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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뉴스 모교소식

연구중심대학 지향…학부 줄고 대학원생 늘어

숫자로 보는 서울대학교 <5>
숫자로 보는 서울대학교 <5>

연구중심대학 지향…학부 줄고 대학원생 늘어


올 1학기 모교 학부 입학정원은 3,193명이다. ‘서울대학교 통계연보’ 등 모교 자료를 종합해 보면, 1995년 전후 5,000명 안팎이었던 학부 신입생 수가 2010년대 들어 3,200명대로 줄어든 후 현재와 같은 규모로 정착되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연구중심대학 지향이라는 학내 요인과 1998년 시작된 ‘두뇌한국 21’ 사업 등 정책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 방안 중 하나로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추진했다. 후기산업화, 탈근대화, 정보화를 뒷받침해줄 세계적 수준의 고급 인력과 연구 성과들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정책이었다. 

1970년대 중반 종합화와 더불어 특성화 전략으로서 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해오던 모교는 이러한 정책과 맞물려 1999년부터 2005년 사이에만 학부 정원을 33.6% 줄였고, 대학원 석사 및 박사 정원은 각각 47%, 28% 늘렸다. 연구중심대학이란 연구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대학을 뜻하며, 대학원중심대학과 비슷한 말로 쓰인다.

어떤 대학도 예외가 없지만 특히 모교는 국내 최고 국립대학이라는 위상 때문에 더욱 정부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학부 정원도 마찬가지여서 당대 교육 정책의 영향으로 그 수가 널을 뛰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졸업정원제 시행에 따라 발생한 사상 초유의 미달 사태다. 

‘서울대학교 70년사’에 따르면 1980년 전두환 정권 때 시행된 졸업정원제는 “입학 문호의 확대, 대학생 학력 향상, 고교생 과외 열풍 해소 등 명분은 다양했으나 실상은 대학생들을 학점 경쟁에 빠뜨려 ‘학생사회의 탈정치화’를 꾀하려는 계략”이었다. 

모교는 시설 여건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전체 증가율 60.28%를 훨씬 웃도는 96.9%를 증원하게 됐고, 1981년 입학정원은 6,530명에 이르게 됐다. 이는 전년도 입학정원 3,315명의 두 배에 육박하는 규모로 1,238명이 미달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일찍부터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해오던 모교는 학부 정원을 동결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려 했으므로 이에 역행하는 졸업정원제로 인해 더욱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정부의 교육 정책으로 말미암아 학교의 발전 전략이 혼선을 겪은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대학 자율화가 시도되면서 모교는 다시금 스스로 장기 발전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1970년대 중반 구상됐던 연구중심대학이 다시 대두됐다. 연구중심대학의 기본 전제는 학교의 중심을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옮기는 것이고, 이를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정원의 재배치다. 실제로 석박사 정원은 1993년 3,561명에서 2002년 4,750명으로 늘었고 현재는 5,000명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 학부 정원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서울대학교 백서 2002~2003’의 작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조신섭(응용수학70-74) 통계학과 교수는 “모교의 세계대학 평가순위가 오른 데에는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나아간 것이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대학원 정원의 확대가 우수한 인재의 더 많은 유입으로 이어지진 못했다”면서 “잘 하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 수준 차이가 심해 수업의 난이도를 설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학교 70년사’에도 대학원 입학생 중 상당수는 타 대학 졸업생이라며, “모교의 우수한 학부생들은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추세”라고 적고 있다. 실제로 시카고대에서 1999년부터 5년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의 출신 학교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는 1,655명을 배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175명을 배출한 버클리대에 이어 2위이며, 해외대학 기준으로는 1위이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