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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호 2015년 12월] 기고 에세이

풍선 날리기

임효빈(화공61-65) 넷스퍼 상임고문


풍선 날리기

임효빈(화공61-65) 넷스퍼 상임고문

흥겨운 타이틀 뮤직이 지금도 귀에 생생한 1956년 개봉작 ‘80일간의 세계일주’. 프랑스작가 쥘 베른의 1873년 출간 원작을 20세기형으로 리메이크한, 명우 데이빗 니븐과 셜리 매클레인이 각기 은행사기 혐의자와 인도나라 공주로 분한 다소 황당한 플롯의 이 초기 테크니컬러 영화는 가벼운 스릴러 줄거리 못지않게 열기구(熱氣球)를 타고 벌이는 모험과 코믹 그리고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절묘한 촬영기술로 당대 최고의 명화중의 하나로 꼽힌다.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다니. 절찬상영 40년 후 현실적으로는 1999년까지도 불가능했던 인간의 상상력을 엮어낸 기술 퓨전 코믹 드라마다.


어찌 생각하면 열기구의 진보는 새처럼 하늘을 날고자 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실패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보려는 후진들의 모험창작과정이나 다를 바 없다. 다빈보다 2백년이 훨씬 지나 프랑스 리옹(Lyon) 남부 앙노네(Annonay)에서 부유한 종이공장 주인 아들로 태어난 조제프 몽골피에와 자크 몽골피에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 여러 가지 특수종이를 가지고 불장난하면서 놀다가 불을 지폈을 때 얇고 튼튼한 종이 주머니에 연기를 모으면 이 종이 주머니가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을 눈여겨봤다. 그들의 순진한(?) 머릿속엔 주머니를 아주 크게 만들기만 한다면 사람을 태운 채 하늘로 떠오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조국 프랑스의 사돈 나라이던 스페인 남단 해협 알박이 땅에 숙적(宿敵) 영국이 구축해 놓은 난공불락 지브롤터(Gibraltar) 요새도 연기의 부양력(浮揚力)을 응용 증폭한 거대한 풍선에 군대를 띄워 보내 공중에서 공격할 수만 있다면! 형 조제프의 황당한(?) 판타지는 끝이 없었다.


종이 대신 아주 촘촘히 짠 태피터(taffeta) 비단이나 마포(麻布)로 공기주머니를 만들어 끈질기게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실내 테스트에서 어느 정도 자신이 생기자 몽골피에 형제는 178212월 부피 1.3의 직육면체 모양의 비단주머니에 뜨겁게 덥힌 공기를 불어넣어 고도 250m까지 상승시키는 데 성공한다. 때로는 실험에 사용한 커다란 헝겊주머니 조각이 마을 한 가운데로 날아가 유령이나 귀신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드디어 178365, 표면을 리넨(linen, 아마를 원료로 한 직물)으로, 안쪽에는 세 겹의 특수종이로 라이닝을 대어 만든 무게 225kg 부피 780나 되는 꽤 큰 풍선의 공개실험에서 공식적으로는 세계최초로 기록될 이 열기구는 2km나 멀리 날아가면서 약 10분 동안 공중에 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뜨거워진 공기가 주머니를 상승시킨다는 이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무언가 신비한 물질을 태운 연기 속에 풍선을 상승시키는 특수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연기는 몽골피에 가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을 기념해 오늘날 세계열기구의 날로 지정되어 있는 65일이 되면 해마다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Albuquerque),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처 이괄라다(Igualada), 스위스 샤토데(Chateau d'Oex) 등 세계 곳곳에서는 최신 기술과 온갖 디자인을 뽐내는 열기구 축제가 열리게 된다.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는 당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호기심을 끌기에 이르러 1783919일 왕이 친히 참석한 가운데 베르사유 정원에서 필드테스트 영광(?)을 누리게 된다. 짓궂은 왕은 재미삼아 이 기구에 죄수를 2명 태워 올려 보내자고 제안했지만 이들은 다음 단계 실험인 유인비행의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왕의 비위를 차마 거스를 수 없어 양, 거위, 수탉 한 마리씩을 열기구 밑에 매단 바구니에 실었다. 동물들이 살아 돌아오면 저 높은 상공에도 산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터였다. 실험은 성공했고 두 사람은 왕으로부터 무슨 무슨 훈장까지 받고 아버지는 귀족작위를 받았다. 이것은 미국의 라이트 형제의 1903년 엔진동력에 의한 하늘 날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꼭 12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성공 불과 10일 뒤에 샤를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과학원 물리학자 샤를(Jacques A. C. Charles)이 수소기구(hydrogen balloon)에 의한 유인비행에 성공한다. 샤를은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실험 성공을 보고 열팽창한 보통 공기 대신 비중이 훨씬 작은 수소가스를 넣은 기구를 제작, 자기 스스로 탑승 비행함으로써 수소기구가 종래의 다른 가스열기구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을 과시하게 되자 이것이 곧바로 기구비행의 주류가 됐고,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나일론제 풍선에 프로판 가스를 버너연료로 사용하는 보다 안전한 기구가 연이어 개발돼 나오자 몽골피에 방식의 원시적인 열기구는 거의 완전히 뒷전으로 퇴장하게 된다.

