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호 2016년 7월] 뉴스 본회소식
사분오열
서정화 회장 발행인칼럼
사분오열
서정화 회장 발행인칼럼
작금의 대한민국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 경제라는 거시적인 분야에서부터 사회의 지엽말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사건사고야 항상 있어왔던 것임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백가쟁명, 사분오열,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역량이 전혀 결집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경험했던 시절, 대한민국이 위기 앞에 단결하는 방식에는 카리스마적인 리더층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같은 국민이자 단일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공유하며 국가대사에는 리더의 지휘 아래 통합되었다. 그렇게 집중된 국가적 역량은 효율적인 산업화, 안정적인 문민화, 그리고 전향적인 남북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논란의 여지는 언제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지도자의 통솔에 따라 합심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왔다. 그것이 한때 이 나라가 작동하던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다. 국민들은 지도층의 말에 따르기보다 비판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일에 훨씬 더 익숙하지만, 국가의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내려는 성숙한 주권의식을 발휘하여 민주적인 권위를 창출해낸 것은 아니다.
지도층은 지도층대로 국가를 통솔하고 선도하여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일에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결과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된 리더십-팔로우십은 실종된 채 대한민국 호(號)는 세계를 위협하는 태풍 속으로 함께 움직이고 있다.
이는 권위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단일한 정체성 또한 훼손되고 있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해진 세상에서 국가와 민족은 고루함과 차별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을 요구하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의해 매몰되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비난받는 세상이다. 그렇게 이 사회는 국민으로서도 민족으로서도 하나 될 길을 잃었으나 아직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혹자는 이러한 세태야말로 한국이 발전된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로운 의지로 살아가는 개인들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 형성되므로 국가나 민족 같은 집단의 논리에 좌우되지 않는 사회야말로 민주주의 체제의 토대라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 중 하나다. 그러나 혈족, 민족적 집단의식, 초자연적 권위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창출해내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국력과 민도가 겸비한 국가라고 하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은 강점과 분단의 이중고를 극복해내고 서구에 뒤지지 않는 선진민주사회를 만들어왔으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체제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원론적인 자유주의 이외에 민족에 대한 애정, 국가에 대한 충성심, 권위에 대한 이해, 종교적 열정 등 반자유주의에 가까운 정서가 동시에 필요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민주주의 체제의 첨단을 달린다는 서구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결국 민주주의 또한 정치체제 중 하나일 뿐이다. 구성원의 의지를 수합하여 권위를 형성하고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다는 본래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이론일지라도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체제로서는 부적합하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다양하고도 자유로운 개인들을 존중하면서도 기어이 그들을 설득하여 통합해내고야 마는 지혜와 열정을 가진 창조적 소수들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빛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리더들도 그러한 사람들일 것이다.
탈권위주의와 다원주의가 대세인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란 대중의 다단한 욕망을 외면하지도 그에 영합하지도 않으면서, 그 방대한 조류를 기꺼이 받아서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지성과 솔선함이 어우러져 시대를 관통하는 봉사적 실천으로 구현되었을 때에 대한민국은 사분오열된 작금의 혼란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의 번영을 향한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개학 이래 국가의 중추로서 활약해온 서울대인들이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자신과 사회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