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호 2024년 9월] 문화 나의 취미
“잃어버린 설렘, 성악 무대에서 찾았습니다”
아마추어 테너 구자동 DBS 은행 서울지점 본부장
“잃어버린 설렘, 성악 무대에서 찾았습니다”
아마추어 테너 구자동 (사법84-91)
DBS 은행 서울지점 본부장
한경신춘음악회 등 무대 경험 풍부
성악 등 음악동호회 3곳 활동
“미스터 구, 어딨어요? 노래 좀 들려줘요!” 싱가포르 DBS은행 서울지점 구자동 본부장은 본사 관계자들이 서울에 오면 ‘노래할 준비’를 한다.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은행 법무팀에 몸담은 그는 올해로 16년째 성악을 즐기는 아마추어 테너. 몇 해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은행연합회 행사에서 무대에 오른 게 발단이었다. 은행장과 싱가포르 대통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오페라 아리아 ‘여자의 마음’과 ‘넬라판타지아’를 불러 극찬을 받았다.
2019년엔 한국경제신문사가 주관하는 한경닷컴 신춘음악회 공연자로 발탁, 800여 관중에게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춰 성악 공연을 선보였다. “성악이 좋은 이유는 도전할 수 있어서”라는 그를 9월 5일 광화문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음악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릴 적부터 클래식을 많이 들었고 교회나 학교 합창단, 중창단에서 활동했죠. 치과의사인 동생도 음악을 좋아해서 작곡을 해요.” 공부하고, 일하느라 미뤄둔 애정과 소질이 40대 중반에 발현됐다. 개인 레슨을 받고, 모교 서양음악연구소의 일반인 대상 성악과정에서 6개월간 음대 교수진에게 성악을 배웠다. 독일과 프랑스의 성악 캠프도 찾아갔다.
“전공자 대상 수업은 많은데 아마추어에게 열린 캠프가 있다고 해서 용감하게 지원했죠. 독일 캠프는 뮌스터 음대에서 진행됐는데, 마스터하고 싶은 곡을 정해 가면 일주일간 레슨을 받고, 캠프 마지막날 지역 음악 애호가 100여 명을 초청해 여는 음악회에도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슈만 ‘시인의 사랑’을 부르고 독일 어르신들께 ‘어썸(awesome)’하단 말을 들었어요.”
‘노래 잘한다’고 소문날 무렵 출연하게 된 한경닷컴 신춘음악회. ‘테너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난해한 아리아 ‘내 조상의 무덤이여’를 능숙하게 소화했다. 유튜브에 올린 연습 영상엔 몇 년에 걸쳐 특정 곡을 반복하며 발전시켜 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보석을 다듬듯이 소리를 다듬는 맛이 있더군요. 한계가 있지만 내가 가진 탤런트 안에서 최대한 완성도를 높이려 노력하는 거죠. 만족하진 않아도 어제보다 늘었다는 건 알 수 있으니까요.”
많은 무대에 선 것도 일취월장한 비결이었다. 지인들의 부탁으로 결혼식 축가를 맡고, 대학과 고교 동창회 행사 등 기회가 되면 크고 작은 무대에 섰다. “나이 들면 설렘이란 감정이 없어지는데, 무대가 설렘을 주더군요. 무대는 내가 살아 있고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요. 100명, 200명의 청중이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그 순간을 공유하거든요. 시간예술의 아름다움이죠.”
그는 성악 장르의 다양함을 예찬했다. “이태리 오페라, 칸초네, 독일, 프랑스, 스페인 가곡… 마치 요리를 맛보듯이, 취향과 감성에 맞춰 무궁무진하게 택할 수 있죠. 이태리 가곡을 하다가 독일 가곡을 부르면 뭔가 아카데믹하고 달라요. 그러다 답답하면 오페라 아리아나 멜랑콜리한 프랑스 곡을 부르고요.” 노래하는 언어가 다채로우니 저절로 공부가 된다.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어학원 프랑스어 기초반에 다녔다. 학창시절 제2외국어였던 독일어의 기억도 노래로 되살렸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는 동기부여가 돼요. 언어가 느니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훨씬 많아졌고요. ‘노래 좋다’ 감상만 할 때보다 직접 부르는 게 10배는 더 즐거워요. 슈만 ‘시인의 사랑’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노래라고 하던데, 불러 보니 왜 그렇게 말하는지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더군요. 대가들이 작곡한 그 휼륭한 곡을 내 목소리에 담고 자신의 해석으로 다듬어 표현할 수 있다니! 작곡자에게 미안하고 좌절감 들 때도 있지만, 점점 성장해 간다고 느낄 때 성취감이 커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예요.”
몸이 악기인 성악가는 절제가 삶에 밴 수도자에 비견된다. 레슨 선생님도 목을 써야 하니 수업도 짧은 편이다. 아마추어지만 그 또한 “노래 때문에 절로 근신하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 “전신이 건강해야 소리가 잘 나거든요. 한 군데만 이상 있어도 목소리에 영향을 주니 도저히 막 살 수 없어요. 술이 체질에 안 맞아 다행이죠.”
음악의 기쁨, 슬픔, 외로움은 함께 나눈다. 성악, 악기 동호회 3곳에서 활동하며 클라리넷과 피아노 연주도 한다. 유희정 분당 모교 병원 교수, 이상원 모교 법대 교수, 동문 안정혜 변호사 등과 함께 몸담은 ‘뮤직 소사이어티 미미’는 모두 성악에 ‘진심’인 사람들. 한 달에 한 번 구 동문의 집에 모여 노래하고 매년 정기 공연을 연다. “각자 레슨에선 혼나도, 동호회에 오면 서로 잘한다 격려해주죠. 취미로 성악 하시기 참 좋은 게, 국내에 아마추어 동호회가 정말 많아요. 그 동호회들이 공연장을 빌려 꼬박꼬박 무대를 만들고요. 이태원에 있는 대한성악동호인협회는 한 달에 한 번 무대를 여는데, 신청만 하면 누구나 오를 수 있어요.”
나이 때문에 주저한다면, “지금이 가장 빠른 시간”이라고 했다. “봉 욱 전 대검 차장이 대학 동기예요. 성악을 권했더니, 3년 배우고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를 멋지게 부르더라고요. 성대가 가장 늦게 늙는다지 않습니까. 모든 곡을 잘할 필요 없어요. 유명한 성악가도 단골 레퍼토리가 10곡 정도라는데, 잘 맞는 곡 하나만 찾아도 행운이죠. 성대도 지문처럼 다 달라서 그 사람만 구현할 수 있는 예쁜 음악 세계가 있어요. 잘 맞는 곡을 만나 다듬으면 내 연주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완성품이 되는 겁니다.”
10월 13일 신사동 거암아트홀에서 열리는 뮤직 소사이어티 미미의 정기 공연을 앞두고 그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아리아 ‘정결한 집(Salut! Demeure chaste et pure)’을 연습 중이다. 고음이 ‘하이 C(3옥타브 도)’까지 올라가는 곡이다. “옛날엔 안 올라갔는데, 계산해 보니 1년에 딱 반음씩 올라왔더라고요. 고민하고 연구하다 보면 분명 늘어요. 건강한 몸을 가진 누구에게나 성악은 열려 있습니다.”
박수진 기자
▷구자동 동문의 노래를 볼 수 있는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jardin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