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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2017년 5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역사 속의 산업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칼럼
명사 칼럼  

역사 속의 산업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

김명자 화학62-66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문명사는 인간사회가 오늘이 어떤 때인가를 인식하고, 그때를 살아갈 지혜 찾기를 거듭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16~17세기 라틴 유럽의 과학혁명, 그리고 18세기 이후 기술혁명의 거대한 물결은 경제·사회·문화적인 충격은 물론 가치관까지 바꾸는 문명의 대전환을 일으켰다. 아놀드 토인비(1852-1883)는 그의 유고 ‘영국의 18세기 산업혁명 강의’(1884)에서 최초로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썼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스 슈밥의 표현을 빌린다면, 3만 년 전 현생인류의 출현 이래 300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인류사회는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쓰나미’를 맞고 있다. 

기술예측의 역사에서 1950년대 미국 공군의 항공기 시속 예측 사례는 흥미롭다. 전문가들은 항공기의 시속이 지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예측 곡선을 그려 놓고서도 2000년도 이전에 인간이 달에 착륙하리라곤 상상을 못했다. 하지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아서 클라크 경의 몽상가적인 예상보다도 30여 년 앞서 인간은 달에 발을 디뎠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이 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역사 속의 산업혁명은 몇 가지 특징을 띤다. 핵심적인 선도기술, 그것들 사이의 연결, 경제·산업·사회·문화 차원에서의 엄청난 변화다. 1차 산업혁명(1750년~1830년)의 핵심기술은 방적기, 제철법, 증기기관, 공작기계였다. 미래의 이익을 위해 당장의 리스크를 무릅쓰는 영국의 기업가 정신은 더 큰 몫을 했다. 비밀결사체 러다이트(Luddite)의 기계파괴운동을 겪으며,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는 붕괴되고 공장 체제와 기업조직이 출현한다. 철도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까지 바꾼다. 중세까지는 하루 두 끼를 먹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인구가 늘면서 점심 한 끼가 더 추가된 것이다. 공장은 시간 맞춰 작업 교대를 하고, 회중시계가 많이 팔린다. 

2차 산업혁명(1870-1920)은 화학염료·전기·통신·정유·자동차 산업 중심으로 전개됐고,  대기업이 기술혁신의 핵심 주체로 등장한다. 기술 주도권은 영국으로부터 독일과 미국으로 옮겨간다. 19세기 초반부터 독일 대학개혁에서 연구중심 대학이 출현하고, 미국 대학에서 배출된 공학도들은 기업으로 진출한다. 그동안 별개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과학과 기술이 과학기술로 연결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과학에 기반한 기술이 나타난다. 시스템·질서·컨트롤 개념이 새로운 가치가 되면서, 대량생산의 포드주의와 과학적 관리의 테일러주의가 대세가 된다. 빈부격차가 커져서 석유산업의 록펠러는 국가 경제의 2%에 달하는 부를 축적한다. 물질적 풍요의 한편으로 자원고갈 위협과 환경오염, 대형 기술사고, 기후위기 등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나타나고, 1960~70년대 반과학주의와 환경사회운동 등 대항문화(counter-culture)의 풍파를 겪게 된다. 

제3차 산업혁명은 1960년대 미래학자들의 예견에서 예고된다. 다니엘 벨은 ‘산업후사회의 도래’에서 정보 주도와 서비스 지향의 사회가 될 것이라 했고, 프릿츠 마흐럽은 미국 산업에서 정보의 생산과 유통의 지식산업이 GNP의 30%를 차지했다고 했다. 앨빈 토플러는 80년 ‘제3의 물결’에서 탈공업의 정보사회의 기술의존적 성격을 강조한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은 제조업은 물론 일상생활의 디지털화를 촉발했고, 그 과정에서 글로벌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일방향성에서 쌍방향성으로, 통제에서 분산으로, 중앙집중식에서 네트워크로 가치체계가 바뀌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산업혁명의 역사성이다. 1884년에 등장한 산업혁명 용어는 1906년 프랑스 역사학자 폴 망뚜의 ‘18세기 산업혁명’에서 학술적 용어가 된다. 2차 산업혁명은 1910년 영국의 패트릭 게데스의 ‘도시의 진화’에 등장한 뒤, 1969년 미국의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랜디즈의 ‘언바운드 프로메테우스’에서 학술적 지위를 얻는다. 이에 따라 영국의 산업혁명은 제1차 산업혁명으로 재정의된다. 이처럼 1차, 2차 산업혁명은 기술혁명이 완료된 뒤에 정의됐고, 3차 산업혁명은 학술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채 4차 산업혁명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1년 남짓한 사이 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화두가 되면서 이 논의가 지난 날의 녹색성장이나 창조경제처럼 꺼져버리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어쩌면 이들 견해 차이는 역사학과 미래학의 관점 차이 또는 학술적 접근과 경제적 관점의 차이일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진행되는 기술혁명은 그 규모와 범위, 복잡성이 역사상 유례없이 빠르고 폭넓다는 것이다. 이른바 물리적 기술, 디지털 기술, 생물학적 기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기술 융합과 산업 융합에 의해 산업구조, 노동시장, 직무 역량, 거버넌스 등 온통 세상이 다 바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산업혁명의 역사적 정의조차 기존 개념을 파괴하고 있는 건 아닐까. 

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과 초지능의 혁명이다. 기술적 동인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로봇, 드론, 가상현실 등이다. 해외 설문조사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의 전개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70%에 가깝다. 그러나 미 백악관 보고서는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인공지능으로 생계 위협에 처할 것”이라며 사회복지·교육·노동 정책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기술혁명의 진행은 필경 국가와 산업의 파괴적 재구성 과정에서 불확실성과 극심한 빈부격차 등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 인간의 정체성, 도덕성, 윤리, 인간관계에 혼돈을 초래할 것이다. 오늘날의 기술혁명은 기술 진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기술은 인간의 조종을 벗어나 버린 게 아닐까, 기술 진보는 인간의 삶을 오히려 훼손시키는 게 아닐까.” 기술혁명의 전파와 수용 과정에서의 사회문화적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식과는 다른 학제적 연구에 의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