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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017년 4월] 기고 에세이

아버지의 수첩을 읽다

문소정 모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아버지의 수첩을 읽다




문소정(대학원84졸)모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안녕하면 됐지 하며 오랫동안 서로 간섭 안 하며 소 닭 보듯이 살아왔다. 가끔 아버지를 마주하면 이종의 실타래로 뭉쳐진 복합적 감정이 치밀어 올라와 어떤 감정을 담아 아버지를 부를지 난감하기조차 했다.


아버지는 지난 3년간 중증치매로 살았다. 대소변 가리지 못하고, 가끔씩 공격적이고, 배회가 심하고 불면증을 앓으며 살았다. 어머니가 치매를 돌보며 함께 살았다.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근처에 사는 것으로 딸의 도리를 다한 듯이 수수방관했다.


작년 10월 어느 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이틀 후에 알았다. 실종신고, 경찰의 수색이 시작됐다. 거리에 전단지를 붙이고 인접한 강변과 산기슭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버지가 아닌 변사체 한 구를 발견하였을 뿐이었다.
10여 일 후 아버지를 찾았다. 인근 도시에서 연락이 와서 찾기까지 꼭 10여 일이 걸렸다. 아버지가 어떻게 그곳에 갔는지 지금도 모른다. 아버지를 찾자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절차를 진행했다. 요양원 입소를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기록물을 만나게 됐다. 병적증명서 등 여러가지 증명서, 통장, 자필이력서, 메모, 수첩 등이었다.


아버지의 기록물을 읽으면서 아버지의 소년, 청년, 노년으로 이어지는 삶의 길에 잠시 들어서게 됐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가의 4남 2녀 중 삼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나던 해 징집되어 참전했다. 그 후 25세에 결혼했고 30세를 지나 제대해 고향에 돌아가 1년쯤 농사를 지으며 아버지의 지향가족과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했다.


아버지의 인생 타임표를 따라가다 보니 아버지가 왜 군인이 됐는지 어떻게 제대했는지 그리고 아버지의 사투리, 술과 담배, 고압, 생선, 영어사전 등이 어우러진 삶의 단상과 애환의 편린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기록물을 통해 한국에서 식민지 시기 태어난 가난한 농가의 한 소년이 전장으로 징집되어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며, 자신이 떠나도 10년 정도 아내가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을 정도만큼만 쥐어주고, 자녀와 학교 교육 뒷바라지를 자녀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것으로 마감하며 남편으로, 아버지로 풍진 세상을 헤쳐 나오며 중증치매 노인이 된 그 인생무상과 애환이 담긴 삶의 심연을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나의 복합적 감정의 상당한 부분이 나의 욕망 중심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