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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2022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이력 한 줄 절실한 장애인 아티스트, 미래 열어줍니다”

차해리 (체육교육08-12) 파라스타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력 한 줄 절실한 장애인 아티스트, 미래 열어줍니다”

차해리 (체육교육08-12)
파라스타 엔터테인먼트 대표




장애인 아티스트 엔터사 운영
운동하는 아나운서, ‘골때녀’ 활약


오전엔 격렬하게 축구공을 차고 오후엔 CEO로 변신한다. 스포츠 행사에서 마이크도 잡는다. 차해리 동문의 요즘 일상이다. 전 YTN 아나운서, SBS 여자축구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의 ‘아나콘다’ 팀 수비수. 방송인인 차 동문이 건넨 명함엔 점자가 병기돼 있었다. 장애인 전문 엔터테인먼트사 ‘파라스타’ 대표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차 동문의 생일인 11월 4일 혜화동 파라스타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침부터 촬영과 미팅, 계약까지 바빴다는 그는 “스포츠에 미디어와 장애까지 삶에 세 가지 키워드가 생겼다”며 웃음지었다.

2018년, 88 서울 패럴림픽 30주년 기념식 사회를 보면서 공동 진행자인 패럴림픽 아이스하키 메달리스트 한민수씨를 비롯해 많은 패럴림픽 선수를 만났다. 그후 패럴림피언들과 친분이 생겼고 그들의 목소리가 차차 가슴과 머리에 들어왔다. 그들은 ‘에이전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애인 선수, 모델 등은 소속사 없이 개인 협상을 하느라 낮은 조건으로 광고 등에 출연할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잘될 것 같은데, 한 번 만들어 보시라’고 주변에 권유만 하다 1년쯤 지나 “패럴림피언 네트워크에 아나운서인 내 방송 경험을 합쳐보자”는 결심이 섰고, 한민수씨와 파라스타를 공동 창업하기에 이른다.

유일무이한 장애 전문 엔터사는 금세 소문이 났다. 스포츠선수, 모델, 댄서, 인플루언서 등 30여 아티스트가 모였다. 차 동문은 “모이니까 일도 잘 들어오더라. 장애인들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하단 걸 알았다”고 말했다. 하나벤처스에서 초기 투자도 받았다.

파라스타의 일은 SM, YG 같은 여느 엔터사와 같은 듯 다르다. 아티스트 관리 면에선 연기수업 등 교육을 하고, 장애 관련 이벤트를 진행할 때 찾는 회사이기도 하다. IOC와 UN 등이 진행하는 장애 인식 개선 캠페인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국내 버전으로 런칭할 때 파라스타가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지난 여름엔 모교와 함께 휠체어 농구 페스티벌을 유료로 열어 성공을 거뒀다.

장애 전문 엔터사로서 강점은 자체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 소속 아티스트들이 이미 대기업 광고에 여러 번 출연했다. 더 나아가 소속사에서 기획부터 촬영까지 맡아 역으로 광고주에게 제안한다. ‘불러주는 곳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는데, 최근 방송에서도 장애인 캐릭터가 중심이거나 장애인이 직접 연기하는 드라마가 나오면서 고무적인 분위기다.

“장애인 아티스트에겐 레퍼런스(이력) 한 줄이 절실해요. 광고라도 하나 찍어야 기사를 낼 수 있고, 기사가 나야 포털 사이트에 등록돼 검색도 돼요. 포트폴리오를 돌리다 보면 관계자들은 긍정적인데, 장애인은 능력을 입증할 기회가 적잖아요. ‘무슨 역을 시켜도 다 하겠다는 비장애인이 몇천 명인데 굳이 이 친구를 써야 하나’ 의문이 들 수 있죠. 이력은 우리가 만들 테니, 비슷한 실력일 땐 기왕이면 장애인 당사자를 써 달라는 바람이에요.” 얼마 전 소속 농인 아티스트인 박현진씨가 EBS 토크쇼 ‘세상을 비집고’의 고정 MC로 발탁되는 경사도 있었다. 아직 학생인 박씨는 차 동문의 권유로 소셜미디어인 ‘틱톡’을 시작했고, 조회수 ‘대박’을 친 데 이어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다.

