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1호 2016년 8월] 기고 에세이

녹두거리에서 : 서울대 덕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교수

서울대 덕



서민(의학85-92) 단국대 의과대학 기생충학교실 교수


좋은 데 다니는 학생이 왜 이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경찰의 표정은 한없이 관대했다. 불과 1분 전에 날 부랑자 비슷하게 보던 것에 비하면 상전벽해 급의 변화였다. 대학 1학년의 어느 날, 난 선배가 냉면그릇에 담아 준 소주를 마신 뒤 맛이 갔다. 어떻게 택시를 타긴 했지만 타자마자 잠이 들었고, 목적지 근처에 도착해도 내가 일어나지 않자 택시기사는 날 경찰서에 데려간 거였다.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경찰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가 변한 건 내가 지갑에서 학생증을 내민 직후였다. 주민등록증이 엄연히 있었음에도 굳이 학생증을 꺼낸 것도 사실은 그런 혜택을 받고자 하는 의도였으리라. 원래 그러는 건지 내게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경찰은 내 주소를 확인한 뒤 경찰차로 집까지 날 데려다 줬다.


사실 난 외모로 보면 공부와는 담을 쌓은 듯 생겼다. 3 때 고입 연합고사를 치르기 위해 모르는 학교에 임시소집을 간 적이 있다. 그땐 말까지 더듬던 시기였는데, 그 학교 선생이 수험번호를 물었을 때 선뜻 대답을 못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 선생이 내 수험표를 움켜쥐더니 이렇게 말했다. “xxxxxx번이잖아! 왜 대답을 안 해!” 돌아서서 다음 줄로 가면서 선생이 한 마디를 한다. “저런 것들도 고등학교 간다고, 어휴.” 1 때는 이런 적도 있었다. 선생이 내준 수학문제를 푸는 시간이었는데, 담당 선생이 명찰에 적힌 내 이름을 보더니 이러셨다. “이름이 서민이야? , 서민. 공부 좀 해라.” ‘서민공부 좀 해라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가 안가지만, 아무튼 그 말을 듣고는 그냥 바보같이 웃어버렸다. 옆에 있던 짝이 반박한다. “걔 공부 잘해요. 우리 반 1등이에요.” 그 당시 선생의 표정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거짓말 하지 마. 1등은 무슨...”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대학에 간 뒤 외모 면에서 나와 비슷한 급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신감이 조금 회복되긴 했지만, 학교 밖을 나가면 외모와 성적을 연결시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말까지 어눌하니 날 바보 취급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 결과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래도 쟤, 서울대 나왔어.”였고, 위에서 예로 든 경찰처럼, 그 말을 들으면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렇게 생긴 애가 어떻게, 라는 듯한 그들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교수가 된 지금도 난 내 모교를 우려먹으며 산다. 가끔씩 고등학교에 가서 강연을 할 때가 있는데, 강사소개 중 서울대 의학과를 졸업했다는 대목이 나오면 학생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진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있는 학생들이니 서울대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고, 그래서 그런지 학생들은 내 말에 더 집중을 한다. 그밖에 어머니한테 내가 했던 가장 큰 효도도 서울대에 간 것이니, 서울대에 못 갔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이렇게 모교 덕을 보면서도 막상 서울대에 대해 해야 할 의무는 거의 하지 않았다. 일례로 동창 회비를 거의 낸 기억이 없고, 동문 모임에도 참석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서울대 총 동창신문에서 원고청탁이 왔을 때 난 산처럼 쌓인 일들을 생각했고, “죄송하지만 제가 사정이 어려워서라는 답변을 기계적으로 쓰고 있었다. 그 글을 지우고 모교에서 연락을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는 답신을 보낸 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양심의 절규였으리라. 나처럼 서울대 덕을 보는 다른 동문 분들도 가끔은 양심이 작동하길, 그래서 동창신문 기자들이 원고 청탁 후 겪어야 하는 거절의 아픔에서 벗어나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