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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2017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베트남의 아버지 없는 한국 아이들

결혼 실패한 엄마들과 동반 귀국, 국가차원 정책 필요
명사칼럼

베트남의 아버지 없는 한국 아이들


정진성 사회72-76
ILO 일의 미래 글로벌위원회 위원·모교 사회학과 교수

재외동포(在外同胞)란 외국에 거주하는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사람을 말하며, 그중 대한민국 국적 보유자는 재외한국인이라고 표현한다. 재외동포의 역사는 장구하지만, 근대에 큰 집단을 이룬 것은 일제강점기 재일동포다.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하고 잔류한 사람들과 그 자제들이 현재까지 일본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약 35만의 동포집단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해방직후 일본정부가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표기할 것을 강요한 후, ‘한국’으로 수정하지 않은 3만여 명도 포함돼 있다. 새 정부 들어 지난 10년간 입국이 불허됐던 ‘조선족’ 동포들의 입국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이밖에도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을, 해방 후 경제적·정치적으로 사정이 나아지면서 우리정부가 보살피는 정책들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서설이 길어졌다. 이렇게 역사가 오랜 동포 외에 최근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동포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름 아닌 결혼에 실패한 이주 여성들이 데리고 귀환하여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모국에서 자라고 있는 한국 국적 아이들이다. 대부분이 동남아시아 지역이고 특히 베트남에 많다. 이제 어린 아이들이지만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틀림없이 의미 있는 사회적 존재가 될 것이다. 이들 존재의 형성에는 21세기 세계사회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인 세계화와 인권이 작용하고 있으며, 세계화의 흐름에 가장 깊숙이 휘말려 있으나 가장 동질적인 사회로서 편견과 차별이 심한 한국사회의 현재가 있다.

1990년대 후반경부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된 우리 사회에 빈곤을 벗어나고자 하는 동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런 법제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국에서 그들은 자연히 ‘불법’ 지위자가 되었고, 이에 따른 인권침해가 잦아지면서 산업연수생제도를 거쳐 고용허가제가 2000년대 후반에 정착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의 기회가 줄어들게 된 것이다. 고용의 수요와 공급이 모두 남성에 치우친 것이다. 이제 이 여성들에게 결혼은 또 다른 빈곤 탈출의 루트가 된 것이다.

결혼에 실패한 엄마들이 데리고 귀국
국가 차원에서 보살피는 정책 필요하다

고용과 달리 결혼은 상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어 우리 정부의 결혼비자 심사는 비교적 허술하다. 중개업자에 대한 규제와 현지 영사관에서의 심사절차를 강화했지만, 결혼이주는 늘어나기만 했고, 결혼의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미 결혼당사자의 나이차는 20살에 가깝고 (올해 베트남 껀터시 주변 지역에서 행한 귀환여성 279명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전)남편과의 나이차이가 10~30세가 63.8%였다.) 남성의 경제와 교육 수준이 매우 낮다. 가정폭력과 고부갈등이 많고 따라서 이혼율이 높다. 2017년 한국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16년 말까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 부부의 약 19.25%가 이혼했다. 다문화가족의 여성과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는 차별도 이들의 가족해체에 큰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미처 이혼조차 하지 못한 채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돌아가는 여성도 많다. 필자가 관여하고 있는 NGO는 2007년부터 베트남에서 한국남성과 결혼하려고 하는 여성들에게 현지 사전교육을 시작했다. 한국의 남편에 대하여 거의 아무 것도 모른 채 한국행을 결심한 이 여성들에게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 캐나다, 독일 등 선진국들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특히 가정폭력 등에 대처하는 정보를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은 그 효과를 인정받아 4년 후부터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 베트남 여러 곳과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까지로 확대되었다.

그런데 2~3년 전부터 귀환여성으로부터 걸려오는 상담전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혼을 위한 법적 절차를 도와달라는 요청부터 이혼한 남편이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다, 심지어는 연락을 끊었다, 등등의 사연이다. 이 여성들이 고향에서 환대 받지 못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하고 생활수단도 막막하다. 베트남이 주된 성장지가 될 한국 국적, 한국 아이들은 또 어떠할까. 베트남 국적이 아니니 학교에 입학할 때 어렵고, 모든 복지혜택에서 제외된다. 이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결혼이주여성이 가장 많이 오는 최빈곤 동남부 지역인 허우장이라는 곳에서 만난 여성동맹의 한 직원은, 귀환여성의 아이들을 위해 한국에서 무엇인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지금 북핵문제로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해 있다. 북한과 중국, 미국, 일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급선무다. 그런데 이 국제정치의 하부구조가 또 하나의 심각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 힘으로 차근차근 이루어 가야할 더 중요한 기초일 수 있다. 전 세계를 흔들며 우리가 휘말린 세계화는 우리 물건을 외국에 파는 일과 함께 사람들의 국제적 이동이라는 두 축으로 흘러간다. 그 사이 ‘단일민족’이었던 우리사회는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고 외국에 우리 동포사회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인권’이라는 너무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상적이고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가치를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다. 이 기초에 균열이 생기면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를 만들기에 힘이 부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상누각을 세우는 격이 되는 것이다.

다시 우리 곁의 소수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기초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야를 넓혀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나라 밖에 방치되어 있다. 다행히 베트남 껀터시에 우리 시민단체가 우리 기업의 도움을 받아, 귀환여성과 한국국적의 아동을 위해 아동도서관을 짓고 한글교육을 시행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이런 시민사회의 노력들을 견인할 국가 차원의 비전과 정책이 진지하게 세워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