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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2016년 1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국제화의 외침은 크건만

송상현(법학59-63)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모교 법대 명예교수

 

전문가 칼럼


국제화의 외침은 크건만

송상현(법학59-63)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모교 법대 명예교수

 


12년간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ICC)의 재판관 및 소장으로서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해보니 반갑고 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답답한 심정도 없지 않다.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외면한 채 주로 소위 먹방을 즐기는가 하면 옆나라 대국들을 비난하거나 무시하면서 우리끼리만 폐쇄적 담론에 빠져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빠른 디지털화 외에도 경직된 냉전체제의 붕괴로 말미암아 자유롭고 유연하고 창의적 분위기속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아이디어가 많은 국제적 토론을 거쳐 인류생활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를 잡아가는 등 급격하게 변화되어 왔다. 물론 인권이나 법의 지배정의를 통한 항구적 평화등은 아주 오래된 보편적 원칙이긴 하지만 냉전체제의 붕괴이후 그 외포와 내연이 훨씬 확대되었다.


또한 20159월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고위층선언에는 2030년까지 달성해야할 지구의 새로운 발전목표(SDGs)로서 17개의 기본원칙과 169개의 세부목표가 명시되어 있다. 최근 파리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에서는 2030년까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예상 배출량의 37%를 감축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따라서 우리는 한시라도 이같은 국제사회의 빠른 변화를 모르고는 그 구성원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군사적, 경제적 초강대국이 될 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양자외교보다도 테마 중심의 다자외교와 여러 지역과 국가를 포괄하는 다지역 외교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으면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건만 우리는 항상 남북한문제와 관련된 4강 외교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우리의 여건상 안보외교와 경제외교를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좀더 외교의 틀을 확대하여 개방적 태도로 인류가 모두 공감하는 가치를 선도하는 일방 더 넓은 지역과 국가를 보듬는 외교는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남의 것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유산을 내세우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요 소위 글로칼리제이션(glocalization)의 본뜻이건만, 몇 개의 친숙한 선진국에게는 무조건적 사대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그 외의 대부분의 나라를 무시하는 일방 배타적 국수주의적 방향으로 치닫는 경향은 국제화를 저해하는 커다란 정신적 장애요인이 된다. 식생활이 갑자기 서구화되었다고 국제화의 길에 들어선 것은 전혀 아니다. 간판을 서양언어로 작명하고 출처불명의 외래어를 남용하는 것이 우리의 자존심을 올리고 국제사회에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국제기구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같은 진출을 혹시라도 우월감 만족이나 명성을 이루고 호강하는 통로로 생각하고 덤빈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착각이다. 자기나라에서 사는 것처럼 편안함이 이 세상에 또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 진출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사회를 위하여 내 한 몸 바쳐 봉사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보수가 많다거나 특권적 대우를 받는다거나 호화로운 출장을 한다는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국제화를 위하여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고 대학이나 기업에 외국인 전문가를 많이 채용해야 한다고 한다. 좋은 일이지만 그들이 한국의 교수들과 서로 전문적 학문협동을 통하여 학계의 국제화가 촉진되고 좋은 연구결과가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기여했다는 소식은 잘 접하기 어렵다. 국비나 장학금으로 외국유학을 떠난 많은 인재들이 귀국 후 외국의 연찬결과가 얼마나 우리나라 학계의 국제화에 기여를 했는지는 파악조차 안되고 있고 고급인력활용계획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가을이 되면 노벨상 타령이 신문지면을 장식하곤 한다.


국제화를 위하여 될수록 많은 국제회의를 국내에 유치하여야 한다고 한다. 물론 옳은 말이다. 이런 기회에 한국을 올바로 알리고 최대한 국제적 감각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제사회 한편에서는 한국을 봉으로 아는 일부의 인식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국제회의 참가자들을 국가예산으로 항공료와 체재비를 부담하여 국내에 초청하는 것도 모자라서 지나치게 값비싼 선물을 퍼주는 것은 이제 지양할 때가 되었다. 국민의 세금이나 억지로 받은 기업의 협찬으로 비싼 선물을 준다고 찬사를 받는 시절은 지났다. 선진국은 제조과정에서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제작된 후진국의 소품을 찾아 선물하는데 우리는 고가의 국보모조품이나 전자 타블렛 등을 꼭 쥐어 주어야 국제화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들의 내면적 인식과 대외적 사고방식이 너무 불균형적이고 일방적인 점이 우려스럽다. 요컨대 우리들 자신의 열린 마음가짐과 톨레랑스 수준의 향상, 급변하는 국제동향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적극적 참여 및 협력, 그리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터잡은 정부의 정책수립과 주도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