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호 2024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농생대동창회 안에 사업단, 동문에게 인생 2모작 기회 제공”
서병륜 (농공69-73) 농생대동창회 회장·로지스올 회장
“농생대동창회 안에 사업단, 동문에게 인생 2모작 기회 제공”
서병륜 (농공69-73) 농생대동창회 회장·로지스올 회장
2조5000억원 매출 일군 뚝심 앞세워
동창회에 스마트팜 등 9개 법인 설립
은퇴한 동문 전문가 등 250명 참여
“농식품 산업에 한 획 그어 보겠다”
농업생명과학대학동창회(이하 농생대동창회) 산하에는 ‘AFP사업단’이라는 특별한 조직이 있다. AFP는 애그로푸드 플랫폼(AgroFood Platform), 즉 농식품 산업 플랫폼을 뜻한다. 쉽게 말해 농업과 관련된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는 조직이다. 현재 스마트팜, 빅데이터ICT, 온라인유통, 식물병원, 종자육모, 에코에너지, 컨설팅, 스마트관개, 대체식품과 관련된 9개의 법인 회사에 250여 명의 동문이 참여하고 있다. 여타 동창회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동창회가 사업체를 만들어 운영한다? 어떻게? 왜? 돈은? 사무 공간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5년 전 농생대동창회장에 취임해 이 사업의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해 가고 있는 서병륜 회장을 11월 1일 만났다.
-회장님 취임 당시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실현될까 반신반의했습니다. 9개 회사가 운영 중이라고요? 놀랍습니다. AFP 사업단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온 겁니까.
“제가 하는 팔레트, 컨테이너 물류사업이 공존공영, 즉 공동으로 영위하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3년간 농생대동창회 수석부회장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조직을 활성화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동문을 유인할 방법을 찾다 회장 취임하자마자 애그로푸드 플랫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 대학 출신 중 농업 전문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퇴직하면 아까운 재능이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고급 인력들이 60세에 은퇴해 20~30년을 그냥 보내는 게 얼마나 낭비입니까. 동창회에 동문도 끌어모으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우리나라 농식품 산업 선진화에 기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판을 만들어 준 거죠. 국가 식량 안보 강화의 필요성도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이런 사업을 펼쳐 나간다면, 서울대 농생대동창회의 위상도 올라갈 거라 봤죠.”
-취지는 좋은데, 사업을 하려면 돈과 공간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우선 제가 2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AFP 사업단의 지주회사인 AFP센터는 평창캠퍼스에 있습니다. 그 외 8개 회사는 예전 수원캠퍼스의 본관 건물에 입주해 있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통해 지원받은 건물이죠. 경기도에서 수원캠퍼스의 땅 일정 부분을 가져가면서 400억원 정도를 리모델링 비용으로 지원해 깨끗하게 단장했습니다. 이 건물 전체를 다 쓰는 게 목표인데 현재는 4층 일부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는 동문들에게 주식으로 보상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각 회사에 기여한 정도를 ‘AFP회원 기여도 평가 및 인센티브 지급 세칙’과 ‘기여도평가위원회’의 평가에 따라 인센티브 주식을 부여합니다.”
-참여하는 동문은 얼마나 되나요.
“9개 법인에 250명 동문이 각 분야별로 모여 있습니다. 교수부터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고루 포진해 있습니다. 병충해 방제 식물병원, 종자 회사, 식품 유통, 관개 회사, 스마트팜 등 농업의 전 분야를 망라합니다.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위해 재배부터 먹는 것까지 30개 테마를 정했습니다. 현재 이 가운데 9개가 실현된 셈이죠.”
-참여자가 동문으로만 한정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메인은 동문이지만, 학생과 외부 농업인에게도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대 출신 너희들끼리 똘똘 뭉쳐 뭐 하겠다는 거냐는 시선도 있어서, 누구든지 우리 시스템에 찬성하고 서약하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성과는 있습니까.
“초기 3년 동안은 고민도 많고, 참여한 동문과 의견이 달라 언쟁도 있었습니다. 5년 차를 맞아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 본격 활동을 시작합니다. 제가 40년간 사업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두드러지는 성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식품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회사 하나도 키우기 힘든데, 9개 회사를 운영하기 벅차지 않나요.
“각 회사에 대표가 있고 저는 전체를 총괄하는 입장이죠. 당연히 사업은 힘듭니다. 제가 물류회사를 운영해오지 않았습니까? 이 회사 저 회사로 우리 팔레트가 돌아다닙니다. 생각해 보세요. 이게 어떻게 수거될 거 같습니까. 팔레트를 사용한 회사에서 책임져 줄까요? 전국을 돌아다니는 팔레트를 표준화해 공동으로 쓴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평생을 바쳐 국가도 나서지 않은 물류 표준화를 하고, 업체 관계자들을 설득해 방치되는 팔레트를 제로 수준으로 최소화 시켰습니다. 그 경험이 있기 때문에 AFP 사업도 자신 있습니다. AFP 사업으로 대한민국 농식품 산업에 한 획을 긋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팜 사업도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가요.
