 시흥캠퍼스가 자율주행차 평가 트랙 등 자율주행차 인프라를 갖춘 스마트캠퍼스로 구축될 예정이다. 서울대 기술로 만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누빌 날이 머지않았다.
정진성 교수 연구팀, 조선인위안부 영상 최초 발견
인문학 분야에서는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의 발견이 잇따랐다. 정진성(사회72-76) 사회학과 교수가 이끄는 모교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기록물 관리사업팀’은 지난 7월 세계 최초로 조선인 위안부 영상자료를 발굴해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위안부 역사의 진실을 알렸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이 영상에는 1944년 9월 미·중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지역을 탈환한 직후 그곳에 갇혀있던 조선인 위안부들의 모습이 담겼다. 연구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촬영한 총 1만600여 편의 필름을 하나하나 살펴본 끝에 영상을 찾아냈고, BBC와 AP통신, CCTV 등 전 세계 신문 방송사가 이 연구 성과에 주목했다.
이번 발굴로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했다는 입증 자료가 더욱 탄탄해졌고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대한 기반을 마련했다. 정 교수 연구팀은 현재까지 약 250건의 위안부 관련 사진 및 문서와 1,000여 건의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지난 11일에는 남태평양 일본 해군기지에도 조선인 위안부 26명이 끌려갔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정리=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