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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2023년 11월] 문화 나의 취미

20년 다력…술자리 막잔은 언제나 차 

차 애호가 김용재 (정치04-08)  유엔협회세계연맹 수석담당관
 
20년 다력…술자리 막잔은 언제나 차 
 
차 애호가 김용재 (정치04-08) 
유엔협회세계연맹 수석담당관





모임 ‘청년청담’ 통해 차문화 전파
입문서 ‘차를, 시작합니다’ 인기


“형, 왜 꼭 3차에 차(茶)를 마셔요? 술 먹고, 노래방 가도 되는데….”

2007년 정치학과 자치회장이던 김용재 동문의 신림동 자취방에선 자주 진풍경이 벌어졌다. 깊은 밤 만취한 채로 차를 우리는 방 주인과, 역시 대취해 밤새 차를 마시는 손님들. 녹두거리에서 시작한 술자리가 얼마나 거나했든 반드시 ‘막잔’은 차였다. 다소 저항이야 있었지만, “술 대신 차를 마시면 날 밝을 때 정신도 맑아지리라”는 팽주(차를 내어주는 이)의 뜻 덕에 아침엔 모두 개운한 얼굴로 길을 나섰다. 
   
여전히 ‘차에 진심’인 김 동문은 요즘 감회가 새롭다. 차의 인기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2016년 그가 만든 청년들의 차 모임 ‘청년청담’. 이미 회원수 1000여 명이지만 근래 가입 문의가 더 많아졌다. 차 입문자를 위해 쓴 책 ‘차를, 시작합니다’는 1년 만에 3쇄를 찍었고, 전국 각지에서 초청받아 연 북토크만 30여 회다. “네가 임영웅도 아니고, 전국 투어를 다니다니”. 어머니도 놀랐다. 

유엔협회세계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 수석담당관이자 가천대 초빙교수로 일하면서 차 알리기에 힘쓰는 그를 11월 2일 가천대에서 만났다. ‘가을에 어울리는 차’라며 직접 우려온 하동산 황차 한 잔과 함께였다. 찻잎의 발효도에 따라 차를 분류할 때 중간 정도에 해당하는 차다. 그는 “1970년대부터 차 문화가 보급됐는데 50년간 차를 즐기는 인구는 점점 줄어가는 게 고민이었다. 배타적이고 어렵기만 하면 사람들을 끌 수 없다고 생각해 내가 즐기고 경험한 것들을 알리게 됐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을 따라 다니던 문화유산답사에서 차를 접했습니다. 혼자 다도 책을 읽으며 차를 공부하다 우연히 신문에서 차 연구가 고 류정호 선생께서 이끄시는 서울대 전통찻집 다향만당에 대한 기사를 봤어요. 입학 후 그 기사 스크랩을 들고 다향만당에 찾아가 본격적으로 입문했습니다.” 

다력(茶歷)을 세어 보니 어느덧 약 20년. 그동안 특별한 미각을 갖지 않은 ‘보통 사람’으로서 차를 이해하기 위해 찾은 왕도가 있다. ‘비교하면서 마시기’와 ‘함께 마시기’다. 그는 “먼저 두 가지 이상의 종류나 방법으로 차를 우려서 마셔보라”고 권했다. “간단해요. 현미 녹차 티백 아시죠? 그 차와 다른 차를 함께 맛보는 겁니다. ‘현미녹차는 구수한데, 이 차는 산미도 있고, 바디감도 강하네’ 정도는 누구나 느낄 수 있거든요. 왜 다르지?란 호기심이 차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거예요.”

“차를 배우려고 하면 한국 차, 일본 차, 중국 차 중 하나를 선택하는 분위기인데, 그런 경계 없이 고루 마셔봐야 더 다양하게 누리고 즐길 수 있다”고도 했다. 시작은 머그잔 하나로도 충분하다. 호기심을 갖고 물과 차의 양, 온도, 다구를 바꿔가며 비교하면서 마시는 사람의 차는 점점 맛있게 우려지게 마련이란 설명. 그럼 ‘함께 마셔야’ 하는 이유는 뭘까. 

