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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016년 10월] 뉴스 기획

“통일평화전문대학원 설립, 대한민국을 평화의 메카로”

특별인터뷰 성낙인 모교 총장


젊은 학자 연구 위해 10년간 10억씩 지원
외국인 교수·학생 늘려 국제경쟁력 강화


대담 :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가 개교 7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선한 인재’ 양성, 법인화 이후 거버넌스 안정화에 힘을 쏟고 있는 성낙인 총장(26대)은 서울대의 미래 비전으로 ‘데이터 사이언스 이노베이션 전문대학원’과  ‘통일평화전문대학원’ 설립을 구상 중이다. 4년 임기의 후반기를 맞은 성 총장으로부터 모교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재임 중에 개교 70주년을 맞은 총장으로서 소감이 어떠세요.
“우리나라와 국민은 고난의 시기를 잘 이겨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압축적으로 산업화·민주화를 달성한 나라가 없지요.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 가운데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입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 발전한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날 제3세계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서울대 역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동문들도 아마 잘 모르실텐데, 초대 총장이 미국인이에요. 1946년 10월 15일 모교가 문을 연 뒤 1947년 10월에 한국인 2대 총장을 새로 선임하긴 했어요. 그러나 국립서울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출범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 줍니다. 초기에는 경성제대와 전문학교들을 합쳐서 캠퍼스가 열 군데가 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75년 관악으로 종합화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농생대와 수의대도 관악으로 들어오면서 관악 메인 캠퍼스와 연건 메디컬 캠퍼스 두 개로 묶였지요.
우리나라의 발전 과정에서 서울대인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하는데 개교 70주년은 정말 각별한 의미가 있고, 그 뜻깊은 해에 제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다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몇 해 전 서울대의 뿌리찾기 논쟁이 벌어진 후 ‘1895년 개학, 1946년 통합개교’로 정리됐습니다. 개학과 개교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얼마 전 일본 교토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가했는데 비엔나 대학 총장이 자기 대학의 개학연도를 1400년대라고 소개하더군요. 들어보니 시작은  작은 기관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서울대는 역사가 너무 짧은 거예요. 그래서 총동창회에서 뿌리찾기 운동을 벌였죠. 1895년 3월 법관양성소가 설립되고 그 다음 달에 한성사범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법관양성소 1회 졸업생이 이 준 열사로 법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범대학은 한성사범학교 교수 출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냈던 박은식 선생의 흉상을 건립했고요. 서울대가 1895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총동창회에서 ‘1895년 개학, 1946년 개교’로 정했고 저희도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그에 맞춰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개교 이후 모교의 70년을 어떻게 평가하고 현재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의 70년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아닙니까. 1946년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부산 피난 시절에 전시 연합대학으로 운영 됐죠. 그런 상황에서 오늘날 이렇게 성장을 이룬 것은 대단히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이제는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대한민국 1등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속의 서울대로 좌표를 새로 설정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선 대학들을 빨리 따라가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미래를 이끌 선도자가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실사구시적 측면에서 학문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한 게 ‘데이터 사이언스 이노베이션 전문대학원’입니다. 우리나라가 ICT 선진국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빅데이터 관련 학문과 산업을 끌고 갈 역량이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공학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까지 학제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통일평화연구원을 토대로 ‘통일평화전문대학원’ 설립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염원인 민족 통일을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평화의 메카가 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의 자연 보존과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유일한 10대 경제대국이라는 특징을 잘 활용하면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모교 법인화 이후 취임한 첫 총장으로서 법인화가 가져온 변화를 어떻게 평가하세요.
“우선 학교의 거버넌스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법인화 이후 부조리하게 겪고 있는 불이익입니다. 법인화가 갑작스럽게 되다 보니 반영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면 서울대는 한 해 정부에서 4,000억원 정도 지원받으면서 동시에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법인화 된 일본 국립대들은 납세 의무를 면제받고 있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19대 국회 때 법안을 냈고, 20대 국회에 다시 같은 내용의 법안을 상정해 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서울대는 공공기관으로 각종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행된 청탁금지법도 사립대 교수는 강의료를 시간당 100만원까지 받는데 서울대 교수는 20만원밖에 못 받습니다. 20년 만에 선임된 법대 교수 출신 총장인 만큼 이런 법적인 문제들을 정리하는 데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정관·학칙 등 법적으로 미흡한 점을 내부적으로 정리하는 것 또한 법학자 총장으로서의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법인화 당시의 기대효과는 충분히 거두고 있나요.
