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4호 2016년 11월] 기고 에세이
아들아,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한정민 워싱턴 가정상담소 소장
아들아,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한정민(농가정87-91) 워싱턴 가정상담소 소장
한 달 전 대학생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순간 ‘무슨 일 있나’ 철이 들면 안부전화 하는 날도 오겠지만, 아직은 용돈이 떨어지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전화가 오다 보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지난 학기에도 중간고사 전에 서너 번 전화해서 ‘공부가 너무 힘들다’며 한번씩 쏟아내곤 했기에 전화벨이 울리면 살짝 긴장이 된다. 그리고 다시 소식이 없어 연락하면 ‘잘 지내요’란 문자만 날리는 아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심상치 않다. 그냥 힘들단 너스레가 아니란 느낌이 온다. 두 달 전쯤 꾸물거리다 여름 인턴십 기회를 놓쳐서 전화로 꾸짖는 중에 수화기 너머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 우니?” 그러자 “엄마, 나 너무 힘들어”하며 흐느끼는 게 아닌가.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됐지만 마음을 가다듬어 “괜찮니”라고 안부를 묻는데 나도 와락 눈물이 났다. 초등학교 이후 아들이 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I hate this school. 무슨 놈의 학교가 맨날 6~7시간씩, 그리고 주말에도 밥 먹고 공부만 해야 학점을 받아? 다른 애들은 다 천재 같아. 난 기타 치며 노래도 만들고 부르고 싶은데… 주말엔 아이들과 노는 자원봉사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직업의식이란 게 이런 건가? 어느새 나는 상담사로 옷을 갈아입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있었다. “너 정말 너무 힘들었겠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견뎠네. 와! 대단한걸.” 가슴은 쿵쾅거리고 걱정은 밀려오는데 머리로는 침착하게 그의 고통을 들어주고 있었다. 상담소에서 학업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겪거나 약물을 복용하는 학생들을 적지 않게 만나왔기에 걱정과 불안으로 잠을 설쳤다. 몇번 통화하며 잘 다독여 힘든 시간을 넘긴지 한 달 만에 다시 걸려온 전화였다. 중간고사 두 과목을 망쳤다며 공부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너무 커 깔려 죽을 것 같단다. “좀 더 견딜 수 있을거 같아? 졸업까지 2년만 더 버티면 되는데.” 그러나 아들의 답변은 “엄마, 나 죽을 거 같이 힘들어.”
순간 머리가 복잡해지며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끔 ‘조금만 더’를 외치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택한 아이들의 비극적인 뉴스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고생도 모르고 너무 나약하게 키워 그런가’란 자책과 ‘잘 버티라고 좀 세게 말해야 하나’란 생각도 스친다. 아니면, 좀 쉬었다 가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나? 마음이 혼란하고 두렵다.
한참 고민하고 기도한 후 나는 ‘그냥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든 시간을 함께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어떤 결정과 답을 주기보다는 어떤 상황에 놓이든, 설사 바닥에 떨어져도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지지대와 버팀목이 되어 ‘아들아, 좀 쉬었다 가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기로 했다.
그 후 2주 동안 2~3일에 한 번씩 전화로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아이가 압박과 걱정으로부터 좀 풀렸을 때 몇 가지 옵션을 보여주었다. Gap year를 하며 일하고 여행도 하면서 넓은 세상을 배우는 시간을 갖거나, 조금 쉬운 대학으로 옮겨서 공부 외에 하고 싶은 음악과 자원봉사 등 좀 여유있는 대학생활을 갖는 것, 혹은 외국에 나가 공부하는 방법도 소개하며 ‘꼭 학교를 4년에 마쳐야지 그렇지 않으면 실패자’란 스스로의 압박에서 좀 벗어나 다른 관점을 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엄마, 시간은 가네. 그 힘들던 시간도 지나갔네. 이제 좀 살 것 같아. 그냥 여기서 4학년까지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동양엄마들처럼 말해주지 않아서 감사해요.”
아이도 나도 큰 테스트를 치른 느낌이다. 앞으로 많은 현실의 산들이 다가올 텐데, 그 때마다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편이 되어 지지해주고, 때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의 말을 건네는 것 외에 부모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음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