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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2017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모교 교수서 정부 헤드헌팅 1호 공직자로

이동규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


이동규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

모교 교수서 정부 헤드헌팅 1호 공직자로




한국인 최초 ‘액스퍼드 메달’ 수상


이동규(천문기상65-74 모교 지구환경공학부 명예교수)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이 최근 기상과학자로서 큰 영예를 안았다. 한국인 최초로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구과학회(AOGS)에서 수여하는 최고의 상인 액스퍼드 메달을 받은 것. 이 동문은 기상수치모델 연구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수치모델 개발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이룬 것과 국제적인 협력 활동, 학회 기여도까지 높게 평가받았다.


2년 전 그는 ‘정부 헤드헌팅 1호 공무원’으로도 화제가 됐다. 그전까진 정년 후에도 연구실에 나와 현직 교수만큼 왕성하게 논문을 쓰던 천생 학자였다. ‘기상 수치예측모델의 대가’라는 평을 받는 가운데 인사혁신처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칠순의 나이에 현 수치모델링센터의 전신인 수치모델연구부 부장으로 몸을 옮겼다. 잦은 해외 출장 중 어렵게 시간을 낸 그를 지난 10월 31일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수 시절에도 국제 활동에 시간을 많이 썼어요. 정년하면서 겨우 여유를 찾은 터라 가족과 친구 모두 공직에 나가는 걸 반대했죠. 다니던 성당 신부님과 상담했더니 당시 ‘징비록’이란 드라마를 상기시키면서 ‘이순신 장군도 국가에 봉사했는데…해 보시죠.’라고(웃음). 직위를 떠나서 나라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죠.”
단 중요한 전제를 내세웠다. 후배와 제자들의 진로를 막지 않는 자리일 것. 민간인만 지원할 수 있기에 내부 승진직이 아님을 확인하고서야 수락했다.


수치예보모델은 기상과 기후 예측을 위해 수학, 물리, 화학, 컴퓨터공학 등을 집약해 만든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이른바 ‘날씨 방정식’이다. 현재 유럽연합과 영국, 미국, 일본과 중국 등 10개국 정도만 독자적인 수치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 수준인 영국의 수치예보모델을 한국화 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현 모델도 여전히 정확성이 떨어진다. 지난 여름도 변칙 장마로 기상 예보가 자주 빗나가면서 우수한 예측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 개발 사업은 2011년부터 9년간 900여 억원을 들여 우리의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로 현재 진행 중이다.


그는 “해외 모델을 수입해서 사용하다 보니 자체 개발 역량에 한계가 올 수밖에 없다”며 “우리 힘으로 개발 중인 모델이 현재 사용하는 모델의 94% 수준까지 진행됐다. 마지막 2년 동안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고 했다. 2020년 1월 1일부터는 한국형 수치예보모델만을 사용한 기상예보가 시작된다. 공식적인 목표는 세계 5위 수준의 수치예보모델을 완성하는 것이지만 이 동문은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기상청 수치모델을 세계 일류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5위에 만족하고 손을 놓는 게 아니라 후속 개발로 이어가야죠.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가 개발한 모델이니까 공을 들이면 훨씬 더 우수해질 겁니다. 우리 모델이 개발되면 일반 컴퓨터에 맞게 최적화해서 슈퍼컴퓨터를 운영하기 어려운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에 전수할 수도 있어요. 우리 경제나 과학기술이 그랬던 것처럼 기상기술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야죠.”


한중일의 상황에 견줘 세계 1위 모델을 보유한 유럽연합에 대한 부러움도 내비쳤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일본과 이를 추격하는 중국과 함께 우리나라도 모델기술 경쟁력을 갖춰 둬야 향후 아시아지역 공동개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 우수한 기상과학 인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양성하기 위해서라도 개발을 멈춰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동문은 모교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기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장문의 편지를 보내며 ‘세계적인 연구도 좋지만 귀국해서 후배를 양성하라’던 노교수들의 권고로 한국에 돌아와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국내에 슈퍼컴퓨터가 없던 시절 미국 대기과학연구센터의 슈퍼컴퓨터용 수치예보모델을 일반 컴퓨터에 맞게 변환해 국내에서 연구를 시작하고 미국과 동남아시아에 역수출한 경험이 있다. 결국 1988년 한국에 첫 슈퍼컴퓨터를 도입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고, 여기에 기상예측모델을 넣어 바로 이듬해부터 태풍의 진로를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유용성을 입증했다.


인생 제2막인 공직을 떠난 후 계획은 무엇일까. 그는 “모델 연구를 계속하겠지만 무엇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하며 살겠다”며 웃음지었다. 늦게 결혼해서 이제 대학 고학년인 자녀들에게도 애틋한 마음이다. “교수 시절 연구실 단체여행 한 번 못 간 게 지금도 아쉽다”며 “나와 함께 학위 과정을 마치지 못한 학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지도를 잘 하지 못한 탓을 아쉬워한다”고 할 땐 여전히 따뜻한 노교수의 마음이 느껴졌다.


“기상예측은 불확실성이 수반되는 분야지만 현상을 이해하는 만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직한 과학이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 학문입니다. 국민들께서 과학적 기상 예측의 한계를 이해해 주시고 성원을 보내 주신다면 머지 않아 세계 일류 한국형 수치예보모델로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할 거라 믿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