기구는 이렇게 열기구(Hot Air Balloon), 가스기구(Gas Balloon) 그리고 복합형 기구(Roziere Balloon) 등 크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요약하면, 몽골피에 기구라고도 불리는 열기구는 공기 주머니에 버너로 뜨거운 열을 주입해 외부공기보다 가벼운 주머니 속 공기의 부력으로 공중으로 뜨게 하는 반면, 가스기구는 공기보다 가벼운 수소나 헬륨가스를 사용하는 것이다. 178517일에 프랑스인 블랑샤르와 미국인 제프리(John Jeffries)는 수소 가스기구를 타고 세계 최초로 영국의 도버에서 프랑스의 칼레까지 영국해협 횡단에 성공하기도 했다. 한편, 거의 같은 시기(1783)에 고등학교 과학선생이던 로지에가 개발하고 첫 비행한 공로로 로지에르 기구라고도 불리는 복합형 기구는 열기구와 가스기구의 장점을 이용해 만들어진 혁신적인 하이브리드 기구다. 비가열가스 체임버와 가열가스 체임버를 분리 장착해서 연소용가스의 소모를 줄이면서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것인데, 이 모델을 원조로 2백여 년에 걸친, 인간공학을 가미한 융합기술혁신에 힘입어 19993월에 이르러서는 스위스인 의사 피카르(Betrand Piccard)와 영국 공군출신 존스(Brian Jones)가 함께 타고 스위스 샤토데에서 이륙 후 1922시간(478시간) 동안 4814km를 날아 이집트 무트(Mut) 피라미드 근처에 착륙함으로써 사상 처음으로 열기구 무착륙 지구일주에 성공했다. 기구기술의 복합결정판이라 할 만한 이들의 열기구 풍선은 케블라(Kevlar)섬유와 탄소섬유로 짠 최첨단재질로 만들어 11m 상공의 저온비행을 견뎌냈고 완전팽창시켜 놓으면 높이가 자그마치 180피트나 되는 풍채를 자랑했다. 이 기념비적 기구의 곤돌라 부위는 미국 워싱턴 D.C. 근교 달라스공항 구내 항공우주박물관에 기증 전시돼 있다.

근자에 우리나라 휴전선 근처에서는 심심찮게 풍선날리기 행사가 열리고 있다. 외국에서처럼 과학모험이나 레저 또는 온갖 아이디어의 광고를 위한 것이 아니다. 눈 귀 막힌 북한동포들에게 오늘날의 남북한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 주려는 탈북자 출신 NGO의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그것도 때로는 보내네, 못 보내네 시끄럽기도 하지만, 기술부족인지 빡빡한 예산 때문인지 떠오르던 고무풍선이 너무 일찍 터져버리기도 하고 풍향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원격조종 장거리미사일까지 만드는 우리 첨단기술실력과 온갖 축제에 눈먼 돈 펑펑 써대는 단체들이 조금씩만 보탠다면 온 국민이 참여하는 풍선날리기 축제 한번 본때 있게 벌여 볼 수 있지 않을까? 북녘 동포들이 목말라 하는 온갖 싱싱한 정보와 요긴한 선물을 실컷 실어 날려 보낼 수 있게 말이다. 동서베를린을 영원히 갈라놓은 듯해 보이던 장벽의 작은 벽돌 한 장이 깨지면서 독일통일의 신호탄으로 연쇄폭발됐듯이, 어느 순간 곧 닥쳐올지도 모르는 조국통일의 축하폭죽으로 기억될 풍선떼를 하늘 가득히 한번 제대로 띄워 북으로, 북으로 날려 보내기-대책없는 소시민의 한낱 부질없는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