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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2017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김예솔 KT 디자이너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울리는 세상 디자인하고 싶다”

휠체어 타고 배낭여행·해외유학…책 ‘오늘 하루만 더 긍정’ 펴내


김예솔 KT 디자이너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울리는 세상 디자인하고 싶다”





“사람들은 제게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하지만, 극복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에요. 휠체어와 나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 지금 내린 결론은 최소한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얕보거나 제한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휠체어를 탄 소녀는 2007년 그해 ‘화제의 신입생’이었다. 지체 1급 장애가 있지만 장애인 전형이 아닌 수시 전형으로 모교 미대에 합격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재학 시절엔 휠체어와 함께 미국 어학연수와 인턴십,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 베트남 선교봉사에 거침없이 나서 또다시 화제가 됐다. 어느덧 졸업반이 돼 여느 또래들처럼 취업문을 두드렸고, 신입사원 공채를 거쳐 KT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올해로 6년차 직장인이다. 김예솔(디자인07-12) 동문 이야기다.


그런 김 동문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휴직계를 내고 2년간 스웨덴 명문 대학인 룬드대로 산업디자인 석사과정 유학을 떠난 것. 지난 5월에는 자전적 에세이 ‘오늘 하루만 더 긍정’을 펴냈다. 출국을 일주일 앞둔 7월 24일 김 동문과 전화로 얘기를 나눴다. 쉼없이 달려온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매듭지은 후여서일까. 명랑한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졌다.


“세상의 많은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면서 성장기를 보냈고, ‘다리만 조금 불편할 뿐 남들과 똑같다’는 말을 들었죠. 대학 졸업과 회사생활까지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허무한 느낌도 있었어요. 세상의 기준을 좇기보다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쓴 책입니다.”


휠체어 타고 해외연수·배낭여행
책 ‘오늘 하루만 더 긍정’ 펴내


김 동문은 일곱 살때 급성 척수염으로 걸음을 잃었지만 일반 학교에서 12년간 또래들과 똑같은 교과과정을 보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우연히 김민수(응용미술79-83) 모교 디자인학부 교수의 책 ‘김민수의 문화 디자인’을 읽고 디자이너를 목표 삼았다. 고된 입시생활을 치르면서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어 수시모집 일반전형으로 모교에 합격했다.


모교 입학 후에도 적극적인 자세로 서울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관악캠퍼스 내에는 휠체어를 타고 가기 힘든 곳이 많았고, 이장무 당시 총장에게 손편지를 써서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몇 달쯤 지나 미술대학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와 장애인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생겼다. 그는 “단 한 사람을 위한 학교의 배려에 아직도 깊이 감사하고 있다”며 “앞으로 모교에 지어질 건물들에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기본으로 갖춰진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관심 분야 또한 장애인과 노인 등 이동 약자를 고려한 실내건축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영역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 유무나 연령,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지향해요. 예를 들어 계단 옆에 리프트를 설치하는 건 오직 휠체어 탄 사람만을 위한 거죠. 엘리베이터를 만들면 장애인과 잠깐 몸이 불편한 사람, 임산부까지 폭넓게 쓸 수 있어요. 흔히 ‘몸이 불편하고 다니기 힘들면 집에 있어야 한다’고 당연한 듯 말하지만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환경이 어렵게 만드는 것일 뿐이죠.”


알게 모르게 모교 동문들과 특별한 연이 닿기도 했다. 성장기에 척추가 120도나 휘어져 자라 고생할 때, 척추측만증의 권위자 석세일(의학50-58) 의대 교수가 고난도 수술을 흔쾌히 집도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김종훈(건축69-73) 한미글로벌 회장은 직접 운영하는 복지재단 따뜻한 동행을 통해 전동휠체어를 후원했다. ‘휠체어 탄 정신과 의사’로 알려진 류 미(불문94-99) 동문과 만나 대화하면서 책을 쓸 용기를 얻었다.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빈 데 대해 김 동문은 “마침 장애인 차별금지법 시행 초기여서 장애 학생을 위한 해외 체험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겨났고, 기회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며 겸손을 보였다. 책 속에는 그의 씩씩한 여행기를 비롯해 앞다퉈 휠체어를 들어 옮겨주던 반 친구들, ‘모든 틈새를 꽉 채워준’ 가족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그가 당부하고픈 말이 담긴 한 구절.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슬며시 열려 있었다.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면 질문을 멈추고 다가오는 오늘을 딱 하루만 견뎌보기를 부탁한다. 뜻 모를 어둠의 시간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박수진 기자



▽ 김예솔 동문 에세이 '오늘 하루만 더 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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