“차가 와인이나 커피보다 어렵게 느껴지는 건, 차는 예민하기 때문이에요. 같은 다구로 같은 차를 우려도, 물 온도 따라, 또 정수기 물, 수돗물, 생수로 우린 맛이 각각 달라요. ‘내가 잘못 우렸나? 차는 못 마시겠다’ 싶을 때, ‘오늘 물이 달라서 그래’, ‘우리 컨디션 따라 다른가봐’ 얘기해줄 친구가 있다면 쉽게 포기하지 않게 돼요. 다양한 차를 마시고 싶을 때 경제적 부담도 덜 수 있고요. 청년청담 외에도 인터넷 카페나 SNS에 다회가 많습니다. 좋은 차벗을 찾는 일은 노력과 시간을 들일 가치가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청년청담의 찻자리엔 차뿐만 아니라 차 관련 기물, 차와 함께 즐길 그림과 음악 등 다양한 주제가 오른다. 다른 마실거리에 배타적이지 않아 차와 어울리는 와인이며 위스키를 함께 마시기도 한다. 백미는 봄마다 떠나는 차문화 기행. 대학 때 류정호 선생의 인도로 다향만당에서 다도특강을 함께 듣던 학우들과 나주, 순천, 강진, 정읍 등의 차밭을 찾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제는 그가 인솔해 매해 봄 의례처럼 떠난다. “차를 마신다면 꼭 차밭에 가서 차를 만들어보라”고 권하는 그에게 혹자는 “쉽게 사서 마실 수 있는데 왜 수고스럽게 멀리까지 가냐”고 묻는다.  

“차는 세 번의 향기를 낸다고 해요. 처음 찻잎을 꺾을 때 향긋한 향이 올라와요. 그러다 사그라들면 ‘생명을 꺾었구나’ 죄책감이 들죠. 가마솥에 찻잎을 넣고 덖을 때 또 향이 살아나서 ‘아직 살아 있었네’ 싶어요. 마침내 다관에 찻잎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을 때 향기가 다시 이는데, 그 생명과 가치가 사라지지 않고 이 한 잔에 오롯이 응축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를 우리면서 잠깐이나마 치유되고 재충전되는 걸 느낄 수 있기에 제게 더 소중한 일이 되었죠.” 

올해 봄엔 보육원을 퇴소하고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을 하동에 초대해 1박 2일간 청년청담 회원들과 함께 찻잎을 따고 차를 만들었다. “한창 고민 많고 불안할 시기에 차가 위로가 되길 바랐어요. 저도 커피를 즐겨 마시지만,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소통해 주는 모습에 ‘만약 커피였어도 결과가 같았을까’ 싶더라고요. 차의 힘을 느꼈습니다.”



김용재 동문이 이끄는 청년 차 모임 '청년청담'  (김용재 동문 제공)


국제기구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현재 유엔협회세계연맹에서 유엔의 17가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알리는 일을 한다. 가천대 창업대학에서 ‘사회적 임팩트를 만드는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것도 그 일환. 알고 보면 차 또한 그의 화두와 통한다. 본래 차나무는 나무가 자라는 만큼 땅속에 곧게 뿌리를 내리고, 독해서 벌레도 먹지 않는다. 비료나 거름을 주면 외려 뿌리가 옆으로 뻗치거나 썩고 벌레가 생기니 친환경, 유기농 재배가 정석이다. “이런 생태환경적 특성 덕에 유엔에서도 차를 중요한 농작물로 본다. 제가 차에 대해 더 알려야 할 이유”라며 웃음지었다. 

예술품 같은 다구를 많이 소장한 김 동문은 모교 동문 작가들이 만든 다구로도 차를 즐겨 마신다. 몇해 전 모교 도예 전공생들에게 특강을 하며 ‘차를 마셔봐야 좋은 잔도 만들 수 있다. 이젠 세계 차 시장을 노리라’고 조언했다. 다향만당에서 만난 차벗들과 인연은 여전하다. 류정호 선생이 팬데믹 와중에 병석에 들었을 땐 다같이 줌으로 모여 응원을 전했다.

“다향만당도 없어지고, 선생님도 돌아가셨지만 그때 심어주신 차씨가 차나무처럼 깊이 뿌리를 내려 이어지는 것 같아요. 마음을 치유해주는 차의 효과가 많은 이들에게 도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앞으로도 차에 대한 얘길 계속해 나가려 합니다.”     



김용재 동문이 쓴 차 입문서 '차를, 시작합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