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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2017년 10월] 기고 에세이

서울대인이 모래알인가

윤상래 미주동창회장 기고
동문 기고

서울대인이 모래알인가


윤상래 수의학62-66
미주동창회장, 트윈시티동물병원 원장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해변을 자주 찾았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줄곧 모래성을 쌓고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것을 보곤 했다. 동창회에 참여한 이후 “서울대동문들은 모래알과 같다” 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이는 모래알처럼 많다는 뜻보다는 아이들이 쌓고 부수던 모래성처럼 단단히 뭉칠 수가 없다는 말일 것 같다.

이제 회장 취임을 선언한 지 두 달, 동창회를 운영하는 가장 큰 즐거움의 하나는 임원님들이 열심히 동창회 일을 돕고 지원해 주면서 이를 통해 동창회 운영이 훨씬 수월해지고 활발해지는 것이다. 임원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더해 또 다른 큰 즐거움이 있는데 이제 받기 시작하는 동문들의 서신이다. 회비를 정성껏 보내주시는 동문들께 감사함은 물론, 격려의 글을 보내주시는 동문들의 서신을 통해 이들의 동창회를 사랑하는 끈끈한 정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된다.

우리 동창회를 사랑하는 동문들이 이처럼 많은데 왜 서울대인을 뭉칠 수 없는 ‘모래’라고 하는 표현이 나왔을까? 아마도 그것은 ‘서울대인의 본질’ 을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질시가 섞인 표현일 것이다. 설령 서울대인이 ‘모래’라 한들, 우리 임원들의 희생적인 봉사는 곧 시멘트와 같다고 믿는다. 거기에 끈끈한 동문들의 정, 곧 물과 같은 그러한 것이 합쳐지면서 우리는 콘크리트가 되어 버린다. 

콘크리트는 단단한 건물을 건축하는 데 쓰이는 기본자재이다. 뉴욕의 월드 트레이드센터(Freedom Tower)는 무려 15만 큐빅야드의 콘크리트를 사용해 지어졌다. 나는 이 건물을 볼 때마다 서울대인들이 콘크리트처럼 뭉쳐져 이같이 견고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그려 보게 된다. 이제는 “서울대인은 모래와 같다”라는 말을 잊어버리자. 그 대신, “서울대인은 콘크리트와 같이 단단하다”로 바꾸어야 함이 마땅하다.

‘서울대인은 모래알’이란 말은
서울대인의 본질을 경험하지 못한
외부인의 질시가 섞인 표현이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지난 2001년 6월 미주동창회보에 실린 강영빈(동물58-62) 박사의 글을 인용해 본다-“서울대 동창회는 우리 삶의 뿌리이다”. 루이지애나 시골에서 평생을 개업의사로 지내시면서 “Gentleman Farmer”로 자처하며 봉사하셨던 강 박사님의 이 말을 기억하자. 우리가 동문들과 모여서 어떤 뜻이 있는 일을 함께 할 때 우리는 이 ‘삶의 뿌리’, ‘서울대동창회’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우리 인생의 어떤 결실을 맺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미주 동문들은 대부분이 빈손으로 고향을 멀리 떠나와 이 광활한 대륙을 새 고향으로 삼고 살아 왔다. 언어 장벽, 문화 풍습의 차이 등으로 모두 어려운 생활을 겪으며 개척의 삶을 헤쳐 왔다.

나의 경우는 그 어려운 때마다 ‘서울대인’임을 각성하고, 그에 의지해 용기백배하여 모든 난관을 이겨 왔다. 서울대인의 마음으로 노력하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이는 필시 나만의 믿는 바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우리 미주 동문들이 ‘서울대인’임을 항상 의식하고 그 근본정신을 지키면서 모든 난관을 극복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생존을 위한 경쟁(Struggle)이다. 이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쟁 속에서 미주동창회를 우리의 인생과 연관시킨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한 지혜와 경험을 접해가며, 더한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마치 뉴잉글랜드지부동창회 곽세흥(전자공학79졸) 박사(현 미주동창회 IT국장, Raytheon computer 전문가)가 언급한, “우리는 이 큰 땅에서 옛 것을 벗고, 광량하게 전개하여 있는 땅에서 살면서, 세상에서 아무도 상상조차 못하던 일에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진정한 보람이다!”라고 한 말처럼, 서울대인이 그 역량을 동창회를 통해 함께 모을 때 ‘아무도 상상치 못하던 일’이 이 ‘광량한 땅에서’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 이는 곧, 우리 동창회와 서울대인의 미래를 지향하는 예언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