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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호 2017년 9월] 기고 에세이

동창회에 모이는 이유

류성창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


동창회에 모이는 이유



류성창(교육93-99)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고려함에 있어서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법을 활용하는 듯하다. 그 한 가지는 인생의 방향이나 가치의 기준을 인간 개인의 외부에서 찾아 들여오는 방식으로, 교육학의 용어를 빌려 보자면 ‘외재적 인생가치’라 명명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근거하여 인생을 들여다보면, 인간 삶의 방향은 한 개인 자신의 내부에서 발현되는 동기, 관심, 방향성 등에 근거하기보다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들, 예를 들면 주변에서 인정하는 직업, 사회문화적으로 당연시되는 인생의 행로, 다양한 이익 추구 등에 의해서 결정되며, 결국 인간의 삶은 인간 외부의 기준에 의하여 재단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인생의 방향성을 한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하는 접근법 역시 용어를 빌려 ‘내재적 인생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 부를 수 있다. 한 개인의 내부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치, 기준, 방향 등에 따라 인생의 항로가 추진되고 또한 매 순간 이루어지는 자신의 판단과 주관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재검토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러한 목적에 따라 충실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가장 옳은 방식으로 인생이 진행된 것이라는 점을 역설한 바 있다. 또한 인간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공동체적 테오리아(theoria, , 이론적 탐구 혹은 관조)’ 혹은 쉽게 말하면 ‘친구와 같이 공부하는 삶’을 거론하며, 다른 이와 함께 궁금해서 하는 공부, 호기심을 위해 추구하는 자유로운 공부를 할 때 인간은 비로소 궁극적으로 가장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논하기도 했다.


먼 타지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대학 동창회 모임을 가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국의 교육단계에서 대입과 같은 큰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도구적이고 외재적인 공부가 아닌, 그야말로 세상이 궁금하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했던 순수한 공부를, 이익을 위해서 만난 친구가 아닌 그야말로 우정을 위해서 묶인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대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진리를 탐구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만약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인간 행복의 근본을 ‘공동체적 테오리아’에서 찾는 것이 맞다면, 대학 동창회를 찾아 가는 발걸음은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 가려는 행복에 대한 향수를 찾는 발걸음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그때와 같이 가장 인간다운 행복을 추구해 보고자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보기 위한 아쉬움의 발걸음은 아닐까?


정확히 같은 시절, 같은 내용으로 공부했던 친구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서울대학교라고 하는 하나의 탐구 공동체로 묶여, 가깝고 먼 우정으로 서로 연결돼 세상을 탐구하던 동문들을 찾는 일은 그 자체로 가치로운 일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업에 이익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내 업무에 필요한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소위 외재적인 이유로 인해 동창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내재적인 가치와 즐거움을 향수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바라는 이익이나 효과가 없더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마냥 동창회로 향하는 관심과 발걸음 또한 복되고 고귀한 일이리라 생각해 본다. 특히 바쁘고, 어려운 시절 먼 타국에서 동창회로 모이는 따뜻하고 복된 마음들은 인생의 내재적인 가치와 궁극적 행복을 추구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