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6호 2017년 1월] 기고 에세이

대학과 교수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박칠림(건축59-65)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전 대우건설 CTO


박칠림(건축59-65)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전 대우건설 CTO



학문과 교육은 비전을 추구하고 목표를 세워야 한다. 돈과 연구자만 있다고 학문의 수준이 높아지고 창조적 업적이 생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학자나 교수들이 비전을 추구하며 인류의 장래를 위해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학자와 교수는 줄어가고 정치적, 사회적 명성과 경제적 이득에만 관심을 갖고 안주하려는 학자와 교수들만 늘어나고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장으로 변해가고 있어 미래의 비전을 창조하려는 통찰자가 설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대학과 교수들은 인간에게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물어야 하며 그것을 어떻게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지 고민해야한다. 오늘날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학자, 교육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최근에 정부에서 막대한 자금을 대학과 연구자들에게 지원하여 연구소와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있다. 이에 맞춰 대학과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따내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국가의 학술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바람직한 일일수도 있으나 짧은 기간에 급조된 기획들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한때 지식인이 시대의 양심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시대의 양심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려는 지식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묻거나, 대학의 의미와 역할을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근래에는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앞장서서 취업률을 높이기 위하여 머리를 짜 내고 있으며 기업의 목소리가 직접 대학에 반영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대학들은 취업이 유리한 학과는 확대 신설하고 품성과 인격을 고양하는 학과는 점점 폐과되고 있다. 물론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초등 교육 또는 그보다 앞선 가정교육과 사회 환경이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학생들 각자가 사회에 나와 직업으로 삼을 전문분야는 물론 있어야 하지만 국가, 사회가 전문가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 먹고사는 직업을 위한 교육은 구태여 대학까지 가서 공부할 필요가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선적으로 외면당하는 학문은 인문학 분야일 수밖에 없다. 기업이 불황일 때 연구소를 우선 없애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문학, 역사, 철학, 예술, 음악, 과학, 등을 망라하는 인문학은 과연 도태되어야 하는 학문일까?

인문학을 가르쳐야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 인류의 위대한 역사와 업적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달해야한다.

둘째, 대안적인 관점의 추구로 일반적인 여론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고 자율 적이고 자유로워야 한다.

셋째, 자신과 사회와 국가의 비전을 인문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넷째, 비판정신을 길러주어야 한다.


전형적 인문학 교육방식은 강의, 독서, 토론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독서다. 강의와 토론은 보조적이지만 이것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대학교육도 필요 없을 것이다. 도서관만 있으면 되니까. 그보다 먼저 학생들은 스스로 독서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강의와 토론은 이런 기술을 가르쳐 주고 혼자 읽을 때 보다 많은 것을 독서에서 얻어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보통 학부에서 20대에 교수로 채용되면 정년까지 45년을 그 자리에 있게 되고 그동안 이직할 확률은 거의 없으며 그중 누구도 교수법의 기술에 대해 충고나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강의의 요점이나 목적에 대해 깊은 생각과 노력을 해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학생들은 고교, 대학수업시간에 발표보다 교사,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으로 시간을 채웠을 테니까.


그래서 좋은 대학이라면 훌륭한 교사로서의 자질과 훌륭한 학자로서의 자질을 결합한 교수를 찾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교수들 중에는 종신교수가 되기 위해, 승진, 보수를 올리기 위해 논문출판에 집착하는 사람이 많은 결과 하찮은 말의 홍수에 빠질 위험에 처해있다.


대다수의 논문은 요약본만 출판하고 본문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복사본을 주는 것이 좋다. 이 방법은 논문을 요약해야하는 필요성에 접근하면 스스로 자신의 논문이 사실은 출판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되는 불상사는 막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인문학은 인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의학, 법학, 공학, 물리학, 예술, 스포츠와 같은 특수전문대학에서도 시행되어야 한다.


과거에 한동안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잘난 사람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오늘의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말이 아닐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에 대하여 정확히는 몰라도 우리 사회에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래 전부터 지나치게 많은 학술잡지들이 발간되고 있으며 논문의 홍수에 빠져있어도 이런 문제에 대하여 종합적인 차원에서 논의를 할 광장(forum)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어떤 미래를 건설하고 싶은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