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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문화 나의 취미

“보드게임 10분만 해보세요, 세상 모든 주제와 취향이 여기 있습니다”

보드게임 마니아 오한웅 (컴퓨터공학99-06)



“보드게임 10분만 해보세요, 세상 모든 주제와 취향이 여기 있습니다”

보드게임 마니아 오한웅 (컴퓨터공학99-06)
한마리곰미디어·한곰게임즈 대표




유튜브 보드게임 1위 채널 운영
직접 게임 창작, 번역 출판도


유튜브 채널 ‘보드라이브’는 ‘대한민국 대표 종합 보드게임채널’을 표방하는 곳이다. 다양한 보드게임을 소개하고, 직접 플레이하며 복잡한 규칙도 쉽게 알려준다. 영상에서 유창한 언변과 현란한 손놀림을 자랑하는 ‘한마리곰’은 바로 7년 전 채널을 만든 오한웅 동문. 영상PD란 본업이 있지만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위해 ‘한곰게임즈’란 회사를 차리고 방송, 제작, 출판까지 한다.

12월 26일 광진구 한곰게임즈 사무실에서 만난 오 동문은 “보드게임 자체보다 사람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즐기는 게 좋다”고 했다. 책처럼 빼곡이 보드게임들이 꽂힌 서가를 지나자 ‘보드라이브’에서 여럿이 게임을 하던 공간이 나왔다. 공간은 달라도 그가 가는 곳엔 늘 보드게임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 부루마블을 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빠진 건 대학 때였어요. 녹두에 있는 자취방에서 동아리 사람들과 ‘카탄’이란 보드게임을 하면서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당시 PC게임의 인기가 높았지만 그는 보드게임 만지는 재미가 더 좋았다. 술 대신 보드게임으로 밤을 지새기도 했다. “게임을 해도 모니터 속이 아니라 제 앞에 사람이 있는 게 좋더라고요. 10번 모이면 10번 술만 마시는 것도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놀이 문화가 다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보드게임을 하려고 했죠.”

지인들과 즐기던 정도에서 보드게임 마니아들을 위한 방송을 시작한 건 크리에이터의 길을 걸으면서다. 한때 개발자를 꿈꿨지만, 재미삼아 만든 UCC가 화제를 모으며 영상에 소질을 발견했고, 졸업 후 영상 제작 프로덕션을 차렸다. 기업 홍보 영상과 웹드라마 등을 제작하다 “내 콘텐츠를 만들자”고 생각해 찾은 주제가 보드게임. 블루오션이기도 했고, 좋아하니 질리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사회, 역사, 종교, 과학, 지리, 예술 등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르는 보드게임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익숙한 바둑과 윷놀이, ‘부루마불’, 80년대 서울대를 휩쓴 ‘마이티’도 보드게임의 일종. 한 마디로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보드게임은 당신을 위해 준비됐다’.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취향의 스펙트럼만큼 다양한 보드게임이 나와 있어요. 어떤 게임은 몸만 쓰는가 하면, 말발로 협상하면서 진행하는 게임도 있죠. 회사 경영이나 냉전시대 축소판 게임도 있고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과 게임을 하게 되면 빨리 성향부터 파악해요. 꼭 이겨야만 하는 사람이 있고, 그저 같이 게임하는 게 좋단 사람도 있어요. 조금만 얘기해 보면 ‘경쟁’ 게임이 맞는지, ‘협력’ 게임이 맞는지 알 수 있죠. 머리 쓰기를 좋아하면 ‘전략’ 게임, 싫어하면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파티’ 게임을 권해요. 초심자에겐 규칙도 쉽고 10분 안에 끝나는 게임이 적합하죠.”

치매 예방에 좋은 게임을 묻자 “색깔·숫자를 기억하는 ‘메모리 게임’ 류도 좋은데, 금방 질릴 수 있으니 마이티 같은 ‘트릭 테이킹’ 류나 루미큐브처럼 손패를 모두 터는 ‘클라이밍’ 류도 좋겠다”고 답했다. 그가 말한 키워드를 붙여 보드게임을 검색하면 제품을 찾기 쉽다. 무엇을 묻든 막힘이 없던 그는 “나름대로 보드게임 취향표를 정리하고 있다. 곧 보기 좋게 다듬어서 공개할 것”이라고 했다.

오 동문이 창작한 보드게임도 있다. “IVF라는 학생선교단체에서 활동했는데,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를 더 재밌게 할 수 없을까 생각해서 ‘I AM’이란 게임을 만들었어요. 카드에 적힌 키워드를 묻고 답하면서 아이스브레이킹하는 게임인데 신학기나 수련회 시즌에 주문이 많아 6쇄까지 찍었죠.” 자신감을 얻어 미국에서 발매된 ‘하트 오브 크라운’의 한국어판도 제작했다. “독일의 세계 최대 보드게임 박람회 ‘에센 슈필’에서 처음 보고 이끌렸어요. 제가 갖고 싶은 김에 번역과 재디자인을 거쳐 먼저 1000세트를 찍고 재판했습니다. 카드 꾸러미를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덱 빌딩’ 장르가 좋다면 추천합니다.”



유튜브 채널 '보드라이브'에서 '한마리곰'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오 동문(왼쪽 첫 번째)


그는 20년 가까이 보드게임을 즐기며 남은 것으로 “사람들과의 추억”을 꼽았다. “처음 애지중지 모은 보드게임 10개를 차에 싣고 다니며 친구들과 늘 같은 게임을 했던 때가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이젠 국내 보드게임 저변을 넓히는 데 책임이 막중하다. 큰 수익이 안 나도 6만 구독자를 지닌 보드라이브에서 매주 국내외 신작을 소개하고, 라이브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소장한 보드게임을 경매에 부쳐 나누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다. 국내에만 연 500개씩 쏟아지는 신작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해보느라 밤도 자주 샌다며, “정작 좋아하는 게임을 뒤로 미뤄야 하는 건 아쉽다”고 했다. 기쁨이라면 세 살 배기 딸이 벌써 보드게임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보드게임 시장은 코로나 때 크게 커졌어요. 가족용 게임이 잘 팔렸죠. 2023년엔 바깥 활동이 많아져서 좀 주춤했지만, 제 생각엔 다시 성장할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시대에 보드게임의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두드러지거든요.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정형화된 요즘, 마작패나 칩, 카드를 만질 때 독특한 손맛도 하나의 재미입니다.”

머지않은 설, ‘뭐 될 거니?’ 한 마디에 의도찮은 마음의 거리가 생기는 게 두렵다면 아침상 치운 자리에 보드게임 한 판 벌이면 어떨까. 함께 할 가족이 있어 행복하고, 아이에게서 날 빼닮은 명석함을 발견하고 흐뭇해질지도 모른다. 참고로 오 동문이 만든 보드게임 ‘I AM’엔 ‘이상형’, ‘친구’, ‘최고의 순간’ 등 말할 거리가 가득하다. 물론 ‘결혼’, ‘공부’ 등 민감한 키워드도 있지만, 말하는 사람의 센스 나름이다.

박수진 기자

▷유튜브 '보드라이브' 채널: https://www.youtube.com/@BoardLive
▷오 동문이 운영하는 '한곰게임즈' 홈페이지: http://games.hango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