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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2015년 10월] 기고 에세이

이 땅의 엄마

고화자(약학63-67)동문


이 땅의 엄마











고화자(약학63-67)동문

       


남세스러워 남들에게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나의 비밀이 하나 있다. “닭의 생식기를 먹으면 아들을 잉태할 수 있다는 해괴한 충고를 귀담아 듣고 닭 집에서 그 이상한 부분을 생으로 먹어가며 간절히 아들 갖기를 원했다. 무식하면 웃어넘기기라도 하겠지만. 가방 끈 길다고 껍죽대는 사람에겐 영 논리가 안 맞는 짓이다.


딸 둘을 연거푸 만든 나는 시댁 식구들에겐 반 푼이 죄인이고, , 본인에겐 사는 이유의 전부가 아들을 가져보는 온 푼이 벅수였다.


아들을 가진 옆집 미용사도 대단한 존재고, 어린 아들을 앞세우고 리어카를 끌고 가는 여인네도 무언가 걱정 없는, ‘다 가진 사람으로 크게 보였다. 길을 다닐 땐 잔돈을 들고 다녔다. 선행을 해야 아들을 주실 것 같아서 였다.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다.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짓 저 짓 노력이 가상했는지 떡두꺼비 같은 4.2kg의 아들을 낳았다. 세상에 알리려고 허바허바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물론 자랑스러운 아들의 아랫도리는 다 풀어헤쳐놓고 돌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찍었다. 공무원 한 달 치 봉급도 아끼지 않았다.


아들에게 중고교 과정은 힘들었다. 해외를 들락거리느라 학기 시스템이 안 맞아 모자라는 수업은 내가 맡았다. 아들에게 원조 대치동 엄마노릇을 한 셈이다. 내가 학원 강의를 들으면서 부족한 부분 도와주며 원조 타이거 맘 노릇을 맹렬히 하였다. 전두환 대통령 땐, 과외수업 받는 것이 들통 나면 학생 아비의 목을 쳤다. 무엇보다 사교육엔 철통같은 교육관을 가지신 대통령이었다. 본인의 자식들에겐 너그러우면서.


담임과 교련 과목에 대한 내신을 진지하게 상담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류대학 학위를 받아 쥐고 평생 부모를 지키는 샐러리맨 아들이 되길 원했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군대 가던 날이었다. 논산 훈련소에서 옆에 앉아 있던 아들이 군악대 소리와 함께 앞으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를 남겨두고. 화장을 두껍게 했는지 눈물이 얼굴에 계곡을 만들었다. 아들 군대 보낸 엄마들은 이회창씨 아들의 군대 면제사건 소식에 길길이 날뛰며 대통령후보 낙마 시키는 일이 유관순 언니나 되는 양 독립투사 같은 정의에 불탔다. 어쩌면 아들 군대 보내고 가슴 아렸던 상처를 보상 받으려했던 건 아니었을까?


공들인 아들이 장가가는 경사스런 날엔 주책없이 눈물을 뿌렸다. 언감생심 평범한 아들이어도 이미 끔찍한 존재인데, 옥스퍼드 박사에 미국 대학교수까지 안겨주다니. 흐뭇한 우리 부부는 미국 아들네 방문 길에 가슴 속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부모 영향으로 네가 학위까지 받고, 오늘의 네가 되었나보다. 고맙다.”


부모의 역할을 잘 해낸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까지 말하는 순간 아들이 받아쳤다.


어머니가 간섭을 안했다면, 전 더 컸을 거예요.”


무슨 날벼락인가, 나는 화살처럼 한마디 콕하고 날렸다.


네 새끼 키워서 엄마 나이에 다시 만나자.”


독일에는 아펜리베(Affen Liebe)라는 말이 있다. ‘원숭이 사랑이라는 뜻이다. 항상 새끼를 등에 둘러메고 다니면서 이 잡아주고 털 핥아주는 원숭이와 같은 자식 사랑을 말한다. 아무 곳에도 가지 못하도록 품안에만 넣어 두는 부모의 잘못된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란다.


귀국 길, 비행기는 구름 속을 날아가는데 머릿속에 자꾸만 새끼 같은 원숭이가 떠돌아다닌다.





*고 동문은 약국을 운영하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동문입니다. 한국순수문학에 등단해 약사공론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