“예산집행을 보면 예전에는 엄격히 통제받았는데 현재는 상당부분 자율성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아요.  세입세출이 병원까지 합치면 2조5,000억원 정도 됩니다. 병원이 1조5,000억원, 학교가 1조원 정도지요. 이 중 정부로부터 4,000억원 남짓 지원받는데 이게 우리의 경쟁 상대인 도쿄대나 싱가포르대에 비하면 3분의 1정도밖에 안 됩니다. 물론 저희가 분발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얻어야 발전기금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평창 그린바이오 캠퍼스에서 산학협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벤처 기업들이 많이 들어오도록 할 계획이고, ‘약콩두유’ 같은 인기상품도 계속 개발해서 우리 스스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대학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특히 세계 대학과의 비교가 자주 언급되는데요.
“연구중심대학을 하면 교육에 소홀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연구는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 30명 정도 교수에게 향후 10년간 조건 없이 최대 연간 1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30대에 시작해서 40대에 주제를 확실히 잡고 연구해야 50, 60대에 노벨상 받는 거예요. 차차기 총장 때라도 서울대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씨를 뿌린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국제화와 관련해서는 사실 홍콩대, 싱가포르대가 우리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다만 영어를 쓴다는 점 하나 때문에 엄청난 이점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희도 이제 외국인 교수가 100명을 넘었습니다. 앞으로 더 늘리고, 외국인 학생도 더 많이 오게 할 방침입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전세계 40개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수도 현재 400∼500명에서 700∼800명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지금 후문 쪽에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기숙사를 짓고 있는데 내후년 완성되면 외국인 학생 수용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또 우리 학생들의 국제화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방학 중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워싱턴DC, 베이징, 도쿄, 모스크바 등 4개에서 런던,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 제네바 등으로 대폭 늘렸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난 등 때문에 쉽지 않은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인 모교의 학생 교육은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가 크게 발전했고 국민의 경제형편도 좋아졌지만 학생 중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 꽤 있습니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과외를 몇 개씩 하느라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최소한 의식주 문제는 학교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1,000원 식당’을 시행하고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전액 면제는 물론 한 달에 30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50명에서 올해 850명으로 늘었습니다.
저는 또 헌법학자로서 권력만 균형이 아니라 입시도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최고의 국립대면 서울 강남 3구 학생도 들어오지만 도서벽지 학생도 올 수 있어야 합니다. 취임 후 지역균형선발을 이전에 시행하지 않던 대학들까지 확대했습니다. 도서벽지의 인재들도 데려와서 꽃이 피도록 해줘야 하고, 서울의 우수한 학생은 또 우수한 대로 모든 학생들이 다함께 공부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서울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발도상국 지원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1950년대에 모교 의대 교수들이 미국 국무부 등의 지원으로 미네소타대에서 연수하는 등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받은 도움을 제3세계 국가들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라오스와 아프리카 등에 우리 의료진이 가서 봉사하고 그곳 의사들을 교육시키는 등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기 시설이 부족한 네팔에 모교 공대 교수와 학생들이 가서 전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께서 아프리카 순방 중이었을 때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통령께서 아프리카에 가서 보니까 서울대 의료진들의 봉사 활동을 통해서 대한민국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고 그게 너무 고마워서 감사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하셨답니다. 제3세계 국가들은 강대국들 제품을 쓰더라도 께름칙하게 생각해요. 다른 나라 국민에게 상처를 준 전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대한민국이 따뜻하게 대해 주니까 호의적일 수밖에 없죠.
우리가 이런 봉사·공헌을 해야 제대로 된 국제화를 구현할 수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국내에 한정돼서는 진정한 일류 대학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의 어려움까지 아우를 때 세계 일류 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총동창회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모교의 역사기록관 건립이 어디까지 왔는지 진행 상황을 말씀해 주세요.
“역사기록관은 총동창회에서 100억원 지원을 약정해 주셨는데 아직 지지부진해서 서정화 회장님과 동창회원들께 송구스런 마음입니다. 교내 여러 곳을 검토하다가 캠퍼스 한가운데 있는 문화관을 재건축하면서 그 옆에 역사기록관을 짓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완성되면 문화관에서 서울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울대의 역사를 보여주는 역사기록관을 둘러본 다음 규장각에 보전돼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관람하고 본관을 거쳐서 관정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좋은 방문 코스가 될 것입니다.”
-지난 7월로 4년 임기의 절반이 지나고 이제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제가 늘 말씀드리는 대로 학생들이 ‘선한 인재’로 거듭 나도록 노력한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튼튼한 체력에 바탕을 둔 기백이 넘치는 인재를 양성했고 학생들을 세계무대로 끌어올린 총장이라는 평을 듣고 싶습니다. 또 서울대는 상주인구가 학생, 교수, 연구원 등 약 4만명이나 되는 큰 조직입니다. 법인화 이후 약간 들뜬 분위기가 있는데 법적·제도적으로 안정시킨 총장으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동문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십니다. 서정화 총동창회장께서 매년 15억원씩 10년 동안 지원해주시기로 약정하셨죠. 또 총동창회에서 매학기 5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모교에 관심을 가진 동문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교와 동문은 상호적인 관계입니다. 모교를 좀 더 사랑해주시고, 그 사랑을 실천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리=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