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2호 2025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중증질환자 집으로 찾아가 진료…돈 벌려고 하면 못할 일입니다
서울36의원 이경영(의학73-82)·유은실(의학76-82)원장
중증질환자 집으로 찾아가 진료…돈 벌려고 하면 못할 일입니다
서울36의원
이경영(의학73-82)·유은실 (의학76-82) 원장
대형병원 재직 동기들도 거쳐가
의사·간호사·복지사 1팀 돼 방문
“오늘 마지막 진료가 3시에 끝났어요. 쏜살같이 강북에서 넘어왔습니다.”
1월 8일 오후 4시 강남구 서울36의원. 인터뷰 시작 전 이경영 원장(사진 오른쪽)이 유은실 대표원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제천 집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해 9시부터 서울 여덟 군데에서 환자를 봤다. 1시간에 2명씩도 봤다”며 숨을 돌렸다. 유은실 원장이 “우리가 처음 종로에서 시작해 강북에 선생님 환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아담한 공간엔 진료 차트를 띄운 컴퓨터 몇 대와 약이며 의료 도구를 놓은 캐비닛이 전부였다. 2022년 설립한 서울36의원은 외래 진료 없이 방문진료만 3000여 건을 해왔다.
이곳에선 만성질환자, 중증질환자,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해 병원에 오기 힘든 이들의 1차 진료를 본다. 전화나 메일로 신청이 들어오면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꾸려 환자를 찾아간다. 환자의 신체, 심리, 환경을 두루 살펴 치료 계획을 세우고, 의사와 간호사가 정기 방문해 약 처방과 복약 지도, 혈액 검사, 콧줄·소변줄 처치, 수액 치료, 욕창 진료 등을 한다. 동시에 사회복지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연결해 준다.
국내 방문진료 의원이 손에 꼽던 2022년 서울아산병원 병리과장을 지낸 유은실 동문은 퇴직 후 의대 36회 동기들에게 ‘환자의 환경까지 살피는 전인적인 치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병원장을 지낸 이경영 동문을 포함해 동기 3명이 의기투합, 의원을 세웠다. 대형병원에 재직하는 다른 동기들도 다수 거쳐갔다. “대학병원에서 산부인과, 흉부외과, 소아과만 전문으로 보던 분들이에요. 다들 ‘내가 집에 가서 뭘 얼마나 해줄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나갔다가 도움이 되고 의미가 있단 걸 확신하고 돌아오셨죠.”(유은실)
숱한 환자를 본 이 동문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3개월 전 80대 반신마비 환자의 집을 찾았다.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을 전전하다 퇴원해 누워서만 지내는데 경련이 잦다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보니 항파킨슨제에 심장약, 혈압약, 위장장애 약, 심지어 정신분열증 약까지 25가지나 되는 겁니다. 약에 취할 수밖에요. 연구해서 반으로 줄여보겠다고 단언하고 불필요한 약을 정리했어요. 한 달 지나 몰라보게 좋아지더니, 오늘이 네 번째 진료인데 환자가 일어나 앉았습니다.” 20~30분 진료가 기본이니 ‘밤새 돌보느라 잠을 못 잔다’는 보호자의 푸념까지 흘려넘기지 않는다. 유 동문은 “와상 환자는 보호자가 대신 약을 타오는 일이 많은데 대학병원 진료실에선 보호자도, 의사도 자세한 얘기를 나눌 여유가 없다”며 “의대 학생들이 이렇게 환자의 집에도 가보고 새로운 진료를 겪은 다음 전문의 수련을 받으면 시야가 더 넓어질 것”이라고 했다.
방문진료 수요는 늘어나지만 공급이 달린다. 동네 병원이 하루 100명을 봐야 유지한다는데, 정부 재택의료센터로 지정돼 수가를 받아도 종일 환자 10명을 못 보니 돈 벌기가 힘들다. 방문진료 수가가 3~5배 높은 만큼 인력도 많은 일본과 달리 퇴직 의사나 사명감 있는 의사들의 헌신에 기대는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36의원엔 이정권(의학74-80)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합류했고, 젊은 사직 전공의 두 명도 ‘이 참에 방문진료를 경험해 보고 싶다’며 찾아와 손을 보태고 있다. 주 1~2회 출근하는 의사 5명이 간호사 4명, 사회복지사 1명과 함께 일한다. 병원 살림을 맡아 보는 유 동문은 “첫 6개월은 의사선생님들이 급여란 걸 가져가신 적 없다. 지금도 의사 몫을 덜어 간호사와 사회복지사님들을 시중과 맞춰 대우해 드린다”고 했다.
중증 환자가 대부분인 재택의료 현장은 죽음에 한 발 더 가깝다. 수시로 ‘환자가 돌아가셔서 오늘 안 오셔도 된다’는 연락을 받는다. 유 동문은 대학에서 ‘죽음학’을 강의했을 만큼 죽음에 대해 천착해 왔다. 의원이 그 연장선상이라고 했다.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당연히 늙음을 생각했고, 늙는 과정엔 당연히 병이 따르고, 과연 우린 어떤가 궁금했죠. 우리나라 노년기 삶의 질이 형편없단 걸 확인했지만, 의사로서 환자를 찾아가서 돌보는 일이 더 나은 노년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듯해요.”
이 동문은 평소 “노년의 치료와 임종은 집처럼 편안한 환경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이 있었다. “대개 부모님 임종이 가까워 오시면 불안해서 입원시켰다가 병원에서 보내드리게 되죠. 저희는 미리 ‘한두 달 못 가신다’ 말씀드리고 지켜보면서 수액이며 필요한 처치를 해드려요. 그러다 가정에서 돌아가시면 자녀들도 굉장히 고마워 하십니다. ‘부모가 아픈데 병원도 안 데려간다’는 주변 말에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환자 본인도 심리적으로 안정되죠. 방문진료를 아신다면 병원 아닌 집에서 임종하고 싶으신 분들이 꽤 계실 겁니다.”
유 동문은 올해 더 많은 환자를 보기 위해 서울 전역에 퍼진 진료 동선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게 목표다. “지하철 타고 다니다 유 원장이 승용차 한 대를 기증하셔서 기동력이 좋아졌다”는 이 동문의 말엔 미소만 지었다. “재정이 나아지면 의사 선생님도 좀더 잘해 드리고, 전공의 분들 복귀하시면 시니어 선생님을 확충해야죠.” “잘 되면 호스피스 병동도 조그맣게 운영해 볼까요?” 도란도란 이야기 속에 두 동문의 꿈이 끝없이 가지를 뻗어나갔다.
박수진 기자
▷서울36의원 홈페이지: http://seoul36clin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