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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2022년 5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학생들이 해냈다…휠체어 경사로 만드는 서울대 인근 맛집들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김지우 대표·손정우 팀장


학생들이 해냈다…휠체어 경사로 만드는 서울대 인근 맛집들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김지우(사회 20입) 대표·손정우(윤리교육 20입) 팀장



(왼쪽부터)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손정우 맵팀 팀장, 김지우 대표  (서배공 김지우 대표 제공)


“장애학생도 똑같이 다녀야죠”
800여 가게 지도로 만들어


“수업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의 교류도 중요하잖아요. 장애 학생에겐 그게 보장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전동 휠체어를 모는 재학생 김지우씨의 샤로수길 방문 소감이다. 관악캠퍼스 인근 샤로수길은 서울대인의 아지트로 불리는 곳. 좁은 골목에 주택을 개조해 아담한 규모의 맛집이 즐비하다. 그런데 휠체어를 타면 이런 샤로수길에 ‘갈 곳’이 없어진다. 3cm 문턱, 0.8m보다 좁은 문폭, 너무 가파른 경사로 등 장벽이 산재해 있다.

‘장애 학생도 밥약(식사 약속) 한 번 마음껏 잡아보자’. 김지우씨를 위시해 재학생 30여 명이 참여한 학생단체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서배공)’은 학교 안팎의 이 장벽들을 부숴 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무더웠던 지난해 여름, 서배공 멤버들은 휠체어를 몰고 줄자를 펼쳐 가며 서울대입구와 샤로수길, 낙성대입구 ‘서울대 상권’ 800여 가게의 휠체어 접근성을 조사했다. 입구 턱 높이, 경사로, 문폭, 엘리베이터와 장애인 화장실 여부, 내부 테이블 간격 등 정보를 담아 배리어프리 맵 ‘샤로잡을 지도’를 제작해 배포했다. 5월 3일 줌 화상 인터뷰로 만난 서배공 김지우 대표와 맵팀 팀장 손정우씨는 “학교도, 지자체도 보장해 주지 못한 환경을 우리가 바꿔보고자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샤로수길 1층 가게 250곳 중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20곳뿐이었습니다. 동행 없이 갈 수 있는 식당으로 좁히면 지도를 만들 수 없을 정도였죠. 장애 학생들이 대외활동, 친목활동 장소를 구하는 데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어요. 내가 참여하면서 고려할 게 많아지니 그냥 빠지게 되고요. 어렵게 요구하거나, 노력해서 찾지 않아도 되게 해주고 싶었어요.” (김지우)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SNS에 게시된 카드뉴스 형식의 휠체어 접근성 정보. 가게 사진 하단에 비스듬하게 색칠한 모양으로 출입구 경사로의 기울기를 표시했다. 


그저 실태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서울관광재단의 지원사업을 연계, 경사로 설치에 나섰다. 최소 8만원부터 최대 200만원 하는 설치비의 98%를 부담해 주겠다는데도 선뜻 응하는 가게는 없었다. 점주를 설득하면 건물주가 거부했다. “경사로에 걸려 넘어지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분도 있었고, 아예 설치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것 같기도 해요.‘우리 가게엔 장애인이 안 온다’면서요. 턱이 있으니까 못 들어왔던 건데….”

포기하지 않고 관악구장애인종합복지관과 협업해 30여 가게에 새로 경사로를 놓았다. 해당 가게들은 서배공 SNS와 서울대 맛집 소개 사이트에 적극 홍보하고 있다.





‘샤로잡을 지도’ 제작을 위한 현장조사 모습.  (서배공 제공)


마침 이달부터 신축하는 50㎡(약 15평) 이상 식당·카페에 휠체어 경사로 설치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건물이 사각에 있다. “현장 조사를 하면서 이건 법과 제도의 문제란 생각을 했어요. 막상 법을 검토해 보니, 기초적인 부분만 의무고 내부 환경 관련해선 ‘권장’에 그치더라고요.”(손정우) “크게 보면 우리 법도 어느 복지 선진국 못지 않은 수준이라고 해요. 다른 점은 자꾸 예외를 둔다는 거죠. ‘예전에 지은 건물은 괜찮고, 몇 평 이하면 괜찮고’. 법 자체가 배리어프리한 환경 보장이 힘들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도 된다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아요.”(김지우)

올해는 경사로 설치 가게들을 모니터링하고 대학동과 녹두거리로 경사로 설치를 확대해 지도를 업데이트 하는 한편, 학생들이 돌아온 학교 내 배리어프리 환경 조성에도 나선다. 공동 시설과 건물 간 이동 문제가 중점이다.

이들은 “서울대가 교육부 ‘장애 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매번 최우수를 받고 있지만 사실상 최우수가 아니란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일례로 중앙도서관 양 옆 접근로는 계단과 가파른 비탈이고, 도서관 개찰구와 장애인화장실 출입구 규격, 서가 간격도 다양한 휠체어 크기를 고려하지 않았다. 장애학생 이동 지원차량이 있지만, 한 대뿐인데다 학기 전에 고정 스케줄을 짜게 돼 있어 수업 외엔 이용이 어렵다.

서배공은 학내 저상 셔틀버스 도입을 촉구하고, 비장애인 중심이었던 학내 공연도 배리어프리로 기획해 선보일 예정이다. 장애인권대학생네트워크와 함께 학생회 활동, 축제 등에 적용해볼 배리어프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서배공이 만드는 자료들은 시각장애인이 음성으로 변환해 들을 수 있게 대체텍스트를 제공한다.

“장애인 이동권과 접근성은 수치로만 파악할 수 없어요. 지하철역의 95%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도 장애인이 환승하는 데 20분 넘게 걸리는 역이 있는것처럼요. 사실 저희가 하는 일이 원래 개인 단체가 나서야 하는 일은 아니잖아요. 학교와 협상을 통해 하나라도 바뀌는 것이 생겼으면 해요.”(김지우)

“많은 학교 구성원이 배리어프리의 취지엔 동의하지만 시혜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해야지’ 하면서도 시간과 돈이 들어갈 땐 주저하죠. 예산을 할애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배리어프리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길 바랍니다.”(손정우)

박수진 기자


▷서울대 배리어프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https://www.instagram.com/sharo_map_barrierfree/
▷팸플릿 형식의 '샤로잡을 지도'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링크: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uriY_W9-BgXIKnQawbwDmmR5flE2Mip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