“스마트팜 농업에서는 어떤 작물을 키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에서 왕딸기를 재배해 딸기 하나를 12달러에 파는 것을 봤습니다. 주먹 반만 합니다. 포장도 고급스럽게 해 중국, 파리까지 수출한다고 합니다. 저희는 현재 약용 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수경 재배에 노하우가 있으신 동문께서 잘 운영해 주고 계세요. 지금 판매를 시작했고, 전국의 농가들을 설득해 농촌 지역에 확산만 시키면 우리 AFP 사업의 첫 성공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물류 사업만 하다, 농업 분야를 하시니까 어떻습니까.
“저는 농기계가 전공입니다. 대우에서 지게차를 다루다 물류를 알게 됐고, 지금까지 물류업 외길을 걸으며 농업과는 거리가 있었죠. 그러다 AFP 일을 하면서 각 분야 동문 전문가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일본이 농업 선진국이기도 해서 농업 관련 일본 책을 70여 권 읽기도 했고요. 농업기술서는 아니고 주로 농업의 선각자들이 일본 농업의 방향에 대해 쓴 책들입니다.”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기업들의 농업 분야 투자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면 농업인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시각이 많지요. 그러나 일본은 도요타 등 주요 기업들이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앞장서 권유하고 국민 누구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미래의 첨단 농업은 대규모 투자가 뒷받침돼야 가능합니다. 대한민국도 농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업인들이 투자하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지금 한국 농촌은 위기입니다. 일하는 분들이 모두 고령자 분들입니다. 10년만 지나면 농사지을 사람이 외국인밖에 없을 겁니다. 노는 농토가 많아질 거예요.
결국 첨단 농업, 스마트 농업으로 가야 하죠. IT 기술을 활용해 최적의 생산, 판매 시스템을 구축해야죠. 가장 중요한 것이 수요 예측을 정확하게 하는 기술인데, 삼성, 자라, 도요타가 잘 합니다. 3개월 뒤에 어떤 작물을 재배하면 돈을 벌겠구나, 수요 예측을 정확하게 해서 생산에 들어가야 합니다. 수요 예측도 안 하고 작년에 돈 좀 벌었다는 품목이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요. 그래서 망합니다. AFP 자회사 중에 이런 역할을 하는 회사도 키우고 있습니다.”
-관악경제인회 수석부회장으로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고 계신데, 관악경제인회가 어떻게 자리매김하면 좋을까요.
“농생대동창회에서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서울대 출신들이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데 서울대 경제인들이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환경 문제 개선에서 역할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기업 활동 중 요즘 이슈가 탄소 감축 문제 아닙니까. 앞으로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기업은 수출도 어려워집니다. 서울대 경제인들이 인류를 위해, 지구를 살리는 운동에 앞장서 환경 경영을 확실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올해 로지스올 그룹이 창립 4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소감 한 말씀 들려주세요.
“감개무량합니다. 2년 전 동창신문과 인터뷰 때 50주년 때 세계 1위 물류 기업이 될 거라고 말씀드렸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5~6년 뒤 1위 업체를 따라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40주년을 맞아 1000억원 규모의 사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개발 중인 폴드컨테이너(접히는 컨테이너) 진행 상황은 어떤가요. 많은 돈이 투자 됐을 텐데요.
“사업은 돈 때문에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첫 번째는 기술, 두 번째는 시스템 때문에 고민하는 겁니다. 기술 개발에 성공, 그 다음 시스템을 만들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15년 걸려 폴드콘을 개발해, 포스코와 협력해 시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쯤 멕시코 삼성전자 공장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에 테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대 글로비스도 준비 중이고요. 두 회사가 우리 제품을 써보고 입소문이 나면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입니다.”
해상용 컨테이너의 경우 아시아존에서 북미나 유럽으로 많이 가는데 회수가 쉽지 않다. 올 때는 빈 깡통이라고 보면 되는데, 부피를 너무 차지하다 보니 순환이 잘 안 된다. 돌아올 땐 부피를 4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폴드형 컨테이너를 로지스올에서 제작한 것이다. 부피와 무게가 줄면서 특히 육상 운임에서 큰 절감이 예상된다.
서 회장은 “사업가는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사람”이라며 “신앙 같은 믿음을 갖고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 창립 50주년 때 100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김남주 기자
서 회장은 1949년 9월 3일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와 모교 농공학과를 졸업했다. 명지대 산업대학원 산업시스템공학과에서 석사,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우중공업 지게차 영업과장으로 근무하다, 1984년 로지스올의 전신인 한국물류연구원을 설립해 물류 개척의 길에 몸담은 이래, 삼성전자, 롯데칠성음료 등 30여 건의 물류 컨설팅을 담당했으며, 1989년 사단법인 한국물류협회를 설립해 초대 사무국장을 거쳐 10여 년간 회장을 역임했다. 국제 활동으로는 아시아·태평양물류연맹(APLF) 회장, 아시아파렛트시스템연맹(APSF) 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파렛트풀, 한국컨테이너풀, 한국로지스풀 등을 설립, 공동 물류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로지스올 그룹을 창업했다. 로지스올은 전 산업계 35만 개의 기업들에 공동이용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3000만 매의 팔레트와 6500만 매의 컨테이너를 보유하고 있다. 지게차도 1만8000대 갖고 있다. 1800명의 임직원이 일하며 올해 매출액은 2조 5000억원을 예상한다.
2018년 26회 물류의 날 행사에서 글로벌 물류 발전과 국가 물류 위상 제고에 노력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물류업계의 최고상인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관악경제인회 수석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