한민수씨가 파라 아이스하키 국가대표팀 감독에 발탁된 후로 차 동문 혼자 회사를 운영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전문 엔터사를 이끌기 어렵진 않을까. “장애에는 ‘레퍼토리’가 없다. 매번 알고 있는 영역을 넘어서기에 아직도 난 장애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그다.

그렇지만 올초 사무실 이사를 앞두고 서울 시내 건물을 샅샅이 뒤져 교통은 편한지, 휠체어로 다니기 좋은지 문턱부터 화장실까지 꼼꼼하게 살핀 것도 차 동문이다. 청각으로 소통이 어려운 아티스트를 위해 소리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저희 아티스트들이 인내하는 데 익숙해선지 현장에서 불편함이 있어도 ‘괜찮아요’ 하고 웃으면서 넘기세요. 그러니 오히려 시스템 도입이 늦어지더라고요. 제 눈에 불편이 보여서 하나씩 도입하면 그제서야 ‘너무 좋다’고 하시고요. 이젠 필요한 부분을 먼저 말해 주시기도 해요. 소속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연락이 많지만, 아직 회사가 작아 하루에도 몇 통씩 거절 메일을 쓰고 있어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에너지 넘치는 삶의 근간엔 스포츠가 있다. “공부와 운동의 밸런스가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대학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고 했다. 운동을 좋아해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체육교육과에 진학, 재학 중 핸드볼, 배구, 탁구, 농구 등 20개 실기과목을 섭렵했다. 교내 마라톤 대회 3년 연속 우승자였다.

“오전엔 운동 수업, 오후엔 사대에서 이론 공부를 마치고 저녁에 테니스부 훈련을 했어요. 밤새 시험 공부도 하고요. 아이비리그 학생들 보면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심신이 건강하다고 하는데 가장 선진화된 교육을 체육교육과에서 받은 셈이죠. 우리 과는 스포츠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다 배울 수 있어서 얼마든지 관심 가는 쪽으로 피보팅(pivoting·자세 변환)이 가능해요.”

‘골때리는 그녀들’에서도 출연하자마자 데뷔골을 넣었다.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플레이가 영리하다’는 칭찬 일색이다. “사업에 도움 될까 싶어 시작했는데, 마음 속에 있는 짐승을 일깨우는 느낌”이라고 했다. 축구 때문에 모교 박사과정도 휴학하고, 개인 훈련까지 받았다. ‘방송 꼭 보시라’고 귀띔하더니, 인터뷰 이후 ‘아나콘다’ 팀은 마침내 갈망하던 1승을 거뒀다.

그의 꿈은 이제 장애 전문 엔터로서 세계에 진출하는 것이다. 살짝 알려준 메타버스 관련 신사업 아이디어도 ‘왜 생각 못했지’ 싶게 신선했다. “영국에 장애 전문 모델 에이전시가 있지만, 파라스타는 분야도 다양하고 더 고도화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방송할 땐 제 마음의 에너지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려 했고, 스포츠에선 신체 에너지를 활용했죠. 장애로 신체 밸런스는 다소 무너져도 건강한 마음으로 극복하고 에너지를 보여주려는 분들이 저희 회사에 모였고요. 결국 전 언제나 건강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공유하는 활동을 해온 것 같네요.”

차 동문은 서울대와 인연 깊은 세 자매 중 둘째다. 의사인 언니 차현경(생명과학04-08·의학대학원10-14) 동문은 모교 병원에서 일하고, 동생 차해나씨는 치의학대학원 재학 중이다.

박수진 기자


▷장애 아티스트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는 파라스타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https://www.parasta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