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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22년 9월] 문화 나의 취미

“수질오염 주범? 낚시인만큼 호수 사랑하는 사람 있나요”

김범철(해양73-77) 강원대 명예교수
 
 
“수질오염 주범? 낚시인만큼 호수 사랑하는 사람 있나요”
 
김범철(해양73-77) 강원대 명예교수 




호수생태·수질관리 권위자
낚시 외 진짜 오염원 규명해  


“물고기를 잡는 낚시인은 수(水)생태계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물고기와 호수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김범철 강원대 환경학부 명예교수는 삶의 많은 시간을 호숫가에서 보냈다. 그는 모교 졸업 후 카이스트에서 생물공학 석사학위,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호수 생태학과 수질 관리를 연구해온 호수 과학자다. 8월 26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을 때도 국회의원들과 녹조 현상의 독소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60년 경력의 낚시인임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월간 ‘낚시춘추’에 연재하는 ‘호수의 과학’ 칼럼을 읽고서였다. 

“어린 시절부터 낚시를 좋아했어요. 고향이 충북 제천인데 긴 대나무에 줄을 매고 의림지라는 저수지에서 낚시를 했죠. 박사논문 쓸 때도, 고3 때도 2학기를 빼면 낚시를 쉬어본 적 없어요. 친구들은 대학 포기했냐고 했지만 일요일 오전에 몇 시간 하고 오면 머리가 맑아지더군요. 대학 땐 낚시 단짝인 동기와 여름방학에 낚시대랑 텐트 들고 전국으로 낚시를 다니다 29박 30일 만에 돌아오기도 했죠.”

대학 시절 소양댐에서 3박 낚시를 즐기다가 거대한 댐과 호수에 매료됐다. “해양학과 호수학 이론이 거의 같다. 한국에서 가장 큰 호수를 연구해봐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소양댐의 플랑크톤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그후 40여 년간 소양호를 장기 관찰했다. 그 덕에 90년대에 가두리 양식장이 수질 오염의 주원인임을 밝히고 10년에 걸쳐 가두리양식장 철폐를 이끌기도 했다. 

낚시인들이 수질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됐을 땐 분석 자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해왔다. 그가 찾아낸 수질오염의 주원인은 낚시인들이 뿌리는 떡밥이 아니었다. 김 동문은 “녹조만 생기면 낚시 금지가 대책으로 나오는데,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동물의 배설물 등에 포함된 인 성분이 물에 많아지면 인을 먹고 자라는 식물플랑크톤이 늘어나 ‘부영양화’ 대표 현상인 녹조가 생긴다.

“여러 호수에 대해 계산해 본 바 수질오염 원인에서 낚시의 비중은 대개 1%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가축 분뇨와 농지 퇴비, 도시 인근에선 인 제거 처리를 하지 않은 하수가 더 큰 문제였죠. 하루에 낚시 미끼 300g을 사용할 때 낚시로 1인당 약 0.7g의 인을 배출하는데, 소 한 마리가 낚시인 51명, 돼지 한 마리는 17명에 해당하는 인을 배설합니다. 소똥 한 숟가락에 든 인이 떡밥 한 봉지 속 인과 맞먹고, 소 100마리 축사에서 나오는 인이 낚시인 1000명의 미끼만큼 영향을 주는데 낚시만 단속하는 건 약간 전시적인 성격이 있죠. 낚시가 금지된 신갈 저수지도 정작 바로 옆의 하수처리장에서 인 제거를 하면서부터 수질이 크게 좋아졌어요.”

그래서 김 동문은 낚시인도 호수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환경전문지가 아닌 낚시잡지에 호수학 칼럼을 연재하는 이유다. “오늘날 물가에 가는 사람은 낚시꾼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물빛이 어떤 색인지, 어떤 고기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죠. 담수의 생태에 대한 저의 지식을 생태계 보전을 위한 지식으로 전환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최근 책 ‘호수환경생태학’을 냈을 땐 낚시인들이 나서서 홍보했다. 유튜브 ‘김범철 교수의 호수의 과학’ 채널을 통해서도 호수 지식을 나누고 있다.  

방문 연구차 ‘낚시 천국’ 미국에 머문 것도 낚시인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계기가 됐다. 낚시 면허제가 있는 미국은 주별로 낚시 규정을 두고 시설과 어종 관리를 철저히 한다. 약 20달러 남짓한 면허와 함께 주는 규정집엔 낚시 도구와 보호대상 어종, 어종별로 포획이 허용되는 크기와 마릿수 등이 적혀 있어 어기면 환경 전문 경찰이 큰 벌금을 매긴다. 김 동문도 낚시 면허를 구입해 주말마다 낚시를 다녔다. 

“미네소타 주에선 낚시 바늘을 한 개만 쓸 수 있어요. 규정집을 읽으면 어류 보호를 위한 세심한 노력이 느껴지죠. 낚시인은 돈을 내는 대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요. 선거철엔 낚시인 연합에서 후보자들에게 호수 물고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낚시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설문지를 돌리고 선거 운동도 하더라고요.” 국내엔 낚시면허제가 번번이 도입이 무산돼 아쉽다.  

장소와 미끼에 따라 다양한 낚시를 섭렵해 보고 붕어 대낚시에 정착했다. “낚시는 손맛이라지만, 붕어는 ‘찌맛’에 낚는다”고 했다. “붕어 낚시는 찌를 달고 하는데, 긴 기다림 끝에 찌올림이 주는 설렘이 말도 못해요. 찌를 바라보노라면 지루하지도 않죠. 불교의 참선과 비슷하단 사람도 있어요. 참선은 화두를 하나 정해 그것 외에 모든 생각을 끊어버리잖아요. 찌낚시도 어떻게 보면 고기 외에 다른 생각을 끊고 몰입하는 것이고요.” 잡은 고기는 모두 놓아준다. 

가을은 낚싯대가 길어지는 계절이다. 호수물이 수온에 따라 상하층으로 나뉘는 성층현상이 해소돼 물고기도 봄보다 깊은 곳에 머물기 때문이다. 제일 가까운 출조 일정을 묻자 그가 배시시 웃었다. “내일 모레요. 학과 교수 한 분의 초등학생 아들이 낚시 해보고 싶다고 조른다네요”. 며칠 후 춘천 근교 낚시터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미국에선 물 환경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swimmable, fishable water’를 내세웁니다. 물놀이 하고, 물고기 잡는 걸 인간의 중요한 권리로 보장하는 거죠. 어린 아이에겐 자연을 배워야 한다면서 요금도 받지 않고 낚시를 가르치고 권장해요. 우리 낚시인도 존중받으면서 자연보호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길 바랍니다.”         

박수진 기자



▷김범철 교수의 유튜브 채널 '호수의 과학'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LfTozvFlmi2rkQNDTyF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