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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2호 2025년 1월] 문화 나의 취미

“늘 부족하고 욕망하는 인간, 수행할 수 있어 복 받은 존재”

참선 수행하는 이강옥 (국문76-80) 영남대 명예교수


늘 부족하고 욕망하는 인간, 수행할 수 있어 복 받은 존재

참선 수행하는
이강옥 (국문76-80) 영남대 명예교수



대학 시절부터 재가 수행 시작
송광사 여름수련회로 본격 입문


그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릴 적 홍수 때면 고향 강에 떠내려 오던 시신들, 아픈 어머니, 상이군인들. 대학에 와서도 대학촌이라 불렸던 캠퍼스 옆 판자촌(현재 인헌아파트 일대)에 살며 가난과 죽음을 가까이 목격했다. 불안과 공포로까지 이어진 죽음의 망상에서 해방되고 싶어 책을 읽고 글도 써보다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시절 찾아든 한 절에서 읽은 반야심경의 첫 구절.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몸과 마음이 모두 공()함을 깨달을 때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불교의 가르침이 한 줄기 빛이 됐다. 이강옥 동문이 재가 수행자로 살게 된 계기다.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고통에서 해방되는 방법이 뭘까 모색했어요. 그 귀결점이 수행이었습니다.” 1227일 대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동문은 맑고 온화한 얼굴로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는 한국 야담 연구로 성산학술상, 지훈국학상, 두계학술상 등 국문학계의 권위 있는 상을 두루 받은 석학이다. 동시에 30여 년을 수행 정진해 왔다.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한 2001년 송광사 여름수련회 얘기부터 물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얻었습니다. 미국에 박사 유학을 떠난 아내 대신 제가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며 육아를 도맡았죠. 해마다 6월이면 전국 주요 사찰들의 여름 수련회 소식에 가슴이 설렜지만 아이가 출가하려는 제 발목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11년간의 유학을 마친 아내가 돌아오자마자 45일짜리 한정 출가를 선언했다. 4 1 경쟁률을 뚫고 참가한 송광사 여름 수련회에서 새벽 330분 기상해 저녁 9시 취침까지 스님과 똑같이 묵언, 참선, 발우공양, 108배 등의 수행생활을 했다. 군인, 수녀, 의사, 판사, 대학 총장까지 다양한 수련생이 오로지 번호로만 불리니 신분 해방의 개운함을 느꼈고 묵언 수행은 교수로서 말로 생계를 꾸려 온 과거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며칠 만에 속세로 돌아왔지만, 이곳에서 생겨난 초발심은 재가 수행의 원동력이 됐다. “제가 하는 화두 수행의 핵심은 일상과 수행이 분리되지 않는 거예요. 걷거나, 머물거나, 앉았거나 눕는 일상 중에 계속 수행하라는 것이지만 초심자는 쉽지 않죠. 세속과 단절된 수행처에서 집중적으로 몰입하면 발심이 생깁니다. 발심은 수행을 위한 일종의 에너지인데, 이 힘을 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끊기지 않고 수행을 할 수 있어요.”

이후 봉화 금봉암, 부산 안국선원, 외부와 단절된 강원 홍천 행복공장 무문관을 찾아 수행하고 미국 뉴욕주립 스토니부룩대 방문학자를 지내던 시절 롱아일랜드의 선원을 찾기도 했다. 고우 큰스님, 현봉 스님, 현묵 스님 등 선지식(善知識)의 이끎을 받았고 함께 정진하는 도반들을 만났다. 그 수행 여정을 기록한 책 깨어남의 시간들을 펴내기도 했다.




이강옥 동문의 수행 여정을 담은 책 '깨어남의 시간들'(돌베개), 고전문학 속 죽음 서사를 통해 새로운 명상을 제안한 '죽음 서사와 죽음 명상'(역락)


시간을 쪼개어 연구하고 수행하는 날들이 그는 행복했다고 말한다. “꼭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니 시간이 충분하진 않았죠. 캠퍼스 한쪽에 좌선하는 바위를 정해 두고 앉아서 틈틈이 참선했습니다. 점심 시간에 산책길을 걸어가면서 행선도 하고요. 수행이 어느 단계에 이를 때마다 제가 하는 연구도 새롭게 전환되고 확장됐습니다.”

자신처럼 죽음에 대한 번뇌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고전문학 속 죽음 서사를 바탕으로 죽음명상법을 정립했다. 불교 서사문학인 구운몽을 활용한 우울증 치료법도 개발했다. 부귀영화를 탐하다 한바탕 꿈을 꾸고 깨어나는 구운몽은 절망과 허무의 서사로 알려졌지만, 그는 이 얘기에서 아상(我相)을 버리고, 나와 세계에 대한 집착을 내려두고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했다. 한국문학치료학회 최고전문가상담 자격을 취득하고 알음알음 그를 찾아온 이들에게 무료로 꿈과 구운몽을 활용한 상담치료를 했다. 깊은 우울에 빠져 있던 청년의 마음을 돌려놓기도 했다. 그는 이런 일들이 중생을 향한 나의 회향(廻向)”이라고 했다. 회향은 내가 가진 공덕, 지혜, 능력 등을 타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사실 정년퇴임 후에 출가를 할까도 생각했어요. 현실 여건도 어려웠지만, 최선의 방법이 아니더군요. 제 전공인 야담과 일화가 인간의 일생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문학 갈래예요. 퇴임 후 수행자이자 작가로서 입적한 스님들의 평전을 쓰기 시작했어요. 스님 법문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고, 송광사 현봉 스님의 인연담을 펴내기 위해 인터뷰를 하고 있죠. 다 놓고 들어가버리면야 편했겠지만, 나 아니면 누가 이 일을 할까 싶어요.” 불교에서 무의식에 해당하는 8아뢰야식에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저장되어 업이 된다는데, “평생 학자로서 읽고, 쓰고 토론해온 업이 스님의 일생을 선양하고 누군가를 치료하는 데 쓰이니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진지하게 임한 수행을 취미코너에서 다뤄 미안하다는 말에도 미소를 지었다. “매일 몇 분이라도 좋으니 천천히, 취미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할 것 없어요. 절에 가셔도 되고, 가톨릭 신자라면 피정도 좋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전국 사찰에서 수련회를 열고 일반인 대상 시민선방도 곳곳에 상설 운영 중이다. 이 동문은 봉화 문수산 금봉암에서 매월 열리는 참선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불교의 육도 세계인 천상·인간·아수라·축생·아귀·지옥 중 인간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최고로 복 받은 존재예요. 왜일까요? 천상계의 천신들은 모든 욕망이 충족돼 수행이 불가능합니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부족함을 알고 수행할 수 있는 복을 타고났죠. 다시 인간계에 태어나 이런 복을 받기 쉽지 않다 해요. 인간으로 사는 한 시간을 아껴 치열하게 수행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